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우리 새끼>는 신개념 육아프로그램쯤으로 이해하면 쉽다. 그동안 갓 태어난 신생아나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자녀를 키우는 스타 부모의 모습을 비추는 육아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었다면 이제는 ‘다 큰’ 아들의 일상과 그 모습을 관찰하는 ‘나이 든’ 엄마가 만드는 상황이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재미를 넘어 공감을 주기에 가능한 인기다.
지난 8월 26일 방송을 시작한 <미운 우리 새끼>는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시청률 10%대에 안착했다. 금요일 밤 11시20분에 시작하는 방송 시간을 고려하면 시청률 10% 돌파는 상당히 고무적인 기록이다. 특히 같은 시간 방송하는 MBC <나 혼자 산다>와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줄곧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치는 사실을 고려하면 질주에 가까운 상승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가수 김건모(48)와 개그맨 박수홍(46), 그룹 HOT출신의 토니안(38) 그리고 방송인 허지웅(37) 등의 싱글 라이프를 관찰하는 내용이다. 한편으로 이들 스타의 엄마는 스튜디오에 모여 아들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면서 각종 품평을 꺼낸다. 남의 아들의 행동에는 “저러니까 장가를 못 간다”는 투의 핀잔을 거침없이 하면서도 자신의 아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편드는 엄마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과 공감을 만들어낸다.
# ‘싱글족’ 늘어나는 세태…세대 공감 일으켜
<미운 우리 새끼>는 유명 스타의 일상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출연한다고 해도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대표되는 육아 예능프로그램처럼 ‘고소득 부모의 럭셔리 육아’를 비추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2년 뒤면 50살이 되는 톱가수 김건모는 큰 집에 살지만 아내는커녕 여자친구도 없이 쓸쓸하게 사는 모습을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전부 혼자 사는 남자들뿐. 집 냉장고를 열면 수십 병의 소주가 꽉 차 있다. 무대가 아닌 관찰 카메라 앞에서 김건모의 모습은 영락없이 ‘철이 없는 아들’ 그 자체다. 슈퍼맨 티셔츠가 좋다면서 한 번에 30벌을 주문하는 모습, 외로움을 달래려 휴대전화에 저장된 음성 인식 서비스를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의 엉뚱한 일상을 드러낸다.
김건모뿐만이 아니다. 30대 후반인 토니안은 한때 연예계를 점령한 아이돌 스타이자, 연예 제작자라는 사실이 무색한 모습으로 <미운 우리 새끼>에 등장한다. 모든 식사를 방 안 컴퓨터 앞에서 해결하고, 또래보다 일찍 찾아온 노안 탓에 안경을 찾는 상황이 펼쳐진다. 한창 전성기 시절에 라이벌로 경쟁하던 또 다른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 김재덕과 한 집에 사는 것도 모자라, 그의 매니저를 자처해 운전기사 노릇을 하는 모습 역시 시청자가 보기에는 반전에 가깝다.
만약 <미운 우리 새끼>의 내용이 여기서만 그쳤다면 지금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제작진은 스튜디오에 스타들의 엄마를 초대한다. 아들의 일상을 촬영한 관찰 카메라를 보여준 뒤 각자의 반응을 담고, 이에 더해 진행자인 신동엽과 서장훈은 ‘지질한’ 아들들의 모습에 거침없는 지적을 가한다. 이런 말과 반응에 스타의 엄마들은 발끈하고 때론 동의하기도 한다. 엄마들의 ‘내 아들 걱정’, ‘남의 아들 걱정’은 쉼 없이 이어진다. 내 아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앞장서서 아들 편을 든다.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모자 관계가 더욱 공감을 일으킨다.
40대 중반인 박수홍은 지금도 클럽을 자주 찾는 ‘클럽 마니아’. 결혼할 생각 없이 클럽을 찾는 박수홍의 모습에 김건모의 엄마가 걱정을 한 가득 꺼내자, 박수홍의 엄마가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것보다 낫다”며 아들 편을 든다. <미운 우리 새끼>가 인기를 얻는 이유다.
# 2040년 서울 사는 젊은이는? 평균 50대
<미운 우리 새끼>는 우리 사회의 주요한 단면을 비추는 역할도 한다. 단순히 웃고 즐기게 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데서 이 프로그램은 의미를 더한다.
결혼을 거부하는 싱글 남녀의 증가, 독립을 외치면서도 건강한 독립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30~40대의 모습이 그대로 프로그램에 담기고 있다. 중년에 이른 아들을 보며 지금도 마음 놓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까지 놓치지 않는다.
서울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자료집 <서울의 미래, 서울의 선택>에 따르면 2040년 서울에 거주하는 젊은이의 평균 연령대는 ‘50대’로 예상된다. ‘100세 시대’로 상징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젊은이’가 곧 ‘50대’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 크다. 이에 바탕을 둔다면 <미운 우리 새끼>는 앞으로 다가올 상황을 한 발 먼저 비추는 사회적인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편으로 <미운 우리 새끼>는 나이 드는 자녀와 쇠약해져가는 부모가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가벼운 웃음거리를 곁들여 보기 쉽게 그리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아들들과 그 엄마가 만드는 상황은 뭉클하다.
박수홍은 과거 결혼을 약속한 상대가 있었지만 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헤어진 이후 더는 마음을 터놓을 만한 연인을 만들지 못하는 사실을 이 방송을 통해 처음 공개했다. 또한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못하는 ‘결벽증상’을 가진 사실을 드러내면서까지 굳이 방송 출연을 결심한 허지웅의 경우 “이른 나이에 혼자 된 엄마가 더 넓은 세상에서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제작 관계자는 “관찰 카메라 형식에서 끝나지 않고 엄마들의 반응과 걱정, 여러 평가, 삶의 경험까지 다양하게 담아내는 시도가 시청자의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