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차멀미는 보통 12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많지만 어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많은 편이다. 속이 메슥거리다 어지럼증과 구토까지 이어지면 모처럼의 나들이 기분은 엉망이 되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모처럼 장거리 여행을 시도했다가 멀미하는 아이 때문에 숙박 예약까지 취소하고 뒤돌아서는 경우도 생긴다.
멀미는 체력이나 체질과 상당히 연관이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비법’도 없지 않다.
“흔들리지 않는 먼 풍경을 보면 시각자극이 적어 멀미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등의 방법들이다.
아이 둘을 낳은 뒤로는 단 30분만 차를 타도 속이 울렁거린다는 주부 H씨(35). 임신 기간에 입덧이 유난히 심했던 그는 아이를 낳은 뒤로도 잦은 멀미가 이어지고 있다. 임신 전에는 멀미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차를 탈 일만 생기면 지레 겁이 난다고 한다.
차멀미는 의학용어로‘가속도병’ 또는 움직임 때문에 생긴다고 해서‘동요병’이라 불린다. 그러나 정확히 질병은 아니다.
대표적인 증상은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이다. 이 외에 졸음 무기력 두통 복통 식은땀 등. 계속해서 한숨이나 하품이 나는 현상도 멀미 증상에 속한다. 멀미가 계속되면 결국 음식물을 토하고 기운이 빠지며 기분도 나빠진다. 이 증상은 대개 차에서 내려 한 시간이면 회복되지만, 길게는 하루 정도 지속되기도 한다.
멀미는 왜 생길까? 멀미는 ‘감각의 불일치’로 인해 생긴다. 처음 보행을 배울 때 우리의 기억 속에는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눈, 귀 등 감각기관계의 반응이 저장된다. 나중에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생기면 기억된 정보를 가지고 감각기관들이 미리 예측을 하여 준비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를 탄 상태에서는 이동에 따른 근육의 움직임이 없거나, 일상적인 기억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경험하게 되므로 두뇌에 저장된 운동의 기억과 실제 감각 사이에 불일치가 일어난다. 평소의 움직임과는 다른 엘리베이터, 배, 비행기, 차를 처음으로 탈 경우 대개 멀미현상이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 그네 회전의자 체조 등 유사한 움직임에 대하여 감각의 적응훈련을 하면 멀미를 예방하는 데 크게 도움된다. 차도 자주 타면 멀미가 줄어들고 결국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멀미와 관계되는 감각기관으로는 특히 귀가 중요하다. 귀속에는 우리 몸이 균형을 잡도록 하는 세반고리관과 전정신경을 포함한 전정기관이 있다. 차의 발진이나 정지 등과 같은 격한 움직임으로 전정기관이 강하게 자극을 받으면 어지럼증이 심해지면서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이다.
두려움, 피로감 같은 정신적인 요소도 전정기관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된다. 가솔린이나 배기가스 냄새를 맡거나 멀미에 대한 지나친 걱정 때문에 더 심하게 멀미를 할 수가 있다.
상지대한방병원 사상체질의학과 김달래 교수는 “멀미는 보통 체격이 마르고 체력이 약하며, 소화기 계통이 약한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난다”며 “이런 사람들은 평소 균형 있는 식사를 하고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집이 센 사람일수록 멀미가 잘 나타난다는 재미있는 보고도 있다.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은 새로운 감각을 수용하는 유연성이 모자라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갈등이 더욱 강하고 이것이 멀미와 같은 현상으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흔히 멀미가 심하면 건강이 나쁜 것 아닐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멀미가 심하다고 해도 대부분 건강상태와는 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양쪽 전정기관이 고장 나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거의 멀미를 하지 않는다. 전정기관이 유난히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색다른 흔들림에 익숙해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단, 편두통이 있다면 정상인보다 차멀미가 심할 수 있다. 편두통성 어지럼증이 있는 환자는 어지럼과 두통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고, 두통 없이 어지럼만 나타날 수도 있으며 대부분 멀미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을지대학병원 신경과 오건세 교수는 “유난히 멀미가 심하면 편두통이 아닌지 한번쯤 의심을 해보는 게 좋다. 이때는 편두통을 치료하면 멀미도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보통 여자가 남자보다 멀미를 잘 일으키며, 12세 이하의 어린이가 가장 멀미가 심하다. 50세 이후에는 거의 없어진다. 갓난아기 때는 멀미를 거의 하지 않다가 1~3세쯤부터 멀미가 심해진다. 갓난아기는 누워있거나 안겨있는 때가 많고, 아직 전정기관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스스로 평형을 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차나 배, 비행기 등을 타지 않은 일상생활에서 멀미와 비슷한 어지럼증을 느낀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멀미와는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양쪽 귓속의 전정기관 중 한쪽에 이상이 생겨 평형이 깨져도 어지럼증이 생긴다.
이동과 관계없는 멀미현상의 가장 흔한 원인은 뇌의 혈류 부족이다. 세반고리관 등 말초 전정기관이 위치하고 있는 내이는 매우 민감한 기관으로, 특히 혈류 변화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사소하게는 담배나 카페인, 과도한 염분 섭취 등으로 뇌혈류가 일시 감소해도 어지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오래 서있거나 갑자기 일어섰을 때 어지럼을 느끼는 기립성 조절장애, 감정적 스트레스나 불안, 긴장이 일으키는 동맥의 경련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고령이거나 심장기능 저하,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뇌혈관질환의 위험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뇌졸중의 초기 증상으로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이때는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해야 한다. 머리에 외상을 입거나 감염으로 내이가 손상되는 경우에도 어지럼과 메스꺼움 등 심한 멀미 증세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멀미 예방을 위해서는 배나 차를 탈 때 흔들림이 적고 창문이 있는 곳에 앉는 것이 좋다. 버스나 자동차는 앞좌석, 비행기는 주날개 위쪽의 좌석, 배는 가운데가 좋다. 벨트나 단추 등 신체를 조이는 것은 느슨하게 풀어주고 심호흡을 하면서 주위의 경치를 편하게 바라보면 도움이 된다.
또 차가 진행하는 방향을 보고 앉되, 차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책 신문을 읽는 등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잠을 자면 멀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면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식 섭취는 차를 타기 2시간 전에 하되, 차 타기 전에는 기름진 음식이나 매운 음식, 소화하기 힘든 음식, 술은 피한다.
멀미가 아주 심해 장거리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평소 자주 타는 차에 같은 운전자가 운전하는 경우, 그리고 앞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면 빨리 적응할 수 있다.
멀미약은 귀 속에 있는 전정기관의 기능을 둔화시켜 멀미를 예방한다. 먹는 약은 차타기 30분~1시간 전, 껌처럼 씹는 약은 10분 전에 복용해야 효과가 높다. 귀 밑에 붙이는 멀미약은 간편하기는 해도 최소한 출발 4시간 전에는 붙여야 효과가 있다. 멀미약의 부작용으로는 입이 마르고, 졸리고, 시야가 흐리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럼증이 생길 수가 있으므로 어린이나 노약자가 사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붙이는 약을 만진 후에는 반드시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먹는 멀미약은 항히스타민제로 복용하고 나면 심하게 졸리게 된다. 임산부는 어떤 멀미약도 복용하거나 붙여서는 안된다.
멀미약은 단지 예방효과만 있을 뿐 치료효과를 위한 것은 아니므로 일단 증상이 먼저 나타났다면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멀미가 나면 일단 차에서 내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 편한 자세로 차가운 공기를 쏘이며 증상을 완화시키는 정도가 최선의 응급처치법이다.
민간요법 알아보기
▲알로에 잎을 5cm 가량 잘라 조금씩 씹어 먹는다.
▲레몬의 끝에 3개 정도의 구멍을 뚫고 속을 빨고 있으면 차멀미나 배멀미를 하지 않는다. 휘발유 냄새를 맡고 속이 메스꺼울 때 레몬의 향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차나 배를 타자마자 즉시 종이를 만 것으로 콧구멍을 자극해서 재채기를 3~4번 하면 멀미를 하지 않는다.
▲천마 15g를 물에 달여 기차나 배를 타고 가기 며칠 전부터 하루 2~3번에 나누어 마신다. 주로 경련을 멈추고 어지럼증을 낫게 하므로 멀미가 생기지 않게 하는 데 쓰인다.
▲잇꽃과 당귀 각 30g을 물에 달여서 하루 3번 한번에 2~4㎖씩 마신다. 멀미로 어지러움이 심할 때 먹으면 좋다.
▲차 또는 배멀미에는 마른 오징어를 굽지 않고 그대로 잘게 찢어서 먹는다. 매실을 입에 물고 있거나 직접 배꼽에 붙여도 효과가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상지대한방병원 사상체질의학과 김달래 교수, 을지대학병원 신경과 오건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