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관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사이에 있는 후생관은 애초 국회 직원들의 복지시설로 만들어졌다. 음식점, 제과점, 화원, 안경점, 여행사 등 다양한 점포가 입점해 있어 ‘미니 백화점’으로 불린다. 약 30여 개의 테이블이 설치돼 있다.
금융권에서 대관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거긴 일종의 ‘아지트’ 같은 곳”이라며 후생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이 관계자뿐 아니라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정보관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대기업과 금융권, 그리고 사정기관의 정보관들은 국회를 수시로 드나들며 정보를 모은다. 이들은 국회의원과 보좌진 등을 통해 자료를 얻는다. 우선적으로 관할 상임위를 집중 공략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정보관들끼리 서로 협력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은밀한 ‘정보 시장’이 국회 내에 형성돼 있는 셈이다.
국회 후생관 자리엔 스마트워크센터 및 프레스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10년 넘게 정보 업무를 한 경찰 관계자는 “정보라는 게 어차피 인맥 싸움이다. 국회엔 각 기관이나 기업에서 엘리트들이 파견되는 곳이다. 국회를 출입하면서 이들과 잘 사귀어 놓으면 그만큼 정보 생산에 있어서 유리하다”고 했다.
이런 그들에게 후생관은 아지트 역할을 해왔다. 후생관 앞에서 담뱃불을 나누면서 사담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앞서의 금융권 대관 관계자는 “대관 담당자들은 머물 곳이 없어 많이 이용한다. 국회 출입할 때마다 들른다. 간단히 요기를 해결하기도 편하고 앉아서 시간 때우기도 좋다. 아마 후생관 이용자 가운데 30%는 대관 담당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정보관은 “‘귀동냥’이 기본이다. 꼭 고급 정보가 아니더라도 하나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출입하는 상임위의 보좌진이 어디로 옮겼는지 어느 학교 출신인지 등 이런 사소한 정보도 우리에겐 중요하다. 이런 국회 동정을 파악하기 가장 쉬운 곳이 바로 후생관이다. 관계의 농도가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본관과 의원회관엔 ‘보는 눈이 많다’는 이유도 한몫 거든다. 과거 몇몇 의원들은 사정기관의 정보관들이 국회에 출입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이들이 국회의원들을 사찰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사정기관 정보관들은 국회 출입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한 대기업 정보 파트 임원은 “주요 정보원을 만날 때 후생관을 이용했다. 국회 안보단 주변의 시선 상관없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후생관 앞 정자는 추억의 장소다. 10년 넘게 그곳에서 정보를 주고받았다. 날이 좋을 땐 낮술도 몰래 하곤 했다. 없어진다니 아쉽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대관 관계자도 “의원회관에도 커피숍이 있지만 보는 눈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밖에서 담배 피면서 편하게 얘기한 뒤 후생관 안에서 차를 마신다. 의원회관 코너마다 휴게실이 있지만 보좌관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니까 아무래도 불편하다. 대관 관계자들끼리 편하게 얘기하기도 꺼려진다”고 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후생관에서 우연히 접한 내용으로 특종을 보도한 일화를 들려줬다. “후생관에서 잠깐 쉬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치인이 곧 장관으로 내정될 거란 얘기였다. 혹시나 하고 추가 취재를 했더니 내정 단계였다. 그래서 기사를 썼고, 그가 장관이 됐다. 알고 보니 당시 후생관에서 대화를 하던 사람 중 한 명이 그 정치인의 최측근이더라.”
또 다른 기자는 “본관이나 의원회관은 출입증을 찍고 소지품을 검사하고 들어가야 한다. 밖에서 전화라도 한 통 하고 들어올라 치면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후생관은 출입증이 필요 없다. 또한 외부 방문객이 많아 상대적으로 말을 덜 조심해야 하는 것도 후생관의 장점”이라고 밝혔다.
후생관엔 정보뿐 아니라 ‘사랑’도 넘쳐흐른다. 주말에 결혼식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후생관 2층에 있는 전용 공간에서 진행된다. 후생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한 출입 기자는 “시설은 비록 낙후돼 있지만 국회에서 결혼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추억의 장소가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