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회 삼성화재배에서 박정환 4단(왼쪽)이 천야오예 9단에게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 ||
한국 : 이창호 최철한 박영훈 송태곤 허영호 등 5명. 중국 : 구리 창하오 콩지에 저우허양 딩웨이 천야오예 치우쥔 류싱 왕야오 저우루이양 등 10명. 일본 : 야마시타 게이고 1명이다.
16강전에선 왕야오와 박영훈, 콩지에와 야마시타, 구리와 창하오, 딩웨이와 이창호, 저우허양과 허영호, 저우루이양과 류싱, 천야오예와 최철한, 치우쥔과 송태곤이 격돌한다.
한동안 정체의 늪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였던 송태곤 9단의 분전은 반가운 일이었으나 그보다는 에이스급만큼이나 우리 팬들이 믿었던 강동윤 9단, 최근 절호의 상승세를 타고 있어 이번에 뭔가 한 건 올릴 것으로 기대되었던 김지석 6단, 차세대 대표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박정환 4단과 홍성지 7단 등이 탈락한 것은 허탈한 일이었다.
한국 서열 3위를 굳히면서 이창호 이세돌을 넘보고 있는 강동윤이 구리에게 고배를 들고 천재소년이란 소리를 듣는 박정환이 중국의 천야오예에게 패하자 한국 응원석에선 고개들을 흔들었다. 김지석이 우리 송태곤에게 져 16강에 오르지 못한 것은 한국 팀의 불운이었고, 노장 조훈현 9단이 박영훈에게 시간패를 당한 것도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 최고 타이틀 ‘기성’ 보유자인 야마시타 9단은 일본 기사 중에서는 그나마 세계무대에서 잘 버티면서 일본 서열 1위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인물. 이번에도 혼자 남았는데, 여성스럽고 다소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바둑은 매우 호전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중국의 류싱 왕야오 저우루이양 등은 비교적 낯선 얼굴. 중국 바둑의 두터운 층을 실감케 한다.
어쨌거나 우리도 에이스급이 거의 살아남았으니 비관은 아직 이르다는 얘기도 많지만, 일단 숫자에서 더블 스코어로 밀린 게 기분이 좋지는 않다는 것. 흔히 하는 말로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는 것.
그 정도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중국에 확실히 밀리는구나” 하는 탄식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자성의 소리도 높다. 자성의 소리에는 한국 바둑계와 한국기원에 대한 비판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얼마 전부터 있었던 얘기, 입단의 문호를 넓혀야 한다는 것, 예컨대 그런 주장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일까. 반론도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얼마 전까지, 20년 가까이 최강을 구가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 이길 때도 있으면 질 때도 있고,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도 있다는 것. 더구나 중국과 우리는 사회 체제나 구조가 다르고, 바둑에 대한 투자의 규모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건 간단히 넘어갈 얘기가 아니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한 가지 예만 들어 본다.
중국 상하이에서 남쪽으로 180㎞쯤 떨어진 곳, 세계적 명승지이자 저장성(折江省) 수도인 항저우(杭州)에 몇 년 전에 ‘천원대하(天元大廈)’라는 건물이 생겼다. 대하는 빌딩, 호텔이다. ‘천원’이란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 말하자면 ‘항저우기원’, ‘항저우 바둑센터’다. 3만 평 부지에 34층 건물이니 엄청난 규모다. 1층부터 9층까지는 항저우기원이 쓰고 나머지는 호텔이다. 본 건물 양쪽으로는 6층짜리 부속건물이 또 있다.
항저우기원에 항저우바둑학교가 있고, 수십 명인지, 수백 명인지 모를 어린이들이 바둑을 공부하고 있다.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 중에 우리나라 연구생들을 이기는 실력도 있다. 항저우기원은 세계 최대-최고 시설이지만, 중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기원, 아니 바둑센터의 하나다. 한국 바둑과 중국 바둑을 투자의 외형 혹은 물량으로 비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입단의 문을 더 활짝 열면 우리 바둑계에 지속적으로 새바람을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입단의 문을 넓히는 것보다는 입단 연령을 지금의 18세에서 15세로 낮추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것도 얼마 전부터 나오던 얘기다. 역시 길게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라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와 관련 최명훈 9단이 최근 한국기원에 ‘입단 연령 상한선을 15세로 낮추고 연구생 숫자를 줄이는 대신 정예화하자’는 내용의 바둑 발전 5개년계획을 정식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일이다.
중국에 질까봐, 중국에 진다고 분해 할 건 없다. 우리 바둑의 실력은 세계가 알고 있다. 이제는 이기고 지는 차원을 넘어서 중국과 일본에게 바둑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중·일의 공동보조와 협조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먼저 손을 내밀고 그 실천에 앞장설 때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