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맑은샘 아마 7단은 일본으로 건너가 아마 바둑 정상으로 입지를 굳힌 뒤 관서기원 프로에 입문했다. | ||
일본에는 프로기사를 관장하는 단체가 둘 있다. 도쿄를 중심으로 전국을 커버하며 대외적으로 일본 바둑계를 대표하는 ‘일본기원’과 오사카를 중심으로 관서지방의 바둑계를 이끄는 ‘관서기원’이다.
홍맑은샘의 입단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프로기사는 9명이 되었다. 이 가운데 조치훈 9단(53), 조선진 9단(39), 류시훈 9단(38)과 김현정 3단 등은 유학파로 일본기원 소속. 조선진 9단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염찬수 4단의 지도를 받다가 1982년 도일, 안토 다케오 7단 문하를 거쳐 1984년 입단했고, 1999년 제54기 본인방전에서 당시 본인방 타이틀 홀더였던 대선배 조치훈 9단과 도전7번기를 벌여 4승2패로 승리, 조치훈 9단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일본 바둑 ‘3대 타이틀’의 하나를 정복했다.
류시훈 9단은 1980년대 중반 이창호 9단과 함께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공부하며 경쟁하다가 네 살 아우인 이창호 9단이 먼저 입단하자 진로를 수정, 일본에 건너가 가노 요시노리 9단(1999년 작고) 사사하면서 1988년 입단했고, 1994년 서열 5위의 천원전 도전5번기에서 린하이펑 9단을 3 대 1로 꺾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입단부터 7대 타이틀 획득까지 6년 8개월, 일본 바둑사상 최단기간 기록이었다.
김현정 3단은 바둑TV 진행자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효정 2단(28)의 친언니. 드물게 보이는 자매 프로기사다.
유학파가 아닌 재일동포 프로기사로는 일본기원의 송광복 9단(45), 관서기원의 김병민 7단(34), 하영일 5단(24)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김원 7단 문하생으로 있다가 일본에 건너가 이번에 입단한 홍맑은샘보다 먼저 2005년 입단한 김병준 2단(21)이 있다.
홍맑은샘이 관서기원의 프로가 되기까지에는 사연이 많았다. 2005년 봄, 재일 한국 유학생이 일본기원을 도쿄지방법원에 고소, 법정 다툼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 일본기원을 고소한 사람은 한국에서 아마 강자로 활약하다가 일본에 건너간 김상준 아마7단(27)이었다.
김상준 아마7단은 원래 프로기사 지망생이었다. 한국기원 연구생, 허장회 9단 도장 문하생으로 공부하면서 입단 문턱에까지 갔으나 불운하게도 나이 제한에 걸렸다. 그러나 입단의 꿈을 접을 수 없어 명지대 바둑학과에 진학해 기회를 모색하던 중에, 비슷한 처지의 두 청년, 실력은 공인받고 있으나 운이 닿지 않고 나이에 걸려 프로가 못 되고 있던 홍맑은샘 7단과 윤춘호 7단을 만난 것. 세 사람은 의기투합, 새로운 문을 찾아 2004년 일본으로 건너간다. 김상준은 명지대 바둑학과에 휴학계를 내고 정식 유학비자를 받았다. 홍맑은샘과 윤춘호는 관광비자였다.
세 사람은 일본기원의 문을 두드렸다. 입단대회 참가신청서를 보냈다. 참가만 되면 입단은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3일 안에 가부를 통보하는 것이 일본기원의 통상 관례였건만 보름이 지난 후에야 날아온 답장은 ‘참가 불가’였다. ‘대회 참가 시점에서, 일본에 5년 이상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아마 강자들이 입단대회 참가신청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일본기원은 당황했다. 요즘 한국 바둑을 생각하면, 세 사람이 참가하면 무조건 모두 입단할 것이었다. 일본기원은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종전에 없던 ‘5년 이상 거주’라는 단서를 급조해 넣는 한편 법원의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다시 정식 이사회를 열어 이번에는 아예 ‘만 22세 이하’라고 나이까지 못을 박았다.
홍맑은샘과 윤춘호는 뾰족한 반격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관광비자라는 것이 제한이자 약점이었다. 그러나 김상준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정식으로 받은 유학비자였다. 김상준은 도쿄 지방법원에 일본기원 처사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법원도 입장이 곤란했다. 참고할 만한 판례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법원은 반년 가까이 고심을 하는 것 같더니 연말에 답 아닌 답을 주었다. 양자가 잘 타협해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기원이 이들 ‘외래검객’에게 겁을 먹고 있는 동안 관서기원이 이들에게 호의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자 그를 눈치 챈 일본기원은 관서기원에 협조를 요청했던 것. 사정을 다 얘기하자면 길지만, 요컨대 이런 곡절을 거쳐 관서기원은 특별입단제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프로 저단자(초~4단)에게 흑을 들고 ‘덤 6집반’이 아니라 ‘덤 3집반’으로 두 판을 두어 2승이면 합격, 2패면 불합격, 1승1패면 재시험. 재시험에서 프로 9단과 흑을 들고 덤 없이 두어 이기면 합격. 여성은 1승이면 합격.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홍맑은샘의 장도를 축원한다. 그리고 사실은, 홍맑은샘도 홍맑은샘이지만 홍맑은샘을 바둑의 길로 이끌어온 아버지 홍시범 씨(57)의 삶도 그 기구함과 구구절절함이 만만치 않다. 1남1녀인데, 아들은 맑은샘, 딸은 맑은비. 그런 이름을 지었다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지 않은가.
그의 얘기는 다음을 기약하거니와 어쨌거나 한국기원 연구생의 입단 문호를 넓히라는 요구도 많고, 프로가 되려 하고, 될 자격도 충분한 아마추어 강자들의 적체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의 소리도 높은 요즘이다. 방법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 전에 관서기원, 그리고 대만기원, 그런 쪽으로 진출하는 길을 안내하는 것도 우선은 한 가지 유력한 방책으로 보인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