▲ 김지석 5단 | ||
이번 3번기 전까지 중요 공식대국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었던 이창호 9단이었기에 김지석의 감격과 기쁨은 두 배였다. 또한 이번 김지석의 쾌거는 이세돌 9단이 자리를 비우는 탓에 서열의 질서가 잠시 흔들리고 있던 시기에 등장한 것이어서 바둑팬들에게 보다 선명한 인상과 청량감을 안겨 주었다.
1989년생으로 권갑용 7단 도장에서 수업하다가 2003년에 입단했다. 14세 입단이면 빠른 편이다. 그러나 김지석은 이미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광주의 바둑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터라 그의 14세 조기 입단은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 김지석의 기재라면 10세 이전 입단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었던 바둑팬들의 반응은 오히려 “어, 김지석이 아직 입단을 안 하고 있었나?” “왜 이제야 입단을 했지?” 그런 것들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5~6년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사연이 있었다. 밝히기는 좀 그런데, 간단히 말하면 김지석의 재주를 탐내 김지석을 제자로 삼겠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2001년 초에 김지석은 권갑용 도장의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권갑용 7단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듣던 대로 재주는 확실히 뛰어난 아이였는데, 의욕이 없어 보였다. 승부욕이나 호기심도 없어 보였다. 뭔가에 시달리면서 지친 모습이었다. 바둑 수업보다도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 같았다.”
다행히 당시 권 도장에는 또래의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표정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잡는 데 1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입단의 관문을 통과했다.
김지석의 타이틀 홀더가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판도 변화 혹은 재편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성급한 감이 없지 않지만, 크게 무리는 아니다. 김지석은 프로 데뷔 때부터 신동으로 불리던 어린 시절의 후광을 업고 일찌감치 차세대 대표 주자 예비명단에 올랐었다. 별명이 황태자인 것도 그래서다.
특히 강동윤 9단과는 동갑내기 라이벌로 꼽혔다. 1년 먼저 입단한 강동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김지석은 이렇다 할 게 없어 자주 거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강동윤-김지석의 경쟁이 새로운 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은 강동윤이 앞서 있지만, 김지석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발동을 거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제부터 김지석의 질주를 보게 될 것”이라면서 “엔진이 워낙 좋은 차여서 마력과 속도가 대단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지석의 바둑은 깊은 수읽기가 최대 장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수읽기와 전투력은 선배 이세돌 9단, 라이벌 강동윤, 후배 박정환 4단, 소위 천재계보라는 이들의 공통된 장점인데, 이세돌 강동윤 박정환이 전광석화처럼 ‘빠른 수읽기’라면 김지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깊은 수읽기’로 이들과 경쟁하리라는 것.
김지석을 길러낸 권갑용 7단은 “김지석은 전투에서도 색깔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국면을 전투로 풀어나가는 힘이 탁월하며, 그 힘은 어려운 중앙전, 공중전이 펼쳐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
“지석이의 바둑은 또 ‘대륙적’인 느낌을 줄 때가 많습니다. 린하이펑 9단의 옛날 전성기를 방불케 합니다. 물론 린 9단은 참고 기다리는 스타일이고, 지석이는 전투를 즐기는 기풍이어서 그런 면에서는 대조적이이지만 판 전체를 끌고 가는 스케일에서는 아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가풍이 있어요.”
이창호-이세돌-강동윤, 이들이 김지석의 목표다.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등도 있고, 후배 박정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어차피 이창호, 이세돌, 강동윤이다. 이들의 세력 다툼,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김지석이 가세함으로써 판도는 역동적인 양상으로 한층 더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이창호의 중후한 관록, 칼날처럼 예리하고 눈부시게 화려한 이세돌, 두터움과 속도를 겸비한 강동윤, 이들을 어떻게 대적하고 극복하느냐, 김지석의 숙제다.
전남대 신소재공학과 김호성 교수(50)가 김지석 5단의 아버지. 김 교수는 아마 5단 실력의 바둑마니아. 김지석이 바둑의 길로 들어서, 프로기사가 된 것은 보나마나 아버지의 권유와 인도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