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8년 당시 ‘2013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집행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의 플라자 호텔에서 박광태 광주시장과 한국대학생 응원단이 필승을 다짐하는 모습. 연합뉴스 | ||
# 현장에 있던 3인의 증언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광주시 관계자들이 (가방 분실에) 크게 당황했기 때문이다. 5월 29일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의 총회장소인 벨기에 브뤼셀의 플라자호텔에 광주시 유치위원회가 도착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박광태 광주) 시장의 비서가 돈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30일 최종리허설, 31일 프레젠테이션과 투표가 예정돼 있어 바쁜 탓에 그냥 흘려들었는데 이와 관련된 소식은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들은 바 있다.”
당시 플라자호텔에 묵었던 관계자 A씨의 말이다. 그는 “사라진 돈 가방에 현지에서 쓸 로비자금이 현찰로 들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수십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에 달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문은 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당시 광주시 유치위원회의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던 B 씨와 어렵게 접촉했다. 내부에 있었으니 상황을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이다. B 씨는 “확실히 가방 하나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유치단 멤버였기에 잘 안다. 돈의 액수가 50만 달러나 1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많은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훨씬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돈과 중요한 서류가 담긴 가방이 없어졌고, 그래서 부스설치와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B 씨는 가방의 분실 상황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광주시 유치위원회가 플라자호텔에 도착했는데 바로 체크인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프런트 옆에 우리 짐을 다 모아 놨다. 왜 그물 같은 것으로 짐을 덮어두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 놓고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는데 시장의 비서가 관리하던 가방 하나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분실된 것이다.” B 씨는 인터뷰의 조건으로 철저하게 익명을 요구했다.
유치단으로 현장에 있던 C 씨도 가방 분실에 대해 확실히 들은 바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C 씨는 “현장에서 담당 비서가 많이 혼나고, 광주시 최고위층이 많이 당황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사실이 알려질 경우 워낙 파장이 커 조용히 덮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론적으로 세 사람의 증언은 매우 일치하고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자격으로 당시 플라자 호텔에 묵으며 광주의 U대회 유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시민의 혈세로, 또 국가적인 대사를 위해 대표단으로 파견된 사람들이 제법 큰돈과 또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는 가방을 관리부실로 분실하고, 또 이를 철저하게 은폐했기 때문이다.
# 광주와 정부 따로따로
당시 브뤼셀의 분위기는 좀 묘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유독 요란스러운 한국 사람들은 이때도 다른 경쟁국이 놀랄 정도로 많은 수가 몰려갔다. 18명의 광주시 유치위원회에 광주의 지역정치인 시민 대학생 등으로 구성된 유치단,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유인촌 장관과 신재민 차관 및 외교부 관계자 등 정부대표단까지 있었다. 특히 참관단 성격의 2013 광주 유치단은 시의회, 자치구, 후원회, 시민단체, 체육계, 대학생 등 120여 명 규모로 구성됐다. 주요 인사들만 움직이는 데도 버스 두 대가 필요할 정도였다.
▲ 2008년 5월 광주에서 U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의 프라자 호텔에 도착한 유치단. | ||
C 씨에 따르면 당시 광주 쪽과 정부쪽이 좀 따로 움직이는 듯한 인상이 짙었다고 한다. C 씨는 “이미 문광부와 외교부 사람들은 광주가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했다. 그리고 심지어 광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듯한 인상까지 풍기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광주와 정부가 따로따로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광태 시장을 중심으로 한 광주유치위원회는 앞서 5월 21일부터 FISU 집행위원국가들을 돌며 유치활동을 펼치다 29일 브뤼셀로 왔고 유인촌 장관 등 정부대표단은 29일 브뤼셀 현지에서 합류했다. 참고로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고 박광태 시장의 광주는 민주당의 텃밭이다.
즉 막 정권을 잡아 새판 짜기를 하던 정부는 U대회 유치가 국민적 관심사이다 보니 지원은 나왔지만 큰 관심이 없었고 실제로 광주 유치위원회 중심으로 유치활동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광주 유치위 내부에서 발생한 돈 가방 분실 사건은 바쁜 와중에 충분히 묻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가운데 광주는 5월 31일 개최지 선정투표에서 러시아의 카잔에게 졌다. 그리고 ‘사라진 돈 가방’에 대한 얘기도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졌다.
# 해당 비서 “그런 일 없다”
2년 전 ‘사라진 돈 가방’은 지난달 박광태 광주시장이 불출마, 즉 3선 도전 포기를 선언하면서 불씨가 되살아났다. 여론조사에서 현역 시장이 뒤지는 기현상이 나타났고 ‘현역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3선을 포기’하는 배경에 대해 구구한 얘기들이 나돌았다. 이 과정에서 박 시장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인 2015 하계 U대회 유치도 검증대상이 됐고 2008년 브뤼셀에 다녀온 몇몇 사람들로부터 ‘사라진 돈 가방’ 의혹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충분한 사전취재를 한 <일요신문>은 핵심 당사자인 박광태 시장의 D 비서에게 사실 확인에 나섰다. 그는 현재도 2년 전과 같은 비서로 재직 중이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당시 브뤼셀에 있던 유치위원회 관계자 등으로부터 복수의 증언을 들었다며 재차 묻자 이번에는 “그런 얘기(사라진 돈 가방)를 누구에게 들었습니까?”라고 되물어왔다. 큰 액수의 돈이나 중요한 서류가 아니더라도 분실된 가방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가방 자체를 잃어버린 사실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지금 한 얘기, 즉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을 박광태 시장을 비롯한 광주시의 공식반응으로 삼아도 되겠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까지 나왔다. 즉 광주시는 ‘사라진 돈 가방’ 자체를 부인한 것이다.
광주 U대회는 ‘대회 유치 성공’의 환호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그동안 많은 문제가 지적돼 왔다. 유치조건으로 참가선수단에게 1일 체재비 10유로, 항공료 일부 부담, 직항 전세기 무료제공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데 이어 지난해 U대회 부담금이 2014아시안게임의 두 배에 달하는 2000만 유로(약 360억 원)인 것으로 알려져 ‘혈세낭비’라는 여론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광주시는 이 부담금 때문에 약 400억 원의 빚을 내게 됐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지난 4월 6일에는 이병완 국민참여당 광주시장 예비후보가 2015 U대회 개최 여부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잡음이 끊이질 않는 광주 U대회. 이제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라진 돈 가방’과 또 이에 대한 ‘은폐’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향후 더 시끄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