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전 지사 | ||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한나라당 짝퉁후보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한나라당을 지켜온 기둥이자 한나라당 자체라고 했는데 왜 이 자리에 앉아 계신지 의아해하는 분이 많다.” “위장 전입으로 정권 빼앗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민주세력이 대체 얼마나 많이 잘못해서 한나라당 3등 후보를 꿔다가 대선을 하고 있느냐.”
지지도 1위 후보가 가진 딜레마일까. 범여권 경선 과정이 본격화되면서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한 다른 주자들의 맹공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민주신당 예비주자 토론회에서는 손학규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전력이 집중적인 포화를 받았다. ‘짝퉁후보’ ‘한나라당 후보’ ‘필패후보’, 심지어는 ‘트로이 목마’ 등이 근래 손 전 지사를 따라붙고 있는 닉네임이다.
탈당 전력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선 손 전 지사 자신도 예상했던 바였다. 한나라당을 떠난 그 순간부터 손 전 지사도 ‘탈당 전력’이 두고두고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손 전 지사가 가진 딜레마는 이에 대한 마땅한 ‘정답’이 없다는 데에 있다.
손 전 지사는 “정체성 공격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1등 때리기”라고 일축하며 “정체성은 시대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여기에 새롭게 내놓은 반박 논리는 ‘처칠론’이다. 손 전 지사는 한 기자간담회에서 “처칠이 당적을 두 번 옮겼지만 누가 문제를 삼느냐. 정치적인 소신이다”며 “내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면 정체성 시비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만 새 길을 열기 위해 만든 신당의 정체성은 오직 선진국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손 전 지사 측으로서는 지지율이 미미한 범여권 주자들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맞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이에 맞설 정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손 전 지사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불만이다.
하지만 손 전 지사의 반박에도 여전히 그의 탈당 전력은 ‘사실’이라는 점에 고민이 있다. 아무리 반박하고 설명해도 경쟁자가 물고 늘어질 수 있는 빌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정치컨설턴트는 “탈당 전력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손 전 지사 본인이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고 설득하려고 해도 경선 과정 내내 꼬투리를 잡힐 것이 분명하다. 지금 손 전 지사가 고민해야 할 점은 ‘탈당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새로운 정책과 콘텐츠로 새로운 논란거리를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레 탈당전력에 대한 관심이 멀어질 것 아니겠는가”라고 진단했다.
경쟁 후보들은 손 전 지사의 경제관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는 ‘이명박 대항마’로서의 강점을 부각시키며 경제정책을 피력하고 있는 손 전 지사를 더 난감하게 하는 요인이다.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후보 시절부터 “경기지사 시절 첨단 일자리 74만 개를 만들 때 이 후보는 서울시장 때 12만 개를 만들었다”며 “토목공사, 부동산투기로 돌아가는 이 후보가 진정한 경제대통령인가, 좋은 일자리 천국을 만들겠다는 손학규가 진짜 경제대통령인가”라는 논리를 펴왔다.
이러한 시점에서 사실상 대선출마를 선언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의 주가가 오르고 있는 것도 손 전 지사에게 새로운 위기감을 주고 있다(박스기사 참고). 문 전 사장의 등장은 애초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손학규 대세론’이 주춤해질 무렵 그가 대권후보로 나서 범여권 대선 지형에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손 전 지사 견제를 염두에 둔 타 대선후보들은 문 전 사장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면서 ‘손학규 누르기’에 동참하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문 전 사장과 정책 연대를 맺고 있고 신기남 의원과 김두관 전 장관 역시 문 전 사장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보내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아예 예비 경선 참여 없이 본경선에의 영입마저 주장하고 있다.
문 전 사장은 아직까지는 민주신당 경선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손 전 지사 입장에서는 타 주자들의 ‘문국현 띄우기’가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손 전 지사는 범여권 주자로서 경제정책의 독보적인 적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처럼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다면 향후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문 전 사장보다 우위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알 수 없는 속내도 손 전 지사를 애타게 하는 점이다. 최근 DJ는 민주당 및 조순형 민주당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며 범여권 통합구도에 큰 입김을 발휘하고 있다. 민주당의 비판과 비판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훈수정치’에 나서고 있는 DJ 흉중에 있는 범여권 ‘단일 후보’는 누구일까. 한때 정치권에서는 ‘손학규-DJ 연대론’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즈음부터 나돌기 시작한 소문이었다. 또 동교동계인 설훈 전 의원의 손 전 지사 캠프 합류로 DJ의 복심이 손 전 지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영남이 기반인 한나라당에서 정치인생을 살아왔고 경기도 출신인 손 전 지사로서도 호남민심을 얻기 위해선 DJ의 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보다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왔다.
▲ 민주신당의 아름다운 경선 서약식 및 국민참여운동본부 발대식에 참석한 후보들. 왼쪽부터 신기남 한명숙 이해찬 천정배 정동영 추미애 유시민 김두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여기에 ‘침묵’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속셈이 무엇인지도 주목되는 사안이다. <2007년 대선 승자는 누구인가>라는 책에서도 분석하듯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드라마 승리의 공식은 ‘영남 출신 후보+영남 민심의 (한나라당으로부터) 분리+호남 민심과의 연대+충청 민심의 (범여권) 회귀+수도권을 위한 극적인 이벤트’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는 듯하다. 노 대통령이 손 전 지사를 공격하는 이유도 이러한 공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영남 출신 후보인 김혁규 전 의원이 민주신당 참여를 포기함에 따라 또 다른 영남 출신인 유시민 의원과 충청 출신의 이해찬 전 총리의 행보가 좀 더 주목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손 전 지사 측 역시 이와 같은 난관을 감지하고 있다. ‘지지율 10% 통과’에 큰 의미를 두고 보도자료를 내놓은 속내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손학규 캠프는 지난 30일 중앙일보와 미디어다음이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나온 여론조사에서 10.8%를 기록했고, CBS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도 한 주 전에 비해 2.6% 상승한 11.6%를 얻어 10%대를 처음 돌파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두 번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10%를 넘어선 지지율이 계속 상승국면으로 이어질지에 관심을 두는 분석이 우세하다.
사실 손 전 지사에게 예비 경선 1위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더 큰 장애물은 예비 경선 이후에 벌어질 본 경선과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다. 사실상 범여권 내에 지분을 갖지 못한 손 전 지사가 정체성에서나, 조직에서나, 지역에서나 강점을 갖고 있는 다른 주자들과 어떻게 싸워 나갈지는 한나라당의 ‘민심과 당심 대결’보다 치열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을 떠나 우리나라 정치의 새로운 길을 찾겠다. 깜깜한 칠흑 같은 밤에 낭떠러지에 한발을 그냥 내던지는 그 자세로 저를 던졌다”는 손학규 전 지사가 그때에 가서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점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