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드라파나 위원(왼쪽)과 조정원 총재 | ||
#외국인 안돼 vs 조정원 불가
선거 개요부터 살펴보면 WTF 총재 선거는 오는 10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WTF 총회 및 세계선수권 기간(14~18일) 중에 실시된다. 현재 후보등록은 조정원 현 총재를 비롯, 인드라파나 IOC 위원, 박수남 WTF 부총재, 아타나시오 프라갈로스 유럽태권도연맹 회장 등 4명이 마쳤다. 하지만 조 총재를 제외한 3명이 모두 강한 ‘반 조정원’ 정서를 갖고 있는 까닭에 향후 박수남, 프라갈로스가 현역 IOC 위원인 인드라파나로 후보단일화를 할 가능성이 높다. 즉, 사실상 ‘조정원 VS 인드라파나’ 2파전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양측의 주장은 각각 이렇다. 조정원 총재 쪽은 ▲지난 5년간 조정원 총재가 WTF 개혁 작업을 성공리에 수행했다(조정원 총재는 2004년 6월 김운용 전 총재의 1년 잔여임기 총재에 선출됐고, 2005년 4년 임기의 총재에 재선출됐다) ▲2012년에 이어 2016년 올림픽 잔류를 확정지었다 ▲인드라파나는 노골적으로 WTF를 흔들어왔다 ▲인드라파나가 총재가 되면 서울에 있는 WTF 본부를 방콕(태국)이나 외국으로 이전하고, 경기용어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바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인드라파나 IOC 위원 쪽은 △2008베이징올림픽 심판폭행 및 판정시비, 양진석 사무총장의 맨체스터 돈봉투 사건, 아랍공주 특혜 와일드카드, WTF 노조사건 등 조정원 총재의 WTF는 전 세계 태권도인이 실망할 정도로 최악의 행정능력을 보여왔다 △태권도는 원래 2016년이 아닌 2020년이 문제였다. IOC 내에서 조정원 총재와 WTF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아 2020년 올림픽 잔류가 걱정이다 △WTF 본부를 이전하지 않겠다고 이미 천명했고, 한국정부와도 약속한 바 있다 라고 맞서고 있다.
#7월 초부터 곳곳에서 충돌
이 같은 양측의 대립은 인드라파나 IOC 위원이 7월 초 한국에 들어와 공식출마선언을 할 때부터 곳곳에 분출됐다. 인드라파나 위원이 서울의 WTF 본부에서 후보등록을 할 때 사무국으로부터 서류미비를 이유로 예정보다 하루 늦게 접수한 것을 시작으로 인드라파나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회동, 8월 태권도한마당, 코리아오픈 등에서 양측은 끊임없이 신경전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국내 태권도전문지 등 미디어를 상대로 한 공방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기원이 주최하는 태권도한마당에서는 인드라파나의 축사 문제로 왈가왈부 시끄러웠고, 코리아오픈에서는 VIP들의 좌석배치 문제로 인해 몸싸움 직전까지 대립이 격화됐다. 인드라파나 측은 현역 IOC 위원이자, WTF 수석부총재를 예우하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나타냈고, 조정원 총재 쪽은 종주국 태권도의 잔치에 와서 선거운동을 한다고 맹비난했다.
특히 8월 18일 코리아오픈 환영 만찬 때 홍준표 회장이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굳이 한국인이어야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이 분의 생각이기도 하다”라고 말해 큰 파문이 일었다. 사건이 커지자 홍준표 회장 측은 대한태권도협회 양진방 전무를 통해 “태권도가 그만큼 국제화, 세계화됐다는 의미와 태권도가 세계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한 것이지 꼭 외국인이 WTF 총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결과 홍준표 회장은 조정원 총재의 WTF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갖고 있으며 조 총재 쪽에서 세 차례나 만나자고 제의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홍준표 회장의 한 측근은 “홍 의원님은 성격이 확실하다. 지금의 WTF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단 국제기구인 까닭에 예전처럼 한국정부가 이러쿵저러쿵 심한 간섭을 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체적인 판세를 보면 이렇다. WTF를 포함, 대한태권도협회, 국기원, 태권도진흥재단까지 태권도 메이저단체는 모두 4개다. 당연히 WTF야 ‘집권여당’인 까닭에 조정원 총재 쪽이고, 진흥재단의 이대순 이사장은 아시아태권도연맹 회장으로 노골적으로 조정원 총재를 지지하고 있다. 반면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는 국기원은 엄운규 원장이 워낙 김운용 전 부위원장과 가까운 까닭에 인드라파나를 지지하고 있지만 밑의 실무진은 분위기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장 흥미로운 곳은 대한태권도협회로 홍준표 회장이 중립을 표방하면서 ‘안티 조정원’의 입장을 확실하게 취하고 있는 반면 실무총책임자인 양진방 전무는 “나는 조정원 총재 사람”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 그리고 국내 미디어는 현재 인드라파나보다는 조정원 총재를 두둔하는 경향이 짙다. 한 태권도전문지는 노골적으로 조정원 총재를 지지하는 내용의 글만 내보내고, 반대편의 의견은 게재하지 않고 있어 공정보도 논란까지 일으키고 있다.
8월 중순 세계육상선수권의 전야제 형식으로 열린 IOC 집행위원회가 끝난 후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2016년 올림픽 추가종목으로 럭비와 골프, 두 종목이 선정되면서 태권도는 사실상 2016년 올림픽 잔류를 확정지었다.
이에 WTF는 조정원 총재의 편지를 전 세계 회원국에 보내며 ‘WTF가 노력한 결과다’라고 자축했다. 그리고 각종 언론플레이를 통해 ‘지금까지 태권도의 2016년 올림픽 잔류가 어렵다고 말해온 인드라파나 등 음해세력은 책임져야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반면 인드라파나 측은 “답답하다. 인드라파나 위원이 IOC내에서 올림픽종목을 관장하는 프로그램위원회 소속이다. 그리고 IOC 상황을 조금만 알아도 그렇게 말을 못한다.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는 원래 2020년이 문제였다. 워낙 WTF가 베이징올림픽에서 문제를 많이 야기해 2016년도 위험해진 것인데, 거꾸로 2016년 잔류가 자신들의 공이라고 하니 어이없다”고 설명했다.
2020년에 대해서도 조정원 총재는 “지금처럼 계속 열심히 하면 2020년 잔류도 확신하다”고 밝힌 반면 인드라파나 측은 “이번 베를린 IOC집행위원회에서 조정원 총재는 IOC위원 후보자격에 3번째로 도전했지만 또 떨어졌다. 그만큼 IOC가 조정원 총재 및 WTF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 WTF 총재 김운용은?
김운용 전 IOC 수석부위원장은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맡은 이후, 국기원을 설립했고,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했다. 이후 2004년까지 31년간 WTF 총재로 태권도를 스포츠 역사상 최단기간에 올림픽종목으로 올려놓았다.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김운용 전 위원장이 조정원 총재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자신에게 정치적 테러에 가까운 사법처리를 할 때 공석이 된 WTF 총재 자리에 앉은 사람이 조정원 총재라고 생각한다.
김운용 창설자가 움직이니 WTF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WTF의 한 임원은 최근 한 기자에게 “(인드라파나를 지지하는) 김운용 전 총재는 정신병자”라는 말을 했다가 이것이 김 전 위원장의 귀에 들어가 혼쭐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임원은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김운용 전 부위원장의 측근은 “솔직히 (김운용 전 부위원장이) 조정원 총재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누구보다 IOC 내부의 기류, 그리고 태권도를 잘 아는 까닭에 현재의 WTF로는 4년 후 올림픽 잔류를 확신할 수 없다고 걱정하신다. 즉 지금은 한국사람보다는 외국인이 수장을 맡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시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사이버수사대까지 나서
이런 가운데 최근 김운용 전 부위원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괴문서가 인터넷을 통해 태권도인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어 향후 파문 확산이 예상된다.
영문으로 돼 있는 이 문서에는 김운용 전 부위원장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현장을 방문했을 때 친필로 자신의 직위를 ‘IOC 위원장’으로 기재했다는 내용이다. ‘자신을 IOC 위원장이라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행동으로 확실히 감옥에 있을 때 이런 수작을 배웠는지 모른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수년전 김운용 전 부위원장을 비판한 기사가 추가돼 있다. 물론 누가 이 문서를 만들었는지 나와있지 않다.
이를 본 김운용 전 부위원장은 “어이가 없다. 기본적으로 괴문서의 필치는 내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2001년 IOC 위원장 선거에서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IOC 위원장에 도전했지만 자크 로게에게 진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어떻게 내가 IOC 위원장이라고 주장하겠는가? 그것도 살짝 방명록에 쓰는 수준으로 말이다. 모함을 해도 수준이 있어야지 이건 너무 심하다”라고 말했다. 또 “아무리 태권도계가 시끄러워도 나는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의 창설자다. 태권도계에서 이런 상식 이하의 짓거리를 한다고 생각하니 개탄스럽다.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괴문서는 최근 태권도전문지의 한 기자가 “태권도계에서 이 문서가 퍼지고 있다”며 김운용 총재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수사당국에 의해 이 괴문서의 작성경로가 밝혀진다면 그 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