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성용-기영옥 감독 (아래)SK투수 김준-아버지 김인식. | ||
차범근 감독의 아들 차두리, 기영옥 감독의 아들 기성용, 고 조오련 씨의 아들 조성모, 하동기 씨의 자녀들인 하승진 하은주 남매 등 익히 알고 있는 스포츠 스타 2세들이 많다. 모두 부모님이 갔던 길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는 이들이다. ‘누구누구의 자식’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힘들 법도 하지만 부모보다 더 큰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는 스포츠 스타다.
그 중 기성용은 유소년축구 감독계의 펠레라는 평을 듣는 기영옥 감독 아들이다. 기 감독은 어릴 때 우연한 기회로 기성용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냈다. “아버지인 나는 국가대표로서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유학길에 나섰던 기성용은 17세에 FC서울에 입단, 아버지의 꿈처럼 국가대표가 됐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유학길에 올랐던 2세는 또 있다. 바로 김상국 전 한화 포수의 아들인 김동엽이다. 지난해 봉황대기 때 홈런왕을 차지했던 김동엽은 올 시즌 청룡기 대회에서도 목동구장 정 중앙을 넘기는 대형 아치를 그려내는 등 두 개의 홈런을 날리며 홈런왕에 올랐다. ‘거포’ 유망주인 그는 올해 고3으로 메이저리그행이 결정돼 시카고 컵스 외야수로 뛸 예정이다. 고등학교 시절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 김동엽의 아버지 김상국은 “동엽이는 어릴 때부터 새벽같이 일어나서 스포츠 뉴스를 보고 나에게 말해줄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며 “늘 야구가 꿈이었던 아이라 일본에 보내 2년 정도 유학을 시키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일본 유학 당시 기본기를 비롯해 특히 하체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는 김동엽의 허벅지 둘레는 무려 28~29인치. 그럼에도 여전히 아들을 ‘꼬맹이’라고 부르는 김상국은 “하체 덕에 홈런을 많이 치는 것 같다”며 “어릴 때부터 내가 감독으로 있는 학교에 와서 형들과 같이 뛰고, 푸시 업 하고 하면서 기초체력을 신장시키는 방법으로 훈련을 시켰다”고 밝혔다.
이왕 대를 이은 김에 더 큰 세상에서 뛰어놀기를 바란 탓에 돈을 받지 않아도 갈 수만 있다면 미국에 보낼 생각이었다는 김상국은 아들 생각만 해도 뿌듯하단다. 특히 김동엽은 “메이저리그 홈런왕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선수다.
▲ (위)김상국 전 한화 포수(작은 사진)와 ML로 진출한 아들 김동엽.(아래)김호철 감독(오른쪽 두번째)과 그의 가족들. | ||
경남고,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롯데에 입단해 1998년 은퇴한 이 감독은 강한 승부 근성 및 수준급 외야 수비로 사랑받았던 선수. 아들 이정윤 역시 아버지를 쏙 빼닮아 발 빠르고 영리한 교타자로 팀 내 주전 1번 타자 겸 2루수로 활약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진해서 부산 사직 야구장 내 리틀야구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해 야구 인생을 걷기 시작한 후 늘 즐겁게, 열심히 운동장을 뛰었던 이정윤이었지만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경남고에 들어오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이 감독은 “다른 학교로 보내는 걸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쪽이든 저쪽이든 경기 때 마주쳐야 하고, 감독들도 다 선후배라 다른 곳에 가는 게 더 불편했다”며 “나도 부담이었지만 아들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 때가 문제였다. 감독으로선 못하는 선수를 질책성으로 제외시킬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으레 학부모 사이에서 “아들을 더 많이 뛰게 하려고 한다”는 등의 말들이 튀어나왔다. 결국 더 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에도 이정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에러를 범하자 바로 벤치로 불러들였고, 3학년이던 올해도 경기 중 번트 실패를 하자마자 교체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나로선 더 엄할 수밖에 없었다”며 “나중에 아들 인터뷰를 보니 ‘정말 야구하기 싫었다’고 하는 말이 있어서 미안했는데 이겨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이정윤은 우선 대학에서 더 실력을 키울 생각이라고 한다. 부산이 고향이고, 15년 여 동안 선수 및 코치 생활을 했던 이 감독은 “나도 롯데맨인데 아들도 롯데로 가면 좋다”고 대학 후 진로에 은근한 바람을 비치기도 했다.
현장에서 마주치는 부자는 또 있다. 바로 이순철 MBC ESPN 해설위원과 이성곤 선수다. 원래 운동을 시키지 않으려 했다는 이 위원은 “아무래도 운동을 할 것 같아서 집사람이 하는 승마와 골프를 가르쳐 봤는데 그래도 야구가 좋았던 모양”이라며 “아들의 못 말리는 야구 사랑에 내가 졌다”고 웃는다.
평소 게임 대처법과 응용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는 이 부자. 하지만 이 위원은 연세대로 결정된 아들이 나중에 어떤 곳으로 가길 원하는지 모른단다. 이 위원은 “절대 말을 안 한다”며 “학창시절 책상 앞에 ‘땀 흘리면 잠실구장, 피땀 흘리면 메이저리그 간다’는 문구를 붙여놨었는데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는다”며 지지를 보냈다. 다만 투수에도 욕심을 갖는 이성곤에게 “내야수라도 잘했으면 좋겠다”며 “대학생활 동안 실력을 갖추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 (위)경남고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났던 이종운-이정윤 부자.(아래)지난 8월 27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이성곤. 왼쪽은 아버지 이순철. | ||
안병훈이나 양용은처럼 외국활동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아직 미국 진출을 하지 않았다는 김재호는 본격적으로 내년 PGA를 노리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현대캐피탈 배구 감독인 김호철은 아들과 딸 모두 스포츠인이다. 김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선수 및 감독생활을 하던 중 태어나 그 곳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큰딸인 김미나는 아버지와 같은 길을 선택, 현재 이탈리아 프로배구 1부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이며 아들인 김준은 골프선수로서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활동 중이다.
김 감독은 “아들은 입상경력이 너무 많아서 다 읊을 수 없다”며 “이탈리아 경기는 매번 입상하고 있는 데다 2년 전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중 출전한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배구선수였던 아내 임경숙을 닮아 침착하면서도 과감한 플레이를 하는 김준은 현재 대학을 휴학하고 프로 입성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MBC 2루수로 활약했던 현 충훈고 감독 김인식의 아들인 SK 와이번스 투수 김준은 군입대 예정이다.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알기에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김 감독은 “워낙 하고 싶어해서 내가 아들에게 졌다”며 “날 닮았는지 첫 시합에 나가자마자 퇴장을 당했다”며 아들의 첫 프로 시합을 떠올렸다. 지난 82년 절친했던 배대웅과 경기 중 액션을 보이다 몰수게임 선언까지 갔었는데 아들인 투수 김준 역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투구를 하다 퇴장당한 것.
비록 SK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군대에 가게 됐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좋은 기량을 보였고, 대학교에 가서도 주전을 도맡았던 아들이기에 더 일찍 프로로 보내지 않은 것이 아쉬울 때도 있다는 김 감독은 “군대 다녀와서 펄펄 날기를 기대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