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차기 대권주자들이 4월 총선을 앞두고 향후 정국 주도권과 차기 대권 향배의 바로미터가 되는 수도권 쟁탈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왼쪽부터 정동영 손학규 정몽준 박근혜, 배경은 청와대 전경. | ||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망론’을 꿈꾸고 있는 여야 차기 대권주자 진영에서 나돌고 있는 밀명이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총선 민심의 풍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이자 향후 정국 주도권 향배를 좌우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 정치권이 사활을 걸고 있는 곳이다. 특히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잠룡들 입장에서는 대권 전초기지 확보 플랜과 맞물려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서울시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과반에 가까운 득표율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민심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차기 대권 전초전’ 성격을 띤 4월 총선에서 여야 차기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수도권에 출사표를 던지거나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출마시킨 배경에는 ‘이명박 효과’와 맞물린 수도권 교두보 전략이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차기 대통령은 수도권에서 나올 것”이라는 다소 이른 관측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여야를 망라한 차기주자들이 수도권에 ‘올인’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4월 총선은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과 차기 대권주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임기(2012년 4월)와 이 대통령의 임기(2013년 2월)가 10개월밖에 차이 나지 않고 차기 대선이 2012년 12월에 치러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정국 주도권 및 차기 대선 풍향계는 이번 4월 총선 성적표에 따라 그 밑그림이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내부 공천을 둘러싼 대혈투로 심각한 후유증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도 이번 총선의 중요성과 맞물려 있다.
특히 4월 총선이 차기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결과에 따라 차기주자들의 대권 명암도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직접 출사표를 던진 주자들은 자신의 당락 및 득표율에 따라 부침을 달리할 수밖에 없고 측근 인사들을 얼마나 당선시키느냐가 향후 당권 장악과 대권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과거 대선과 달리 지난해 대선 때 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수도권의 ‘교두보’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영호남과 달리 지역색이 옅은 수도권은 역대 대선에서 특정 지역 후보나 정파에게 표 쏠림을 허락하지 않았다. 97년 대선에선 국민회의 김대중 당선자(42.0%)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38.3%)의 격차가 3.7%P에 불과했고 2002년 대선에선 민주당 노무현 당선자(50.9%)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44.6%)의 득표율 차이가 6.3%P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에서 이 대통령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49~53%의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23~24%의 득표율에 그쳐 두 배 정도의 큰 격차를 보였다.
이러한 표 쏠림 현상 배경에는 ‘노무현 정권 심판론’이라는 수도권 민심이 반영된 것도 있지만 서울시장을 지내면서 청계천 사업 등 대형 사업을 성공시킨 이 대통령의 ‘수도권 후보’ 이미지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선거 전문가는 “수도권 표 쏠림은 지난 대선에 국한된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추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어 차기 대선에서도 특정 후보에 표심이 쏠릴 가능성이 있다”며 “이제는 영호남 후보라는 이미지로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한계에 도달했고 수도권 내지는 전국적 후보라는 이미지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민주당의 양대 간판으로 대권 라이벌 관계인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치밀한 대권 이해득실을 고려한 끝에 서울 출마를 공식화한 것도 이러한 전략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손 대표는 12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1번지’ 서울 종로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정 전 장관 역시 이날 오후 서울 동작을 출마를 공식화했다. 두 사람이 각각 서울의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을 맡아 선거판을 주도해나가는 ‘쌍끌이 전략’에 의기투합한 모양새다.
두 사람이 별다른 연고와 조직이 없는 서울에 출사표를 던진 배경에는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고 선명 야당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공통분모 외에도 차기 대권을 겨냥한 중장기 전략이 내포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50%가 넘는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당은 여전히 10% 초반의 지지율에 머물러 있고 지난 대선 때도 이 대통령과 정 전 장관의 서울지역 득표율 차이는 거의 더블스코어였다. 아무리 차기를 노리는 거물급이라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 왼쪽부터 문국현 심상정 노회찬. | ||
대권 라이벌인 손 대표와 정 전 장관이 서울 지역구 선택을 놓고 물밑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는 사실(박스기사 참조)은 ‘서울행 티켓’이 갖는 상징성과 파급력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손-정 두 사람 외에 민주당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는 김근태(도봉갑) 한명숙(경기 고양일산동) 천정배(경기 안산단원갑) 의원과 추미애(광진을) 전 의원 등도 수도권 공천을 통과하면서 대망론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게 돼 총선 결과에 따라 야권의 대권 판도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정몽준 최고위원, 강재섭 대표, 이재오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차기 대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중 이 의원(은평을)과 김 지사를 제외한 세 사람은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영남권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다. 박 전 대표와 강 대표는 각각 대구 달성과 서구에, 정 최고는 5선을 안겨준 울산 동구에 공천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와 정 최고는 당내 공천 과정에서 한때 서울 등 수도권 출마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남 후보 이미지를 탈색하고 수도권 교두보와 차기주자로서 더욱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당 안팎에서도 이들 두 사람이 나서서 민주당 빅 2의 수도권 쌍끌이 작전에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정 최고의 경우 지난 16일 울산 동구에서 서울 동작을로 ‘유턴’해 정동영 전 장관과 맞대결을 펼치기로 마음을 굳혔다. 차기 주자인 정 전 장관과 정 최고의 맞대결이 성사됨에 따라 서울 동작을은 이번 총선 최고의 빅매치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 최고와는 달리 박 전 대표는 수도권 출마 플랜은 접었지만 자신의 지역구보다 수도권에 공천을 받은 측근 인사들의 지원에 적극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측근들을 수도권에서 당선시키느냐에 따라 향후 당내 권력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도 수도권 교두보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측근인 나경원 대변인이 우여곡절 끝에 서울의 중심인 중구에 공천을 받은 것을 비롯해 권기균(동작갑) 박보환(경기 화성) 김태원(경기 고양 덕양을) 후보가 험난한 수도권 공천을 통과한 배경에는 강 대표의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했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새 정부 2인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재오 의원은 내친김에 차기 대권경쟁에 뛰어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 의원은 당내 차기주자 중 유일하게 서울이 연고지라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수도권 후보 이미지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이 의원은 이번 공천 과정에서 친 이명박계의 수도권 공천 작업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국회 입성에 성공할 경우 막강한 지원군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대통령에 이어 광역단체장 출신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는 비록 중앙 정치 무대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지만 수도권에 출마한 측근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핵심 측근인 차명진(부천 소사) 임해규(부천 원미갑) 의원이 재선에 도전하고 있고 김성식(관악갑) 박종운(경기 부천오정) 이화수(경기 안산상록갑) 허숭(경기 안산단원갑) 최순식(경기 오산) 후보 등은 김 지사와 가까운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 진보신당 심상정 노회찬 공동대표 등 지난 대선 때 대선주자로 뛰었던 군소정당 간판스타들도 수도권을 교두보로 대망론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경부운하 저지를 핵심 이슈로 제시한 문 대표는 서울 은평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새 정부 2인자로 통하는 이재오 의원을 직접 상대해 이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분명히 하면서 차기주자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전략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진보신당 창당식을 갖고 본격적인 총선체제로 돌입한 심-노 공동대표는 각각 경기 고양덕양갑과 서울 노원병에 출마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진보세력의 결집을 꾀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대권 전초전 성격을 띤 4월 총선에서 과연 어떤 주자가 웃고 또 어떤 주자가 울게 될지 잠룡들의 ‘1차 대권전쟁’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