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인스턴트식품인 햄버거도 유럽연합(EU) 보건국에서 준비중인 ‘햄버거 광고 자율규제안’이 마련되면 유럽에서는 광고조차 보기 힘들어지는 등 선진국에서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다.
과자나 사탕, 라면,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의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에 이르기까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주 먹는 먹을거리가 아이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3~4세의 두 아들을 둔 주부 이현숙씨(34)는 요새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줄이는 일 때문이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둘째 아이를 보다 못해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민하던 무렵, 서점에서 본 한 권의 책이 발단이 됐다. 과자회사의 간부로 16년간 근무한 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자를 좋아하는 아이일수록 아토피 피부염 같은 알레르기 질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등 건강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밝힌 책이었다.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들 식품 속에 대체 어떤 성분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일까. 문제가 된다고 보고되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알아본다.
나트륨 당분 특히 짭짤한 스낵류에 나트륨(소금) 함량이 많아 과자를 많이 먹을수록 과잉이 되기 쉽다. 영국 식품표준청은 어린이가 섭취하는 소금의 양을 6개월까지는 1일 1g 이하, 1세 이하는 1일 1g, 1~6세는 1일 3g, 7~10세는 1일 5g으로 줄이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 이상의 나트륨을 장기간 섭취하면 체내의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 혈액 내 수분량이 증가하면서 혈액의 부피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고혈압이 생기면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비만인 아이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단맛 역시 문제가 된다. 설탕과 물엿, 슈거시럽, 당밀, 카라멜시럽 등 단맛을 내는 당류는 단독으로 또는 두세 가지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 안병수씨는 책에서 “우리 몸의 혈당관리 시스템을 교란시켜 저혈당증을 유발, 당뇨병으로 발전시키는 주범이다. 저혈당 상태에서는 뇌에 포도당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영양 불균형 보통 과자를 먹고 나면 당분이나 지방성분이 많아 칼로리를 채워주기 때문에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달아난다. 그래서 세 끼 식사를 소홀히 해 영양을 고르게 섭취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식품에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단백질이나 비타민, 미네랄 등의 함량이 매우 낮다. 그래서 ‘텅빈 칼로리(Empty calorie) 섭취’라고 표현한다.
포화지방산 과자를 하나 골라서 표기된 제조성분을 보면 팜유나 코코넛유, 쇼트닝 등의 지방성분이 표기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 기름에 튀겨 제조, 가공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성미경 교수는 “이런 기름은 옥수수기름이나 콩기름 등의 기름보다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아 동물성기름과 비슷하다”며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은 식품을 장기간 섭취하면 심혈관질환의 발생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아이스크림은 당류와 지방, 물을 주원료로 향료와 색소, 인공감미료 등의 여러 첨가물이 들어가는 가공식품. 당류와 나쁜 지방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콜레스테롤이 많아지고 대사기능이 악화된다는 보고도 있다.
각종 첨가물 가공식품에는 첨가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많게는 수십 가지가 들어간다. 우선 보다 나은 맛과 색을 쉽게 내기 위해 인공색소와 합성향료가 대부분의 식품에 들어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산화방지제, 팽창제, 유화제 등의 수많은 첨가물이 사용된다. 이 중에는 성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허가된 성분이 다른 나라에서는 금지되는 성분인 것도 있고, 아직 검증이 안 된 유해성분조차 있을 수 있다. 기분전환을 위해 버릇처럼 씹는 껌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정제당 70%에 첨가물 30%로 만들어진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식품첨가물은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호르몬 수용체를 교란시키며 유전자, 세포를 공격해 문제가 된다. 요즘에는 화학첨가물보다는 점차 천연첨가물을 쓴다. 하지만 천연첨가물 역시 화학첨가물과 비교했을 때 안전할 뿐 해롭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애초에 아이들이 과자나 라면, 사탕, 청량음료 같은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에 입맛을 들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일단 맛을 들이면 자꾸 찾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능하면 아예 안 먹이거나 줄이고 싶다 해도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식습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올바른 입맛을 들이는 게 가장 좋다고 조언한다. 성미경 교수에 따르면 이유기를 지나서 어른과 같은 식사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너무 자극적인(짠맛, 단맛, 기름기) 식품 섭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보통 3세 이전에 미각이 형성되는 시기로, 이 기간에 분유보다는 모유, 시판 이유식보다는 만들어 먹이면서 이런 식품을 차단해주면 좋다. 평생건강의 바탕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의 식생활에 보다 엄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7년째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손영기 한의사는 “배가 자주 아프고 밥 잘 안 먹는 아이들은 과자나 인스턴트 식품만 멀리 해도 쉽게 좋아진다. 아토피 피부염이나 알레르기성 비염 같은 질환도 몇 개월 동안 이런 식품을 차단하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육류나 유가공품도 가능하면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이런 식품을 먹일 때는 다음의 원칙만이라도 꼭 지킨다.
스낵보다는 크래커류를 먹이는 게 낫다. 크래커류는 지방을 함유하고 있지 않고 설탕, 나트륨 함량도 낮다. 튀기는 대신 굽기 때문이다. 크래커 사이에 치즈나 토마토, 새우 등을 넣어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주는 것도 좋다. 물론 과자를 적게만 먹인다면 건강에 큰 이상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섭취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한 한 청량음료를 피하고 과일주스로 바꾸다가 나중에는 직접 만드는 주스로 바꾼다. 바나나, 딸기 등의 색이나 향이 들어간 가공우유도 되도록 삼간다. 흰 우유가 첨가물이 적고 영양도 낫다. 비만, 과체중인 어린이라면 저지방우유, 저지방 요구르트 등으로 대체한다.
햄버거나 피자 등의 패스트푸드도 가급적 줄이고 모든 반찬을 고루 먹되 야채, 과일을 특히 충분히 먹인다.
송은숙 건강 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성미경 교수, 손영기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