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온 지난달에는 대한노인복지협회에 독감백신 4000여개 1억 6000여만원 상당을 기증했다. 2004년부터 12년째 매년 박 원장이 노인들에게 전달한 독감백신은 10억원이 넘는다.
단순히 후원만 하는 게 아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함께 동거동락하며 선두에서 돕는 그녀는 ‘시인시대’라는 계간지를 펴내는가 하면 강단에서 100세 시대를 맞아 노화방지에 대한 강의도 한다.
박 원장이 ‘대구의 슈바이처’로 불리게 된 사연을 <일요신문>이 물어봤다.
대구 수성구의 박언휘 원장이 운영하는 종합내과. 진료 대기실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연일 붐볐다. 대기 중인 분들이 많았지만 박 원장은 한명 한명 가볍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먹어야 될 것과 먹지 말아야 될 것, 약을 먹을 때 주의 사항과 환자에 맞는 운동법을 일일이 추천한다. 박 원장의 환자들은 대부분 10여년이 넘은 이른바 ‘단골’들이다. 환자들은 박 원장에 대해 ‘몸과 마음도 함께 치료하는 마더테레사 같은 의사’라고 말한다.
10여평 남짓한 진료실에서 만난 박 원장은 뚜렷한 이목구비에 열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여기저기 널린 박스들과 책, 편지들로 가득 찬 풍경은 여느 진료실과는 달랐다.
“환자분들이 고맙다고 참기름, 깨소금 등 선물과 편지를 주곤 하는데 그걸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놔둔게 이렇게 쌓였어요.”
멋쩍어하며 웃는 그녀의 모습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는 소탈한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울릉도에서 태어난 박 원장은 어릴 때부터 몸이 매우 허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섬에는 병원이 없었다. 수시간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폭풍이 지나간 여름. 초등학교 방학을 마치고 개학날 친구들이 한두명씩 보이지 않는다. 폭풍으로 배가 뜨지 못하자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아이들이 죽어간 것이다. 축구를 하다 다쳐 골수염으로, 감기가 커져 폐렴으로 죽는 것을 일찍이 본 소녀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또다른 시련도 있었다. 경북대 의과대학을 다닐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안에는 압류의 빨간 딱지가 붙고 학비는 물론 당장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눈 내리는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가족과 친구들 한명 없이 그녀는 홀로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
“그때 누군가가 저에게 빵이라도 줬다면...” 인터뷰 도중 박 원장은 눈물을 참느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련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봐요. 울릉도의 열악한 환경은 저를 의사로 만들었고, 배고팠던 대학교 시절은 어렵고 가난한 분들을 도와주게 됐죠. 저의 개인적인 아픔들은 소외된 이웃을 이해하는 원동력이 됐어요. 고생(苦生)의 고가 높을 고(高)라는 말도 있잖아요.”
박 원장이 운영하는 종합내과는 국내 개인 내과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외국에서 오는 환자들도 제법 된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병원과 달리 보조의사 없이 간호사만 4~5명이다.
진료시간도 밀려드는 환자가 많아 월·수·금요일은 오후 9시까지 진료한다. 그나마 한달에 한번 쉬는 첫번째 일요일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무료치료에 나선다.
벌써 12년째 이러한 생활을 반복해온 박 원장은 새벽에는 시·수필 등을 쓴다고 한다. 5년 전 한여름, 갑작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해 드린게 없어 아픈 가슴을 시로 달래다 보니 어느덧 문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단다.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늘 신에게 간구하며 하루를 열고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짧게 기도하곤 합니다. 그러면 안보이던 부분도 더 잘 보게 되고 순간마다 성심성의껏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아직도 박 원장은 많은 면에서 부족하다고 한다. “아는만큼 보이거든요.” 올 연말에는 노화방지에 관련된 책을 낸다고 한다. “이제는 100세 시대잖아요. 아프기 전에 몸과 마음간의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박 원장은 “신이 주신 의술을 베풀 수 있어 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사회에 필요한 의료인으로, 또한 어려운 분들을 위해 쉼 없이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대구 = 남경원 기자 skaruds@ilyo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