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교육 힘들어 미국행
“한국에 있을 때도 저 녀석(아들)은 ‘아빠, 또 오세요’라고 했어요. 남편이 1년에 절반 이상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심한 것은 아빠 팀의 승패에 가족까지 함께 웃고 울고하니 애들이 클수록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어요.”
유재학 감독의 동갑내기 부인 김주연 씨(46)는 이렇게 회고했다. 어차피 한국에서 프로농구 감독이라는 직업이 가정에 충실할 수 없다면 피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아이들이라도 해방시켜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8년 전 어느 날이었죠.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갔는데 아내가 아들의 학교숙제를 대신 하고 있는 걸 봤어요. 가뜩이나 아빠 노릇도 잘 못하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키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미국행을 추진해 아이들과 집사람을 미국으로 보내게 된 겁니다.” 유재학 감독은 당시 다소 무모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른 어느 직업 못지않게 프로농구 감독은 ‘기러기 아빠’로 갈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췄다. 유 감독 이후 모비스의 임근배 코치, 전창진 KT 감독, 안준호 삼성 감독 등 프로농구 감독의 절반 정도가 기러기 아빠가 됐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한다.
눈물로 보낸 힘든 시절
2001년 기러기 아빠가 된 후 유재학 감독은 1년에 두 차례, 날짜로 치면 약 한 달 정도를 미국에서 보냈다. 어쩌다 휴가를 내 일주일 혹은 열흘씩 다녀가는 ‘샐러리맨 기러기’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어쨌든 한 번씩 만났다가 헤어질 때는 어른이나 아이나 울음을 참기가 바빴다.
“처음 몇 년은 한 번씩 올 때마다 영화를 찍었죠.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러니까 잠깐의 가족상봉을 마칠 때면 눈물바다가 됐어요. 나이가 좀 어렸던 딸아이는 울고불고 난리였고, 그래도 아들이라고 큰 녀석은 소리는 내지 않고 눈물만 줄줄 흘렸어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죠.” 아빠(유 감독)가 옛날 얘기를 하자 아들 선호(19)와 딸 선아(16)는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 외에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억대 연봉의 프로농구 감독인데 무슨 돈 걱정이냐?”고 따질지 모르지만 나름 사정이 있었다. 하필이면 유재학 감독은 기러기 아빠 초창기 팀(당시 전자랜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시즌만 끝나면 ‘유재학 감독 잘린다’는 기사가 터지곤했다. 해임이 되면 미국집의 할부금, 생활비 등 만만치 않은 액수를 감당할 수 없게 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2002년인가 그랬어요. 제가 성격이 적극적인 까닭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한국으로 치면 좋은 집을 분양받았어요. 무조건 사두면 집값이 오를 것 같았는데 애들 아버지가 한국에서 잘린다고 해서 그냥 포기했어요. 물론 지금 그 집은 두 배 이상 가격이 올랐죠.” 아내 김 씨의 회고다.
참고로 유 감독 가족은 미국에서 처음 1년은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때 아들 선호 군이 “엄마, 우리 이제 완전히 망한 거야?”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 유재학 감독이 오랜만에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아들 선호 군, 아내 김주연 씨, 유재학 감독, 딸 선아 양) | ||
유선호 군은 이제 대학생(US샌디에이고 바이오 전공)이 돼 며칠 후면 학교 기숙사로 떠난다. 처음으로 집을 비우는 것이다. 엄마 김주연 씨는 “아빠가 없어서 그런지 이제는 얘(아들)가 아빠 노릇을 해요. 자기가 기숙사로 간다고 집 걱정을 얼마나 하는지 몰라요”라고 설명했다. 선호 군은 중고교 시절 농구와 풋볼을 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워낙 농구를 좋아했던 까닭에 188cm의 신장으로 미국에서 슈팅가드를 했는데 제법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까지 농구와 학업을 놓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운동을 포기했다.
유 감독은 “선호는 발이 느리지만 운동 센스는 아주 뛰어나요. 여기서도 농구 아주 잘했어요. 지금도 혼자 대학에 가서 트라이아웃을 봐 농구를 계속하겠다고 할 정도로 농구를 좋아해요. 만일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중·고등학교 때 무조건 농구를 했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딸 선아는 농구보다는 배구를 좋아한다고 했다. 현재 고등학교 배구팀 선수로 포인트가드였던 아빠를 닮은 까닭에 배구에서도 세터를 본다.
보통 기러기 가장이 한국에서 미국에 오면 아이들과 아빠 사이에 큰 싸움이 난다고 한다. 고생고생하며 외국에서 공부시키는 아빠 입장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서 문화적 차이와 함께 불만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유 감독은 “공부에 대한 잔소리를 거의 안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마찰을 일으킨 적도 별로 없죠”라고 설명했다.
이에 딸 선아 양은 엄마, 아빠 눈치를 보며 “사실 (아빠가) 다른 잔소리는 많다”고 일침을 가했다. 급히 유 감독이 “제가 하는 잔소리는 공부가 아니라, 뭐 생활태도 같은 것”이라고 변명했고, 결국 잔소리가 많은 것은 선수들을 지도하다 보니 생긴 ‘직업병’이라고 타협을 봤다. 보기만 해도 즐거운 화목한 가정이었다. 유재학 감독은 “잘 커준 애들도 고맙지만 무엇보다, 남편 없이 혼자 미국으로 와서 지금까지 고생한 아내에게 가장 감사한다”고 말했다.
유재학 감독의 기러기 생활은 둘째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그러니까 앞으로 3년은 더 계속될 예정이다. 물론 그 사이 유재학 감독이 해임돼 미국으로 건너오지 않는 한 말이다.
LA=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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