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빈소 조문 어려운 제자들
지난 8월 25일, 김 씨의 빈소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그러나 김 코치의 지도를 받았던 제자들은 스승의 빈소에 조문을 가야 하는지, 어떤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 선수는 “유족 측에서 펜싱협회나 관계자들의 조문을 받지 않겠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빈소로 달려가고 싶지만 거절당할 것 같아 선수들이 가질 못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유족들은 자살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데다 협회와 김 코치가 문제가 있었다고 믿는 상황이라 펜싱 관계자들의 조문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한올림피언협회의 한 관계자는 “김 씨가 최근 내부에서 일고 있던 코치 교체 압력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펜싱협회 내부에서 국제대회 성적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는 것. 지난 5월 15일~19일까지 열렸던 2009 SKtelecom 남녀 플뢰레 국제그랑프리대회 및 국제월드컵A급대회가 그 문제의 중심이 됐다. 당시 경기 결과 개인전에서는 한국팀이 상위권을 싹쓸이했지만 단체전에서는 9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 관계자는 “교체 논란으로 김 코치가 상당한 중압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자살 원인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큰 대회 후엔 경기 결과에 따른 코치 교체 압력은 어느 종목이나 항상 있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펜싱협회의 오완근 사무국장도 “김 코치는 협회와 별다른 트러블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가족들이 나중에 협회 회장에게 (경찰에서 그렇게 진술한 부분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코치와 펜싱협회 이광기 부회장의 아들인 이석 코치와는 절친한 관계. 평소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았던 터라 김 코치가 펜싱협회와 대립각을 세우며 갈등을 빚을 일이 없다는 게 대표팀 선수 A의 설명이다.
코치로서 선수들 신망은 두터워
그렇다면 김 코치는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왜 갑자기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을까. 이에 대해 빈소에서 만난 한 펜싱 관계자는 “경제적인 문제도 원인이었던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 코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렸고 이자가 쌓이고 액수가 점점 늘어나자 빚을 감당 못해 자살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코치로서는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책임을 질 줄 알았고 선수들한테도 신망이 두터웠다. 그러나 종종 어두운 표정을 짓곤 했었다. 알고 보니 개인적인 채무 관계 때문에 혼자 고민을 안고 있었던 모양이다. 선수들도, 코치 관계자들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 사람이 죽고 나서야 조금씩 얘기가 돌았다. 아마 유족들도 잘 몰랐을 것이다.”
펜싱협회는 당장 9월 30일부터 10월 8일까지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릴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있는 탓에 남자 플뢰레 코치의 공백을 하루빨리 메워야 한다. 펜싱 코치의 선수 폭행 사건부터 현역 코치의 자살 등 잇단 악재에 협회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