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은 지난 1월 19일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하여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텔롯데의 상장 재추진도 분명히 했다. 그러면 지주사 전환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권 안정을 위해 지주회사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요신문DB.
이날 지주사 체제 검토 공시를 한 상장사는 주력 유통 4사인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푸드다. 롯데케미칼, 롯데하이마트, 롯데손해보험, 현대정보기술, 롯데정밀화학 등은 공시를 하지 않았다. 방법은 분할, 합병, 분할합병 등이 제시됐다.
유통 4사의 공통점은 계열사 보유 지분이 많고 신 회장이 개인 1대주주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이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지주사들이 합병한다면 신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진다.
특히 롯데쇼핑은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지분율이 13.46%와 13.45%로 박빙을 보이고 있다. 인적분할로 발행주식의 6.16%인 자사주를 신 회장 쪽으로 끌어들인다면 신 전 부회장과 격차를 벌릴 수 있다. 지주사와 사업사로 분할한 뒤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사에 현물출자하면 이들 4사에 대한 신 회장의 지배력도 배가시킬 수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를 받는 호텔롯데의 유통 4사에 대한 지배력 약화다.
호텔롯데 상장 재추진을 서두르는 이유도 있다. 유통 4사 외에 롯데건설, 롯데알미늄, 롯데케미칼 등 다른 주력 회사들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서는 호텔롯데가 필요하다. 유통 4사의 시가총액은 13조 원에 달한다. 호텔롯데 상장 추진 시 예상 시총은 약 10조 원이었다. 호텔롯데 역시 상장 후 지주사와 사업사로 나뉠 것으로 예상된다. 호텔롯데지주와 덩치가 더 큰 유통 4사 지주사가 합병하면 신 회장은 일본 롯데의 영향력을 크게 줄이면서 그룹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당초 호텔롯데를 상장한 후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비자금 수사와 최순실 사태로 호텔롯데 상장이 지연되자 유통 4사 경영권을 먼저 공고히 한 후 호텔롯데와 합치는 플랜B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지난 19일 롯데그룹이 밝힌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대목은 준법경영위원회다. 그룹 측은 “올해 자산 1조 원 이상 계열사에 필수적으로 설치돼 투명한 의사결정을 감독하는 조직인 투명경영위원회와 함께, 그룹에 준법경영이 뿌리내리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는 앞서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를 축소하고 계열사 책임경영을 확대할 방침을 밝혔다. 자칫 총수의 영향력 축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번 조치는 그에 대한 안전장치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준법경영위원회는 각 계열사에 설치돼 신 회장이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며 “당장 아직도 남아 있는 신 총괄회장의 그림자를 지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한편 롯데의 이 같은 움직임에 시장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유통 4사를 비롯한 롯데그룹주들은 19일 발표 후 뚜렷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볼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도 경영공백 상태가 최소화될 수 있어서다. 주주들에 인색했던 신 총괄회장 시대와 달리 신 회장의 경우 경영권의 정당성을 굳히기 위해 주주친화적 경영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
‘신동빈과 동병상련’ 이재용도 지배구조 개선 검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순실 특검에 맞서 지배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구속은 피했지만 구속영장이 재청구될 수 있고, 기소는 피할 수 없게 돼서다. 설령 실형을 피한다 해도 최근 특검 수사는 삼성의 새 총수에게 치명적인 타격일 수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사정이 비슷하다. 이 때문에 주주 설득을 통해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는 한편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11월 29일 삼성전자는 올 1분기부터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고 5월까지 지주사 전환 검토를 하겠다고 공표했다. 지난 1월 24일 삼성전자가 내놓은 배당과 자사주 소각은 지난해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해외 주주들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데 따른 조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지배구조개편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임준선 기자 유통주식 수가 줄면 주가는 더욱 민감해진다. 지금처럼 반도체 업황이 좋으면 300조 원의 덩치지만 주가가 빠르게 오를 수 있다. 대주주와 외국인 주주들에게 모두 덕이다. 게다가 자사주 매입은 차익 실현에 따른 주가 조정 압력을 해소해준다. 일단 주주들을 돈으로 달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지주사 전환이다. 일단 삼성전자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것만으로도 지배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전환하지 않는 한 삼성생명의 금산분리 의무, 즉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매각 의무도 당장은 없다. 인적분할을 하면 우선 삼성전자 발행주식의 12.8%에 달하는 자사주 의결권이 되살아나 삼성전자 지주사의 삼성전자 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크게 높아진다. 삼성물산과 이건희 회장, 이 부회장 등의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사에 현물출자하면 삼성전자 지주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배력도 강화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이 부회장의 등기임원 선임 임시주총에 맞춰 엘리엇 등 해외 주주들이 삼성에 지주사 전환 등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만큼 올 3월 정기주총도 중요하다”며 “당장 배당과 자사주 소각 외에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변수는 있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것인지와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 일정이다. 재판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의혹이 계속 나온다면 이 부회장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이 부회장이 뇌물공여 및 횡령·배임으로 실형을 받을 경우 삼성생명 대주주로서 자격에 시비가 붙을 수 있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 금융계열사가 금융지주사로 전환한다면 이 부회장은 개인 자격으로 이를 지배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회사 대주주 자격은 무척 까다롭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대기업 보험·카드·증권 계열사의 최대주주가 최근 5년 이내에 조세범 처벌법, 공정거래법 등 ‘금융관련 법령’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을 받으면 시정명령을 받거나 10% 이상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최대 5년간 제한한다. 이 법에서 정한 금융관련법안에는 뇌물죄 등이 포함된 형법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보험업법이 포함된다. 보험업법은 대주주 자격 기준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금융회사 임원 요건을 적용한다. 금융관련법령뿐 아니라 일반 형사재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이들의 자격도 제한하고 있다. 뇌물죄나 배임·횡령죄가 확정되면 금융회사 임원 자격을 상실하고 이에 따라 보험업법이 정한 대주주 자격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결국 대주주 적격심사는 정부 몫인데 올해 치러질 대선과 정치권에서 추진되는 재벌개혁의 강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 부회장으로서는 실형을 피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분석했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