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0분, 심지어는 5분도 안 돼 후다닥 식사를 마치는 사람이라면 위장에 탈이 나기 쉽다. 침의 소화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시간도 없이 식사를 서두르는 한국인들은 맵고 짠 음식, 뜨거운 음식까지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에 위장병이 쉽게 찾아온다. 불규칙한 식사를 하거나 과음을 자주 하는 경우에는 특히 요주의 대상이다.
위장에 크고 작은 탈이 났을 때의 주된 증상은 소화불량이나 식후팽만감, 구토, 속쓰림, 상복부의 불쾌감, 통증, 식욕부진, 체중감소 등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는 조기에 병을 발견하지 못해 위암 같은 중한 병을 키우게 된다.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고병성 교수는 “실제로 위암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나타나도 기능성 소화불량이나 소화성 궤양의 증상과 비슷해 가볍게 여기기 쉽다. 위암은 조기 발견만 되면 수술이 간단하고 생존율도 높은 만큼 소화제나 제산제만 사먹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짠 음식이나 탄 음식, 방부제 등이 위암의 위험 인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소금 섭취량이 많은 동아시아 국가나 바비큐·훈제음식을 좋아하는 아이슬란드와 일본에 위암 발생률이 높다.
위장병 얘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 1983년 마샬이라는 호주 의사가 발견했다.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가 감염돼 있고, 국내 감염률은 이보다 훨씬 높은 70% 정도라는 보고가 있다.
만성 위염이나 위 내벽이 허는 위·십이지장 궤양의 경우 식습관보다는 이 균에 감염되는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암처럼 위·십이지장 궤양도 별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구토가 날 때는 이미 오래된 상태일수 있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비스테로이드 진통제를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에도 생길 수 있다. 자극적 음식 술 담배 등은 위장질환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궤양이 심해지면 위출혈, 협착 등의 합병증이나 암으로 진행될 수도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위·십이지장 궤양이나 위암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구토, 복통, 속쓰림, 소화불량 등 위장의 이상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적절한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중년이 되면 1~2년마다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한다. 가족 중에 위암 환자가 있다면 특히 신경을 쓴다. 최근에는 수면내시경 외에 코로 하는 내시경 방법까지 개발돼 훨씬 편해졌다.
가슴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있을 때는 심장이 나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위에 이상이 생긴 경우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을 앞으로 구부릴 때 가슴 통증이 있고 기침이 잦다면 위식도 역류가 의심된다. 만일 가슴 엑스레이 사진도 정상이고, 축농증·비염 등의 질환도 없으면서 기침약이 듣지 않는다면 위장병을 의심해볼 만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쉰 목소리일 확률도 12배나 높다.
위 또는 십이지장의 내용물이 식도내로 역류되어 증상이 발생한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의들은 “육류 등의 기름진 식사 등 서구화한 식습관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기름진 음식이 위와 식도 사이의 괄약근 압력을 떨어뜨려 역류를 일으킬 수 있다. 과식을 하는 것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 국내 인구의 70%가 감염돼 있다는 헬리코박터파이로리균. | ||
술을 마신 후 구토를 할 때 피가 섞여 나온다면 ‘말로리 와이즈 증후군’일 수 있다. 갑작스러운 구토 때문에 식도의 점막이 찢어지는 것으로, 보통은 치료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좋아진다. 하지만 출혈이 심해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위식도 역류일 때는 술은 물론 담배를 삼가고 카페인·탄산음료, 초콜릿, 사탕 등을 먹지 않는 게 좋다. 과식이나 고지방식, 야식도 금물이다. 식후에 바로 눕는 습관도 위식도 역류를 부추기므로 삼간다.
결혼 전부터 과민성 장증후군으로 고생해 온 J씨(32)는 속이 불편한 아침이면 조마조마하다. 평소와 다른 음식을 먹으면 출근길의 만원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내려 화장실을 찾느라 진땀을 뺀다. 어렵게 해결하고 나면 행여 회사에 지각이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지만 증상이 심하면 바쁜 출근시간에 화장실에 몇 번씩 드나드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이 큰 것이 과민성 장증후군이다.
식사를 하면 소화가 잘 안 되고 항상 속이 더부룩한 경우, 설사 또는 변비가 오래 계속되거나 교대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과민성 장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는 청장년층에 많고, 50세 이후에는 크게 감소한다.
소장과 대장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생기는 일종의 신경성 위장병이다. 연동운동으로 노폐물을 밀어내는 장의 리듬이 스트레스 등으로 깨지는 것이다. 배가 살살 아프거나 심한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잠깐 괜찮다가 다시 가게 되고, 배변 후에도 시원치 않다. 기름지거나 매운 음식, 찬 음식을 먹으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
증상이 3개월 이상 갈 때는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증상에 따라 대장의 운동을 촉진시키는 식이섬유, 변비 또는 설사치료제 등을 쓰게 된다. 위장관의 운동, 감각기능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하는 ‘젤막’(노바티스사) 같은 신약도 있다. 장증후군 치료제로는 유일하게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위내시경 검사를 하면 위·십이지장 궤양이나 위무력증 등의 뚜렷한 이상이 없다는 데도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돼 소화제를 자주 먹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는 식습관에 문제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아침은 바쁘다고 거르고, 점심이나 저녁을 과식하는 등 불규칙한 식사를 하는 등 위장을혹사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면서 저녁을 조금만 먹으면 증상이 쉬 좋아진다.
과식, 폭식을 하면 위가 과도하게 팽창해 기능이 떨어지므로 만성적인 소화불량, 위식도 역류가 생기기 쉽다. 따라서 위에 이상이 없으면서 계속 재발하는 만성 기능성 소화불량이라면 식습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자신이 먹은 음식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종류와 양을 기록해 어떤 식습관이 문제인지 따져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남경희한방병원 내상센터 윤성우 교수,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고병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