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원배 명인전에서 이창호 9단(왼쪽)이 원성진 9단을 종합전적 3 대 1로 꺾고 우승을 했다. 하지만 이 9단은 3국에서 시간패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 ||
국내 최대 기전 명인전 결승5번기가 화제에 올랐다. 명인전은 원래 도전기였으나, 지난 기 우승자 이세돌 9단이 휴직하는 바람에 이번 기에는 도전기가 아니라 결승기로 치러졌다. 12월 10일 결승4국에서 이창호 9단이 흑을 들고 원성진 9단에게 264수 만에 반집승, 종합 전적 3 대 1로 타이틀을 차지했다. 화제가 된 것은 4국이 아니라, 그에 앞서 12월 8일에 있었던 3국이었다.
요점은 이창호 9단이 시간패한 게 아니냐는 것. 3국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었고 박 기자도 며칠 후 지상 칼럼을 통해 언급을 했던 문제인데, 12일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좀 더 정확한 정황이 알고 싶었던 것. 당시 대국장에는 박 기자와 윤 9단 말고, <월간바둑>으로부터 제3국의 관전기 원고 청탁을 받은 시인 박해진 씨(49)도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바둑TV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세 사람의 얘기를 듣고 각자의 의견을 말했다. 전해들은 사정은 이런 것이었다.
제한시간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3회. 속기와 장고 중간이다. 이 9단이 백. 두 사람이 모두 마지막 1분 초읽기에 몰렸다. 이 9단이 착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날카롭고 세밀한 박해진 시인이 노트북 화면 아래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이 9단이 돌아온 것은 2분40초 후였다고 한다.
2분40초씩이나? 그러면 시간패 아닌가? 아니다. 마지막 초읽기 때는 착점을 하고 화장실에 가는 경우, 계시원은 초읽기를 잠시 중단하는 것. 이 9단이 한 수를 두고 나갔으니 원 9단이 둘 차례. 초읽기가 중단된 상태이므로 원 9단은 이 9단이 돌아온 후에 두면 되는 것.
그런데 이 9단이 착점을 하고 나간 후에도 계시원은 초읽기를 중단하지 않고, 원 9단의 초읽기를 시작했다. 이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계시원의 착각이었다. 이 9단이 두었으니 당연히 원 9단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원 9단은 “어, 아닌데…” 싶었지만, 계시원이 초를 읽으니 이 9단이 돌아오기 전에 착점을 했다. 상변에 패 자리가 있었다. 원 9단은 패를 따냈다. 계시원은 초읽기를 중단했다. 화장실에 가서 지금 자리에 없는 사람을 상대로 초읽기를 할 수는 없다는 것, 그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9단이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계시원은 다시 초읽기를 시작했다. 원 9단이 두었으므로 당연히 이 9단의 초읽기였다. 그러나 이 9단은 자신이 나가면서 초읽기가 중단되었을 테니, 이제부터 원 9단의 초읽기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마지막 1분에서, 다시 마지막 10초. 계시원은 하나, 둘 …, 불러가는데, 원 9단이 두지 않는다. 일곱인가 여덟인가 되었을 때 이 9단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바둑판을 보았다. 앗! 원 9단이 둔 수가 있었다. 이 9단은 부랴부랴 바둑통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옆방에 있던 입회인 김동면 9단이 들어왔다. 김 9단이 두 대국자, 계시원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원 9단에게 뭔가 묻는 것 같았다. 원 9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국이 속개되었다. ‘당사자 합의를 우선으로 한다’는 규정에 기댄 것이었다. 바둑은 무려 329수에서 끝났다. 이 9단이 3집반을 이겨 2 0대 1로 앞서게 되었다.
이걸 놓고 망년회 멤버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계시원이 실수한 것이고, 원 9단이 양해했으니 문제가 없는 거 아니냐. 바둑도 이 9단이 좋았다면서?”
“아니야. 바둑TV 화면을 두 번이나 돌려보았는데, 입회인이 들어오기 전에, 원 9단이 손으로 바둑판의 어딘가를 가리키는 장면이 있었어. 그건 복기를 시작하는 모습이거든. 이 9단의 시간패인 것으로 알고, ‘이 부근이 이상했다’든지, ‘어려웠다’든지, ‘실수했다’든지, 뭐 그런 거잖아.”
“계시원의 실수라고 해도 대국을 속개시킨 건 이상했지. 1980년 11월, 조치훈 9단(당시 8단)이 오다케 히데오 9단과 명인전 도전7번기를 둘 때, 그런 판이 한 번 있었잖아. 패싸움 과정에서 조치훈이 패를 따낼 차례인지 헷갈려 기록원에게 물어보고 착점했다가, 그게 아니어서 원래는 반칙패인데 기록원에게 물어보고 했다는 것이 참작되어 무승부 처리된 것 말이야. 직후에 일본기원은 ‘대국자는 대국 도중 누구에게도, 어떤 것도 물어볼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었지. 따라서 최소한 무승부로 하는 것이 옳았던 것 같아.”
“누가 유리했느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지. 게다가 요즘 이 9단은 종반이 예전처럼 그렇게 정확하고 강하지 못한 것도 사실 아닌가. 4국만 해도 종반에 들어갈 무렵 이 9단이 넉넉히 유리하다고 했지만 결과는 반집이었잖아. 3국도 이 9단이 2집반이나 3집반 유리한 국면이었다고는 하지만, 모르는 일이었어.”
“계시원 교육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야.”
“입회인이 문제의 순간을 놓쳤다는 것이 문제 같아. 입회인은 바둑이 시작되면 자리를 뜨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래도 바둑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드무니까, 대개 그렇게들 하지만, 어쨌든 입회인은 대국을 지켜보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즉석에서 판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사자 합의라는 건 이상해. 없애야 할 거야. 원 9단의 인품이 훌륭하더군. 그 판을 져도 결승이 끝나는 게 아니라서 그랬을까, 막판이나 결정판이었어도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은 드네만.”
“그렇게 비약할 건 없고, 일단은 칭찬을 받을 만한 행동이었지. 어쨌거나 이 9단은 인덕도 있어. 평소에 워낙 겸손하고 신중한 덕분이겠지. 입회인도 그래서 시간패라고 잘라 말하기 어려웠을 거야. 인지상정 아닌가.”
“무조건 시간을 재는 게 옳다고 봐. 화장실이고 뭐고 모든 걸 자신이 알아서 하는 걸로 해야지. 그럼 이런 문제가 안 생길 거 아냐.”
“하하하… 생리현상을 어떻게 하나? 대신에 가령 1시간마다 10분씩 휴식 시간을 주는 건 한 가지 방법이겠지. 그 시간에 물을 마시든지, 화장실에 가든지.”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