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티가 시행 중인 해운대관광리조트 예상도.
해운대해수욕장과 맞닿은 부지에 들어서는 엘시티는 건설 이전부터 전국 최대 규모로 화제를 모았다. 연면적 66만 1134㎡(약 20만 평)는 단일 주거 복합 건물로는 가장 넓다. 랜드마크 타워는 101층, 411.6m 높이로 제2롯데월드(123층, 555m)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아파트 분양은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다. 320㎡(97평형) 펜트하우스 분양가가 역대 최고액인 69억 원을 기록해서다. 이를 3.3㎡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7200만 원으로 이 역시 국내에서 가장 비싸다.
1조 5000억 원가량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엘시티 사업을 놓고 부산 지역에선 흉흉한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해운대 인근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애초에 불가능할 것으로 점쳐졌던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자 여러 얘기가 돌았다. 엘시티는 특혜란 특혜는 모조리 받았다”면서 “중국 자본 투입, 조직폭력배 개입, 정치권 특혜설 등이 나왔다”고 귀띔했다. 이영복 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산 출신 유력 정치인들 리스트가 돌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엘시티 관련 첩보를 수집해오던 부산지검은 7월 21일 엘시티 시행사, 분양대행업체, 용역 및 설계업체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팀은 한 달 뒤인 8월 21일 엘시티 시행사에 1조 78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해 준 대주단 간사 부산은행을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11월 3일엔 부산시청과 부산도시공사, 해운대구청, 해운대구의회 등 엘시티 인허가 관련 공공기관 4곳을 동시에 압수 수색을 했다.
검찰은 엘시티 인허가 전반에 대한 의혹은 물론 이 씨가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를 벌였다는 것까지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씨는 검찰 수사 착수 직후 잠적,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대포차량과 대포폰을 사용하면서 도피 중이라고 한다. 이 씨가 서울 강남과 경기도 일대에서 목격됐다는 제보도 있지만 아직 잡히지 않았다. 이를 두고서도 사정당국 주변에선 현 정권 실세 몇몇이 이 씨를 비호하며 수사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씨는 지난 199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대-만덕지구 택지개발 전환사업의 장본인이다. 당시 동방주택건설 사장이었던 이 씨는 1993~96년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임야 42만여㎡를 헐값에 매입했다. 그린벨트에 묶여있던 이곳은 이 씨가 땅을 사자마자 주거용지로 변경됐고, 땅값은 폭등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커지면서 수사가 시작되자 이 씨는 2년간 도피하다 자수했고, 재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 당시 이 씨는 자신을 도와준 유력 인사들을 끝까지 말하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이 씨는 엘시티 사업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마당발 인맥을 적극 활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그는 부산 지역은 물론 현 정권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고 한다. 여기서 최순실 씨 이름이 등장한다. 이 씨의 한 측근 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2년 전에 (이 씨가) 현 정권 최고 실세와 줄을 댔다고 자랑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최순실 씨였다. 최 씨가 무슨 실세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지금 보니 엄청난 인물이었다. 서울로 올라가 최 씨를 만나고 왔다고 한 것을 여러 번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이 씨가 일방적으로 정권 실세였던 최 씨를 팔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최 씨 지인들을 접촉해본 결과, 실제 둘이 알고 지냈다는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최 씨 및 전 남편 정윤회 씨와 가깝게 지낸 한 재계 인사는 “최 씨가 부산의 이 회장(이영복)을 몇 번 언급했다. 부산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최고급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 혹시 분양받을 생각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실제로 최 씨를 통해 이 회장의 아파트(엘시티)를 분양받은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씨와 최 씨는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내는 계모임 회원인 것으로도 전해졌다. 여기엔 둘뿐 아니라 최 씨 친언니인 최순득 씨, 그리고 내로라하는 재벌가 며느리들과 3세 인사들, 강남 지역 부동산 업자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또 새누리당의 한 현역 의원도 회원은 아니었지만 모임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최 씨 지인은 기자에게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사우나와 마사지를 즐겨 다녔고, 고급 음식점에서 모였다. 최 씨가 대통령과 가깝다보니 모임을 주도했다. 강남 지역에선 제법 알려진 모임”이라고 전했다.
이 씨는 올 초부터 검찰이 내사에 나서는 등 수사선상에 오르자 최 씨에게 구명을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최 씨가 엘시티와 관련해 언급했다는 것을 들었다는 앞서의 지인은 “최 씨가 현 정권 사정기관 최고위 관계자에게 ‘엘시티를 좀 알아봐 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고 했다. 그때는 이 씨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우리 사이에 퍼져 있었다. 아마 이 씨가 부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 측근 역시 “(이 씨가) 최 씨가 힘을 써 주고 있으니 잘 풀릴 것 같다는 취지로 여러 번 말했다. 최 씨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검찰 출신 인사에게 말을 해뒀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는 최 씨가 이 씨를 겨냥한 엘시티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최 씨는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에서 촉발된 게이트로 구속됐고, 이 씨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도피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정당국과 정치권에선 엘시티 문제를 집중 파헤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 씨가 도마에 오르지 않았다면 엘시티 비리 역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란 가정도 뒤따른다. 특히 최 씨의 수사 외압 논란은 물론, 엘시티가 현 정부 들어 금융권에서 1조 7000억원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받았고 포스코가 시공사로 참여한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