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대선의 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1월 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핵심 측근인 유승민 의원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자질 검증’을 주장하고 나서면서부터 한나라당에서는 후보 검증 논란이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그런데 유 의원의 후보 검증 주장에 대해 박 전 대표 캠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캠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후보 검증 부분은 경선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마지막 승부수로 띄웠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칼을 빼든 것이 아니냐는 내부 비판이 나왔다. 또한 팩트가 확인되는 한두 개의 사안을 가지고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았어야 했는데 계속 ‘검증을 해보자’는 식의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해서 신뢰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 후보 검증 주장의 결과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 의원 발언으로 촉발된 한나라당의 후보검증 논란은 한때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다 최근 갑자기 잦아들고 있는 양상이다. 박 전 대표 측이 민감한 발언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것에 대한 양측의 판단은 엇갈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이명박 대세론에 의해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의 하위개념으로서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유 의원이 ‘후보검증’을 던진 뒤 당의 주요 이슈가 ‘검증’으로 이동되면서 박 전 대표가 추격할 모멘텀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후보 검증 논란은 이 전 시장의 ‘불안한 1위’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정치적 효과도 거뒀다. 하지만 계속 후보 검증 주장을 할 경우 네거티브 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것 같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은 최근 후보 검증 논란이 잦아지고 있는 까닭을 다르게 분석하고 있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우리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박 전 대표 캠프 내부에서 ‘후보 검증에 대한 팩트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뭔가 있는 것처럼 주장한 것은 전략적 미스’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후보검증 주장을 하지 말자고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전 시장 측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후보 검증 주장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소폭 상승한 반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기대만큼 크게 오르지 않았던 것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SBS가 지난 2월 1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은 44.9%, 박근혜 전 대표는 20.6%를 차지해 1, 2위 격차에 별 변화가 없었다).
사실 한나라당의 후보 검증은 경선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화약고’임에는 틀림없다. 여권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한나라당의 후보가 이명박 전 시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계속해서 ‘X파일’을 수집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박 전 대표 측도 이 전 시장에 대한 민감한 자료를 다수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권의 한 정보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에 대한 각종 자료를 보면 그가 검증의 도마 위에 올라서는 순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도덕적인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박 전 대표 측에서 이명박 X파일 50개를 확보해놓고 일전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여기에는 선거법 위반 혐의와 재산, 사생활 등 민감한 문제가 총망라돼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재직하면서 확보한 한나라당 차원의 검증 자료도 다수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에서는 “귀가 있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파일도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이득을 볼 생각도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럼에도 국회 주변에서는 “박 전 대표 측이 이 전 시장을 검증하기 위한 파일은 준비 중이지만 직접 터뜨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대신 언론과 여론의 압박이 고조되면 자연스럽게 후보 검증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망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 측이 무리하게 후보 검증을 이슈화시킬 경우 자칫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력 대선후보에 대한 사전 검증이 본격화할 경우 가장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자는 누구냐’는 질문에 박 전 대표라고 답한 응답자는 24.3%로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후보 검증으로 박 전 대표가 더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재산 문제 등 이 전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검증론의 실제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후보 검증 공방은 서로에 대한 상처만을 남긴 채 지루한 소모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두 후보에 대한 검증은 주로 사생활이나 재산 형성 과정 등에 치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그 ‘검증’이 쉽지 않다. 두 후보는 제보나 제3의 경로를 통해 ‘정보’를 제공받겠지만 그것의 사실 관계를 독자적으로 규명할 만한 권한과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한나라당 후보 간의 검증 문제는 무수한 의혹만을 남긴 채 찜찜하게 끝날 것이다. 오히려 고급 정보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여권의 ‘공작’에 따라 두 후보 모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대선 무대를 내려올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