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콘텐츠를 향유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109그루빠는 2013년 11월 1118소조로 격상 개편됐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일요신문] 글로벌한 현상으로 나타난 한류 열풍은 북녘에도 영향을 미친 지 오래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 K-POP의 인기는 대단하다. 북한 주민들 대다수가 검열의 눈을 피해 한류를 비롯한 외부 콘텐츠를 향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대로 북한 정권 입장에서는 비사회주의 시류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러한 외부 콘텐츠에 대해 적극 단속에 임하고 있다. ‘109그루빠’는 북한 주민들의 콘텐츠 향유를 단속하는 조직이다. 109그루빠의 악명은 그 등장과 함께 국내외 매체에 의해 이미 수차례 보도됐다. 필자는 이 109그루빠가 2013년 11월 당시 특정 사건들의 영향으로 격상 개편됐다는 정보를 최근 입수했다. 아직 국내외는 물론 북한 주민들도 기존의 109그루빠라 칭하고 있지만 2013년 당시 이 조직은 1118소조란 이름으로 개편됐다. 그리고 이 조직은 현재 109그루빠 시절 얻은 악명을 넘어 간부들까지 공포에 떨 정도로 막강한 힘을 쥐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 내막은 이러하다.
북한 형법 제 185조는 ‘적들의 방송을 들었거나 적지물을 수집, 보관하거나 유포한 사람은 최대 1년까지 노동 단련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북한 주민들이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국가의 영상물과 음악들을 향유할 경우 엄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미 북한은 ‘황금만능 문화’와 함께 생존과 거래를 위한 시장이 자리했다. 북한 내 외부 콘텐츠의 유입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중국을 통해 유입된 한국의 유명 드라마와 영화 DVD는 물론 MP파일로 전해지는 K-POP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다. 북한 주민들 중에는 이러한 콘텐츠 향유, 문화적 욕구를 위해 값나가는 플레이어를 집안에 들여놓는 한편 암막 커튼을 구비해 단속을 대비하기도 한다.
북한 당국이 이를 단속하기 위해 특별 조직한 단속그룹이 바로 ‘109그루빠’다. 김정은 등장을 전후해 조직된 109그루빠는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들여온 영상물과 음악파일, 음란동영상 등 단속을 주 임무로 한다.
김정은은 이 109그루빠 조직을 통해 외부 콘텐츠 향유에 대한 단속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109그루빠는 북한 내 핵심공안 조직이자 권력조직인 당 조직지도부,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정원), 인민보안부(한국의 경찰) 인사들을 차출해 조직을 구성했다. 일종의 T/F팀이라 할 수 있다. 109그루빠는 중앙당은 물론 각급 시·도 당 단위에까지 팀을 구성해 활동했으며 주로 각 당 조직지도부의 사무실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109그루빠는 그 등장과 함께 전 사회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109그루빠의 단속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영상물 향유가 의심가는 가정집이 발견된다면 밤이고 낮이고 즉각 현장에 들어가 단속을 꾀하고 혐의자들은 즉각 넘겼다.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109그루빠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109그루빠의 한계는 분명했다. 각급 조직에서 차출된 인사들로 구성된 일종의 별동대 조직 성격상 상급 기관의 간부들에 대한 단속은 사실상 쉽지 않았다. 109그루빠 단속원들 대다수가 소위 말하는 ‘범털’들에 대해선 증거가 포착되어도 무작정 집안을 쳐들어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 때문에 일선 주민들은 물론 상급 간부들은 더욱 자유롭게 외부 콘텐츠, 특히 한국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었다.
김정은은 109그루빠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지시했다. 다른 원인도 많겠지만 내부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은하수관현악단과 왕재산예술단 사건(제1281호 기사 참조)이 가장 영향이 컸다는 것을 확인했다. 앞서의 사건은 음란영상물 유통이 주된 죄목이었다. 예술단을 관리하는 당 조직 일부는 범죄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도 눈감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러한 단속 책임이 있는 109그루빠의 역할도 한계가 드러난 셈이었다.
각 조직의 차출 인사들로 꾸려진 T/F팀에서 벗어나 모든 조직에 칼을 댈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권한이 필요했다. 물론 그 조직 개편은 정규적인 편제가 핵심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118소조다. 109그루빠는 2013년 11월 18일, 1118소조로 격상 개편됐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당시 새롭게 개편된 1118소조는 국가안전보위부 제3국(반탐정국)의 직속 조직으로 정식 편제됐다.
1118소조 개편 당시 소조 신분증만 있으면 낮이건 밤이건 현장을 급습해도 좋도록 권한을 최대한 격상시켰다. 단순한 혐의가 아니라 의심 수준이어도 마찬가지이며 그 대상은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심지어 김정은은 이 지시를 내릴 때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조사대상에 김정은 자신까지 거론하며 1118소조의 수사 권한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높인 것이었다.
이 같은 1118소조의 격상된 권한은 이듬해 봄 하나의 큰 사건으로 증명됐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사건은 평양시 서성구역에서 발생했다. 당시 국가안전보위부 직속 1118소조 소속의 한 단속원은 황금벌역 앞 한 사거리를 지나기 위해 사거리 도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단속원의 눈과 귀에 수상한 중년 여성 한 명이 포착됐다. 아주 멋들어지게 잘 차려 입은 40대 후반의 여성이 귀에 리시버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문제는 이 여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은 1118소조 격상 개편 당시 “나 역시 단속대상”이라며 권한에 힘을 실어줬다. 사진=연합뉴스
이 단속원은 곧바로 문제의 여성을 제지했고, 듣고 있던 핸드폰의 MP3 파일을 즉각 넘기라고 요구했다. 이 여성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내며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현장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끝까지 반발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단속원은 보위부 직속 중앙급 1118소조 소속임을 밝히고 신분증을 내밀었지만 이 여성은 오히려 더 막무가내였다. 이때 이러한 상황을 옆에서 지켜 본 보통강구역 당위원회 조직부 부장이 나타나 단속원을 두둔했다. 이에 단속원은 힘을 받아 이 여성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심문 과정에서도 이 여성의 비협조적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였다.
이 여성은 조사과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 평양시 서성구역을 담당하는 지역 반탐(방첩) 부부장의 부인임이 밝혀졌다. 지역 반탐 부부장은 그 지역의 1118소조 활동을 담당하는 책임자이기도 했다. 같은 처지의 인사기에 순순히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 여성을 체포한 중앙급 단속원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또한 앞선 체포과정에서 보통강구역 조직부장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스쳐지나갈 수도 없는 사안이었다. 이 단속원은 곧바로 해당 압수물(당시 여성의 핸드폰에는 150여 개의 불법 노래가 들어 있었다)을 본부에 보고했다. 이는 그날 김정은에게 직보됐다.
화가 난 김정은은 당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에 합동검열을 지시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다음날 단속에 걸린 여성의 남편, 즉 서성구역 반탐 부부장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그 집에는 지역 내 단속 과정에서 압수된 다양한 영상물들이 가득했다. 개중에는 음란 동영상까지 포함됐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단속에 나서야 할 지역 보위부 소속 책임간부가 오히려 압수물을 향유하고 유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더욱 격분했다. 김정은은 노발대발하며 서성구역 보위부는 물론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 평양시 서성구역 당위원회까지 압수수색을 지시했다. 이리하여 서성구역 내 대대적인 합동검열은 20일 정도 진행됐다.
특히 검열 이틀 만에 조직 내부에선 어마어마한 범죄사실이 추가로 적발됐고, 앞서의 서성구역 보위부 반탐 부부장은 물론 서성구역 보위부장과 정치부장, 수사담당 부부장 등 대부분의 간부들이 한 번에 숙청됐다. 심지어 이에 대한 연대적 책임을 물어 서성구역 당 책임비서까지 숙청됐다.
이들 중 보위부 반탐 부부장을 비롯한 서성구역 1118소조원 6명은 보위부 산하 교육기관 교정에서 처형됐으며 나머지 관련자들은 혁명화 교육에 보내졌다는 후문이다.
서성구역으로 시작된 검열은 곧바로 비사회주의 현상에 대한 중앙당 집중 검열로 이어졌다. 이후 2014년 6월 1118소조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관련 회의에서 제4군단 소속 사단장, 군단 내 보위부장, 연대장급 인사가 한국 드라마가 담긴 CD를 보관하고 일부는 시장에 내다판 사실을 적발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 8~9군단과 같은 북·중 국경지역 군부대 소속 후방부분 고위 군관들에게서도 한국영화가 들어있는 메모리카드를 적발해 본보기로 숙청을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1118소조는 고위급 간부들이 무서워할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라고 한다. 심지어 소조를 직속으로 두고 있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도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조직이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아직 외부에는 기존 명칭인 109그루빠 내지는 109상무로 불리고 있지만 이 조직이 1118소조로 개편된 것은 확실하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단속 과정 뒷돈 짭짤…‘1118소조’ 최고 인기 부서 김정은 지시로 격상 개편된 1118소조는 이제 국가안전보위부 내에서도 최고의 인기부서로 꼽히고 있다는 후문이다. 조직의 격상된 힘만큼이나 단속 과정에서 벌어들이는 뇌물 금액도 커졌기 때문이다. 109그루빠 시절부터 1118소조는 직접적인 단속을 주 업무로 해왔기 때문에 이전부터 돈벌이는 쏠쏠했다. 조직 성격 자체가 비리 포착을 주목적으로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단속권을 통한 돈 벌 기회도 보장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1118소조의 뒷돈들은 암암리에 상부까지 상납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보위부 조직원들 상당수가 최근 힘을 받은 1118소조 내로 배치되길 원하고 있다고 한다. 단속효과가 의문이겠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