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WBC 대표팀과 LA 다저스 연습경기 중 고영민이 투구에 몸을 맞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이상일 KBO 사무총장은 “우리가 정식 제안을 받은 것은 최근이었다. 그 전엔 스포츠 마케팅 대행사에서 연락만 왔을 뿐이다. 또 7월 폴 아치 메이저리그 인터내셔널 부사장이 방한했을 때와 유영구 총재가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참관 당시 제안을 받은 적은 있다. 그때도 세부적인 논의는 없었다. 포괄적 의미에서 외교적 답변만 해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는 왜 서둘러 일 처리를 강행했던 것일까. 다른 한쪽은 아무런 답변도 안했는데 말이다.
모 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메이저리그가 올스타전을 하자고 하면 우리가 덥석 그러겠다고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런 이벤트가 추진되려면 최소 1년 전에 일 처리가 시작돼야 한다. 대뜸 시즌 중에 이런 제안을 하면 구단 스케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폴 아치 부사장 방한 이후에도 일이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KBO는 당시에도 시즌 후 이벤트는 일본과의 챔피언십시리즈 하나로 끝내려는 계획만 갖고 있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초 시즌 후 한국 프로야구의 이벤트는 아시아시리즈가 유일했다.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프로리그 챔피언 팀이 치르는 리그전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시리즈가 재정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겪자 한국과 일본 우승팀의 단판 승부로 규모가 축소됐다. 경비 문제는 대회를 주관하는 일본프로야구기구(NPB)의 몫이다. KBO는 부담 없이 참가하기만 하면 된다.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될 이벤트가 있는 탓에 메이저리그의 제안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협상이 진전되거나 세부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 KBO의 입장이다.
KBO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메이저리그에 정통한 인사들, 특히 한국에서 활동 중인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은 하나같이 “KBO 내부에서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스포츠 마케팅사 관계자는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도 움직였다. 선수들에게 공문을 보낸 것은 선수 노조였다. 선수 노조의 동의 없이 일을 진행시킬 수 없는 것이 메이저리그다. 하물며 한국의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진행시켰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KBO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와 경기에 관심을 갖고는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시기는 올해가 아니다. 이상일 총장은 “2011년이면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한미 올스타전도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라고 밝혔다.
대행사 측의 일처리 미숙 가능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실무 접촉 단계에서 KBO 측이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는 오판을 했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메이저리그는 활발히 움직이고 KBO는 별 준비가 없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
이 총장은 “메이저리그가 왜 그렇게 빠르게 일을 진행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KBO는 아무런 구체적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가 올스타전을 치른 것은 지난 1986년이 처음이었다. 대단한 열기 속에서 대회가 진행됐다. 일본 프로야구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창단 이념 속엔 이런 문구가 있다. “언젠가는 메이저리그를 뛰어넘는 팀이 된다.”
일본 프로야구가 메이저리그를 넘겠다는 야심은 여전히 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숙제다. 때문에 메이저리그와 당당하게 겨뤄본다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일 올스타전은 맥 빠진 풍선이 돼 버렸다. 메이저리그는 물론 일본 선수들에게도 부담스런 이벤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시즌을 치르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는 11월에 치러지는 대회다. 메이저리그 올스타를 이긴다 해도 메이저리그를 이긴 것은 아니라는, 어쩌면 매우 당연한 명제가 일본의 발목을 잡았다. 메이저리그의 대표 구성이 원활치 않게 되더니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대형 스타들이 줄줄이 사퇴를 선언했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지난해에도 미일 올스타전이 치러져야 했다. 하지만 대회는 열리지 않았다. 표면적 이유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몇 달 뒤 치러지는 만큼 대회 의미가 축소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년에도 미일 올스타전이 열릴지는 미지수다. 일본 입장에선 투자 비용에 비해 건질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KBO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KBO 내부에선 메이저리그가 한국을 찾는다 해도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일본의 사례도 그렇고 운동장 사정도 여의치 않다. 11월이면 한국은 이미 추워지기 때문이다. 혹 돔구장 건립 등과 맞물린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그다지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철우 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