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여의도 한국방송공사에서 열린 군소정당 합동 토론회에 참석한 전관, 허경영, 정근모, 금민 후보(왼쪽부터). 국회사진기자단 | ||
이번 대선은 당초 12명의 후보가 등록 지금까지의 8명 기록을 갈아 치운데다 워낙 1강 2중에 관심이 집중된 탓에 눈에 띄지 않는 후보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이들 가려진 후보들은 어떻게든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총력을 다 했으며 나름대로의 이색 공약도 줄을 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들 군소 후보의 공약 중에는 비현실적이고 대선을 희화화하는 내용도 없지 않다는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진지하다. 이들 군소 후보들은 오히려 소위 1강 2중 후보의 공약들이 미래를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정권잡기에 급급하다고 비판한다. 한 후보의 측근은 ‘국어와 국사도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이명박) ‘지하철을 타고 청와대로 출근하겠다’(정동영)는 등의 공약이야말로 포퓰리즘에 기댄 황당 공약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대선 후보들의 이색 공약, 황당 공약을 간추려봤다.
여러 후보 중 이색적인 공약을 가장 많이 들고 나온 후보는 3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경제공화당 허경영 후보다. 우선 ‘IQ 430의 천재정치인 허경영’이라고 기재된 그의 선거 공보만 봐도 그가 얼마나 ‘튀는’ 후보인지를 알 수 있다. 일부에서는 허 후보가 IQ 검사 때 나온 수치가 450이었지만 대중들에게 거부감이 들것 같아 스스로 430으로 하향 조정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허 후보는 자신이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양자였고 2006년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추대되기도 했었다는 확인 불가능한 주장도 펼쳤다.
‘8번을 찍으면 팔자가 핍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출마했던 허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과 방송통신대학, 반도체산업을 실현시킨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20세의 나이로 박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에 올랐었다는 허 후보는 독일이 150년 걸려 이룩한 경제 성장을 한국이 10년 만에 이룩한 것이 모두 자신의 공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결혼하라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유언이었기 때문에 당선 후에는 박 전 대표와 결혼을 하겠다는 엉뚱한 발언을 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런 허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내세운 공약은 ‘가정 살리기’다.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월 50만 원의 건국수당을 지급하고,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결혼하는 남녀에게 각각 5000만 원 씩 총 1억 원을 제공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자녀를 출산할 때마다 출산 장려금으로 3000만 원도 지급한다고 약속했다.
실업률 해결을 위해서는 ‘산삼 뉴딜 정책’을 내세웠다. 1000여 개의 산삼단지를 만들어 100만 명의 실업자를 고용하고 그들에게 월 100만 원의 월급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400만 명의 신용불량자는 20년 무이자 융자로 신용불량에서 벗어나도록 만들고 중소기업 취업자에게는 100만 원의 생필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허 후보의 이런 공약에 ‘말도 안 되는 공약’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공감이 가는 면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공약 실천을 위한 예산안에는 신랄한 비판 의식이 숨어 있다. 그는 “작년 우리나라가 고친 보도블록이 1000만여 건”이라며 “이런 선심성 예산을 국가에서 확보하면 연간 160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공약이 실천 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의 ‘UN 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사한다’는 공약은 얼토당토않아 보이지만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내세운 ‘UN 기구들의 아시아 본부를 한국에 유치하겠다’는 공약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허 후보 측은 1997년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토·일요일은 무조건 쉬게 하겠다”며 내걸었던 ‘주 5일제’ 공약이 최근 현실화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새시대참사랑연합의 전관 후보는 ‘대한민국 개혁은 국민의 손으로’라는 단 하나의 공약만을 내걸었다. 그 내용은 우선 국회의원 수를 인구비례 50명, 면적비례 50명의 도합 100명으로 축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어 청와대 인원을 3분의 1로 줄여 국무회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기업의 정치헌금 금지를 법제화 해 기업의 투명경영을 위한 토양을 조성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이외에 독도에 소형 호텔을 지어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공고히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백마사단장, 학생중앙군사학교(ROTC) 학교장 등을 거치며 40여년의 군인생활을 한 전 후보는 청년 실업률을 “10월 3일 개천절 행사 때 일주일 동안 국가 축제를 벌여서 해결하겠다”는 이색적인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몽골을 둘러싸고는 전 후보와 허경영 후보가 치열한 정책 대결을 벌였다. 전 후보는 당선이 되면 몽골과 국가연합을 하겠다는 계획도 내세웠다. 전 후보는 몽골과의 국가연합이 필요한 근거로 ‘우리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며 ‘(국가연합을 통해) 동북 3성 연해주, 북한까지 문화경제공동체를 형성해 문화, 경제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허 후보는 아예 ‘몽골과의 통일’을 공약했다. 허 후보는 미국이 남북전쟁을 벌였을 때도 북군이 이겼고 중국 북쪽의 모택동이 남쪽의 장개석을 이겼으며 월남 역시 북쪽이 이겼기 때문에 풍수지리학적으로 우리가 북한보다 더 북쪽의 나라를 가지고 있어야 북한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는 첫 출마임에도 이번 대선에서 상당히 다양한 공약을 내세운 후보다.
특히 성적 소수자를 위한 공약으로 동성 결혼의 합법화에 대한 구체적 법안 마련을 제시한 것이 가장 이색적이다. 그는 “성 정체성 폭로를 빌미로 한 혐오범죄 등의 사회적 차별이 증가하고 있다”며 “정작 피해자인 성적소수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이 주위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사법절차상의 성적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해 성 정체성에 대한 비밀을 보장하고 성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사건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교육 부문에서는 “국립대를 단일화하고 수학능력시험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사교육 이상과열, 공교육 붕괴, 기초 학문의 몰락 등 심각한 교육문제가 산적해 있다”며 “복잡하게 얽힌 교육문제의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서열화 된 대학구조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금 후보는 서열화 된 대학구조를 깨고 취업 준비 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을 개혁하기 위해서 국공립학교의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 후보는 또 당선되면 국민의 사회권 보장을 위해 헌법 1조를 ‘대한민국은 사회적 공화국이다’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정말 당선을 위해 공약을 갖고 나온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들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군소 후보들은 ‘유력 후보’라고 자처하는 후보들에게 오히려 황당하고 국민들을 우롱하며 장차 국가에 해가 될 공약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문가들도 유력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 포퓰리즘에 의거한 비현실적 공약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공약 중 ‘헌법에 서민 주거권 규정’ ‘전 과목 영어 수업’ ‘신용불량자 대사면’ 등은 포퓰리즘의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서민의 주거권을 제3의 기본권으로서 헌법에 규정하고 정부가 1가구 1주택을 공급할 의무를 지겠다’는 공약은 예산 문제나 주택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전 과목 영어수업’ 공약도 모든 교사가 영어 수업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30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당선되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고 출퇴근하겠다”며 “서울 한남동에 있는 육군, 해군, 공군 참모총장의 관사가 비어 있는데 여기서 생활하겠다. 청와대에는 지하철, 버스, 도보로 출퇴근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공약은 당장 대통령이 지하철로 출퇴근한다면 경호 인원을 지금보다 몇 배로 늘려야 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정 후보 측은 “공약이라기보다는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다분히 선언적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현실성을 도외시했다는 소리를 피하기 어렵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경우도 ‘5년간 25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은 구체성이 떨어져 막연한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교사 10만 명을 추가로 확보해 교사가 ‘공교육 혁명’을 주도하도록 하겠다”고 한 부분이나 ‘노인성 만성질환 환자 약값 국가부담’ 등의 공약도 인기 영합적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모든 정치적 공약은 공약(공약)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공약은 예산 낭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시행착오와 부작용도 가져 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참된 공약을 걸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