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정. | ||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 구상과 관련한 실무작업은 청와대 정무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4년 5월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정무수석직을 공식 폐지하는 등 정무기능직을 축소해 온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7일 비서실 직제를 일부 개편하면서 정무팀을 다시 부활시켰다.
팀장을 겸하는 정무비서관에는 386 참모그룹을 대표하는 정태호 당시 대변인을 발탁했고 정무기획비서관은 기획조정비서관 명칭을 바꿔 문희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보좌관 출신인 소문상 비서관이 맡도록 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지난해 10월 27일 기존에 임명된 이강철 정무특보 외에 이해찬 전 총리, 문재인 전 민정수석, 조영택 전 국무조정실장, 오영교 전 행자부장관 등 핵심 참모 4인을 정무특보로 새로 임명했다. 노 대통령의 개헌 카드 및 마지막 국정운영 구상은 이때부터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청와대 정무팀과 막강 특보단은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 인사는 물론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며 광범위한 여론 수렴 작업에 착수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여론 수렴을 바탕으로 분열 위기에 처한 열린우리당의 갈등 수습 방안 및 정계개편 문제와 관련한 친노그룹의 대응책, 그리고 대선정국을 겨냥한 마스터플랜을 준비하는 데 막후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곽 친노사단의 물밑 지원사격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구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외곽 친노사단의 핵심 인사는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씨와 신계륜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은 특히 노 대통령의 절대적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안 씨가 재집권 플랜 등 대선정국에 대비한 마스터플랜을 구상하는 데 막후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 박계동 의원이 개헌론의 실제 기획자로 안희정 씨를 지목하면서 제시한 ‘정치지형변화와 국정운영’ 문건. 표시된 굵은 선 안에는 개헌국면과 그 시기가 적혀 있다. | ||
박 의원은 또 이날 모 라디오에 출연해 “작년 10월부터 대선주자를 관리하는 비공식 팀이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해 또다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박 의원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열린우리당 허동준 부대변인은 국회에서 브리핑을 갖고 “박 의원이 공개한 문건은 이미 2005년에도 일부 보도된 것”이라며 “안희정 씨가 작성한 게 아니라 한 당직자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작성했던 문건”이라고 반박했다. 허 부대변인은 또 “이미 보도된 바 있는 문건을 갖고 나와 무책임하게 정치 공세를 펼치는 건 온당치 못하다”며 “특히 공식 지위를 갖고 있지도 않은 안희정 씨를 끌어다가 개헌을 음모론으로 몰고가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이 문건은 A4 용지 82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 형식을 띠고 있다. 주요 내용은 크게 △정치지형의 변화와 특징 △정치지형변화의 전략적 합의 △정국운영방안- 대통령 정치의 강화 △시기별 세부계획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가운데에는 대연정, 한나라당 대선주자 관리, 개헌 정국,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내용 등이 들어 있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2005년 7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해 여야 정치권을 한바탕 흔들어 놓았고, 지난 9일 꺼내든 개헌 카드도 문건에 적시된 시기별 세부계획에 명시돼 있는 항목이다.
한나라당이 개헌 음모론을 제기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문건에 적시된 로드맵 중 이미 구체화된 사례가 적지 않고 결과론이지만 개헌 정국도 문건에 적시된 것과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 대선주자 관리’와 ‘남북정상회담’ 부분은 노 대통령과 현 여권이 마지막 승부카드로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대책마련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문건 작성 주체가 누구이고 노 대통령에게는 보고됐는지 여부 등을 정치쟁점화 해 개헌카드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노림수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노 대통령과 현 정권 차원의 대선 개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문건 작성 주체와 관련해서는 박 의원의 주장대로 안 씨라는 확실한 물증은 없지만 노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는 386 참모그룹에서 작성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문건 내용과 형식에 비춰볼 때 안 씨가 직접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문건이 안 씨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고 안 씨가 이 문건을 재정리해 노 대통령에 보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과 일부 정치권의 주장대로 안 씨가 ‘국정운영’ 문건을 작성했는지 그리고 개헌 정국이 이 문건 또는 이 문건을 바탕으로 업데이트된 최근 버전에 의해 기획됐는지 여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다만 안 씨가 노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몇 안되는 핵심측근이자 선거기획통이란 사실에 비춰볼 때 개헌정국과 차기 대선구도 등 노 대통령의 마지막 국정운영 구상에 그가 막후 조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란 의구심은 쉽게 떨쳐버리기 힘들 것 같다. 정계 일부에서 앞으로 또 다른 안 씨의 구상이 나올지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