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회 농심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한국팀의 이창호 9단(왼쪽)과 이세돌 9단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 ||
김 9단은 1962년에 일본에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 도장에서 1년여 동안 공부하고 돌아왔다. 청년 김인이 일본에서 공부할 때 ‘긴토라’라고 불렸다. ‘인(寅)’을 일본식으로는 ‘토라’라고 읽는다. 1943년 양띠생인 김인을 ‘호랑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재미도 있었겠지만, 이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인은 이목구비가 수려했고 과묵한 성품이었다. 그리고 바둑기풍도 두터움을 선호했다. 용모와 성품에 기풍까지, 그런 게 다 이름에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962년은 호랑이해. 긴토라는 호랑이해에 찾아온 호랑이를 닮은 손님이었다.
1962년은 일본 바둑유학 붐(?)이 일었던 해다. 19세 김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여섯 살 꼬마 잔나비띠 조치훈, 아홉 살 초등학생 뱀띠 조훈현 등이 청운의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넜다. 반세기 전의 일이다.
김인은 유학에서 돌아와 얼마 안 있다가 드디어 조남철 9단을 꺾고 ‘국수’가 되면서 한국 현대바둑 최초의 세대교체를 이룬다. 조치훈은 계속 머물며 공부하다가 1980년 일본 바둑의 ‘명인’을 정복했고, 10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돌아온 조훈현은, 조치훈이 일본 ‘명인’이 되기 조금 전에 한국 바둑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1962년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이 올해와 같은 경인년 호랑이해. 전쟁이 일어났던 격동의 해다. 그해 여름 스물일곱 살의 청년 조남철은 리어카에 바둑판과 바둑책을 싣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가을에는 병사가 되어 싸우다가 낙동강 전투에서 생사의 경계를 넘었다.
▲ 왼쪽부터 고 조남철 9단, 김인 9단, 조훈현 9단. | ||
1986년에는 조훈현의 제자, 열한 살 초등학생 이창호가 프로에 들어왔다. 세 번째 세대교체의 서곡이었다.
1998년은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 그 무렵의 일로 기억나는 건 1997년 초, 서봉수 9단이 제5회 ‘진로배’에서 9연승을 기록한 것이다. 진로배는 한·중·일의 프로기사가 각 5명씩 출전해 대결하는 단체-연승전으로 요즘 열리고 있는 ‘농심배’의 전신. 당시 한국 선수단은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김영환(40)이었다. 개막전에서 한국의 선봉 김영환이 중국의 선발 위빈 9단(43)에게 졌다.
위빈은 다음 상대인 일본의 아와지 슈조 9단(61)을 꺾어 2연승. 여기서 서봉수 9단이 한국 팀 2번 타자로 등장해 중국 5명, 일본 4명, 9명의 중-일 고수 전부를 제압한 것. 글자 그대로 전무후무한 기록이요, 불멸의 신화였다. 그 시절 서 9단의 국제대회 전적은 64전 42승22패, 승률 65.6%였는데, 중국 기사에게는 유별나게 강해 15전14승1패, 무려 93.3%라는 승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2010년. 1950년에서 한 갑자를 돌아왔다. 올해는 또 어떤 격동의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출발은 좋다. 2009년 6월 1년 반 휴직을 선언했던 이세돌 9단이 마음을 바꾸어 6개월 만에 복직을 신청한 것. 1월 8일 한국기원 상임이사회의 승인 절차가 남아 있으나, 이 9단의 복귀를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바둑계에서 뭔가 움직이기 전에 중국에서 기획하고 있는 이세돌 대 구리의 10번기가 상황 타개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잘 된 일이다.
6개월이란 게 짧은 시간이긴 한데, 짧은 공백이라 하더라도 그게 혹시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바둑계 사람들은 “정말 1년 반을 쉰다면 바둑도 시쳇말로 ‘맛이 가기’ 쉽다. 승부사는 며칠만 승부 호흡을 가다듬지 않으면 벌써 날이 무뎌진다고는 것 아닌가. 빨리 돌아와 다행이다”면서도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는 이창호 9단도 다시 힘을 낼 전망이다. 연말에 명인전에서 우승했고, 지금 십단전 결승에서 어린 후배 박정환 4단과 겨루고 있다. 올해는 세계대회에서도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기 기대한다.
국내적으로 2009년은 ‘엄친아’ 김지석 6단의 해였다. 바둑을 가장 많이 두었고, 제일 많이 이겨 승률도 최고였으며, 연승도 제일 많아 이른바 공격 전 부문에서 수위를 달렸다. 국내 최대 마당인 한국리그에서도 MVP의 영광을 안았다. 새해엔 중간 선배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등을 제치고 이창호-이세돌의 최정상 고지까지 치고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연말에 들어가면서 후배 박정환 4단에게 거푸 발목을 잡힌 것은 쑥스러운 일이었다. 바로 그래서 박정환은 올해도 계속 주목해야 할 소년이다. 올해는 대형사고를 하나쯤 터뜨려 주지 않을까.
중국에서는 대기만성형이라는 말을 듣는 콩지에 9단이 과연 구리 9단을 완전히 넘어설 것인지 궁금하고, 일본에서는 ‘명인’ 쟁취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이야마 유타 9단이 올해도 계속 바람을 일으킬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반외에서는 신임 기사회장 최규병 9단의 행보가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입단 문호의 확장 및 개방, 기전 상금제의 보완 및 확충은 2대 당면과제다.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바둑 경기는 바둑사에 또 다시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도 바둑 경기는 펼쳐질 것이다. 아시안게임에서 바둑이 메달을 따온다면 바둑은 체육 속에서도 확고히 자리를 잡을 것이며 바둑에 대한 정부의 예우와 지원도 격상될 것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