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네덜란드 그로닝겐에서 열린 유러피안 고 콩그레스 대회장. 흰색 옷이 오치민 7단이다. | ||
지난해 11월 베를린에 갔던 오치민 7단이 9개월간의 바둑 전도와 탐사를 일단 마치고 8월 25일 귀국했다. 1987년생. 태어난 곳은 전남 광주. 아주 어렸을 때 수원으로 올라왔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바둑을 배웠다. 4학년 무렵 당시 수원에 살던 프로기사 정현산 6단을 찾아갔다.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프로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찌감치 학업을 접었다. 나중에 생각이 좀 바뀌어 검정고시를 통해 현재는 명지대 바둑학과에 다니고 있지만 그때는 어린 소견에도 프로의 길을 위해서는 나머지 것들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중3 때부터 입단대회에 나갔다. 이후 4년 동안 연속 출전했으나 끝내 프로와의 인연은 맺어지지 않았다. 좌절하지 않았다. 명지대 바둑학과에 다니면서 바둑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생각하다가 영어교실을 만났다. 2006년 가을이었다. 2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 독일행을 택했다. 그때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프로지망생 선배 황인성 7단이 바둑 보급을 하고 있었다. 그게 멋져 보였다.
베를린에 도착하고 이틀 후에 바둑대회에 출전했다. 우승이었다. 이후 유럽 각지에서 열린 대소 15개 바둑대회에 나가 10번을 우승했다. 삽시간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런던 대회 때 영국 선수와 얘기를 나누던 중에,
건너가기 전에는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그것도 어려울 게 없었다. 영국 말고도 독일이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개 영어를 잘했다. 또 독일의 바둑인들이 많이 도와주었던 것. 방 2개에 주방시설까지 갖춘 정도면 월세가 100만 원 가까이 하는 건데, 30만 원에 얻을 수가 있었다.
수입은 강의와 개인지도, 대회 상금. 개인지도는 주 1회, 1회 2시간으로 월 100유로, 단체지도나 강의는 똑같은 조건으로 1인당 50유로를 받았다. 베를린에 있으면서, 15세부터 70세까지, 8~9급부터 아마 3~4단까지 약 100명을 가르쳤다. 그 중 20%가 여성이었다. 베를린 바둑 인구는 현재 약 2000명. 많지는 않은 숫자지만, 한결같이 지식인이며 열성적이다. 독일 전체로는 약 2만 5000명.
대회 상금은 적은 것이 500유로, 큰 것이 1000유로. 평균 700유로로 잡고, 10회 우승이니 합하면 약 7000유로. 그래서 월 평균 수입이 1500유로쯤 되었다. 먹는 데는 돈이 별로 들지 않았으나 오고가는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쪼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를 아들처럼 대해 준 사람이 있었다. 베르나르트 룽게(Bernard Runge). 이게 발음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영어식으로 ‘버나드 룽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쉰이 좀 넘은 나이. 컴퓨터 계통 일을 하며 바둑은 아마 2단의 실력. 베를린 바둑협회 회장을 오래 지냈는데 이 사람이 바둑광이자 친한파다.
6~7년 전에 오로지 바둑이 늘고파 한국에 날아와 몇 달 동안 머문 적이 있다. 독일에서 받던 봉급의 절반만 주는 회사가 있다면 거기 취직해 살면서 몇 년 동안 바둑을 배우겠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 소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후에도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에는 거의 빠지질 않는다.
이번에 돌아온 것은 군대문제 때문. 그리고 여자 친구가 보고 싶어서. 너무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다. 또 하나가 있는데 더 늦기 전에 다른 공부도 하고 싶어서. 바둑을 보다 더 널리, 보다 빠르게 보급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다.
“저 말고도 많이들 나갔으면 좋겠어요. 언어만 좀 되면 크게 걱정할 게 없어요. 한국 바둑을 다들 좋아해요. 저는 인기도 있었어요. 이름이 호치민 비슷해서…^^. 한국 바둑을 좋아하다 보니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도 관심들이 많아요. 서양에서 일본 바둑은 지금 가라앉아 있는 상태고, 중국은 한창 세를 넓히고 있어요. 머뭇거리다가는 중국한테 밀릴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나라는 뭐 그렇게 좁은 것도 아니지만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땅 덩이리. 물리적 영토를 넓히는 길은 없다. 그러나 바둑을 갖고는 ‘문화적 영토’를 넓힐 수 있다. 바둑을 통한 문화적 영토의 확장. 지금이 적기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