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부의장, 이재오 의원 | ||
일단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을 자임하는 이재오 의원은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에서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하지만 수족이 잘려버린 박근혜 전 대표는 당권 경쟁에서도 수세 국면에 빠졌다. 여기에 양 세력 간의 갈등으로 국정이 표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상득 국회부의장 세력은 박근혜 전 대표나 정몽준 최고위원을 앞세워 이재오 의원 세력과 대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당권 구도 흐름은 여당의 2012년 대통령후보 경선 구도를 예견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인식되기에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최근 소장파의 리더 격인 남경필 의원이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면서 한나라당은 제2의 공천 전쟁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천 후유증이 잠잠해질 즈음 왜 남 의원은 ‘뜬금없이’ 이 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다시 주장한 것일까. 그의 발언 이면에는 오는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나라당내에서 치열한 ‘권력 암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정치권에선 “이상득 부의장의 지원을 받은 이방호 사무총장이 남 의원의 측근들을 대거 낙천시켰다”라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터라 공천 갈등이 재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먼저 이번 공천 결과를 통해 한나라당 내의 복잡한 권력 방정식을 살펴보자. 큰 틀에서 보면 한나라당의 당권 경쟁은 ‘주류’ 격인 이재오 그룹 대 이상득 그룹 간의 대결로 압축된다. 이재오 의원 계파의 경우 친이그룹의 분화를 거론할 만큼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는 양상이다. 사실 정치권에선 이재오 의원이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인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당직 개편 때 이재오 의원은 이방호 의원을 사무총장에 ‘앉혀’ 뒤에서 당 전반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도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그룹이 이방호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을 거치면서 “이방호 사무총장이 더 이상 이재오 라인으로 분류되길 거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아니면 “최소한 이방호 총장이 이재오 의원과 이상득 부의장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며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 근거는 두 가지가 있다. 앞서 남경필 의원이 이방호 사무총장의 ‘사천’(私薦)을 겨냥해 공격한 것은 그가 공천 과정에서 이상득 부의장을 등에 업고 특히 영남권에서 ‘여권 핵심부가 통제를 못할 정도로’ 칼날을 휘둘렀다는 내용이다. 당 일각에서는 “이 사무총장이 이재오 의원 측근으로 불리는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재오 라인으로 분류되던 이방호 총장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당내 역학 구도를 새로 정하는 공천임을 감안하면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생각하는 이방호 총장이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과 남경필, 정두언 의원으로 대변되는 소장파는 원래 대척점에 있던 관계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초기 인사문제 등에서 이상득 부의장 측에 완전히 밀리게 되자 양측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이상득 부의장이 용퇴하면, 다른 다선·고령 의원이나 박근혜 계파 의원들을 물갈이할 명분이 생긴다’는 이른바 ‘논개론’을 피웠다. 그리고 이상득 부의장의 공천 확정이 다가오자 이재오 의원 측으로 분류되는 공천심사위원들이 ‘이상득 불가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 ‘쿠데타’(이재오 계파 A 의원의 말)는 이 부의장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그 뒤부터 이 부의장 측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 부의장 측은 이방호 사무총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이재오 의원 측의 공천 영향력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 의원이 최근 자신의 측근 수십여 명도 공천을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나타낸 것도 이런 점에서 이해가 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공천 갈등의 이면 때문에 이방호 총장은 더욱 당 안팎으로부터 ‘사천 공방’에 휩쓸려들게 된다. 왜냐하면 이 총장은 영남권 공천에서 ‘대통령의 오더도 잘릴 정도로’ 그 위세를 떨친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경북 일부 지역에선 이상득 부의장이 직접 ‘낙점’한 후보들이 공천을 받았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선 “이재오 의원이 이 부의장과 이방호 사무총장의 견제를 당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경남지역의 한 의원은 “특별한 세력이 없는 이방호 총장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부의장을 등에 업고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당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방호 총장으로서는 이재오 의원 계파를 챙겨야 하지만 권력 실세인 이상득 부의장의 요구를 완전히 거절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다 자신의 정치적 야심도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그를 잘 아는 당내 한 소장파 의원은 “이 총장은 지난 2006년 최고위원 경선에 나와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정치적 야심이 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공천을 하면서 특정 학교 인맥(부산고-연세대)을 의도적으로 챙기면서 확실히 ‘이방호 라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 아니냐(최구식 의원은 이번 공천이 ‘친이’의 ‘이’는 이재오 의원이 아니라 이방호 의원이라는 주장까지 했다). 현재 친이그룹의 수장이 이재오 의원이지만 향후 그 구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방호 총장이 ‘포스트 이재오’를 노렸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특히 이 의원이 지역구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뒤지고 있기 때문에 친이그룹에서는 더욱 다음 계파 수장에 관심이 많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천에서 이 총장이 이상득 부의장과 전략적 제휴를 한 것은 향후 당권을 염두에 둔 장기적 포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재오 의원 그룹 반대편에 있는 이상득 부의장 그룹의 상황은 어떨까. 이상득 부의장 입장에서는 이재오 의원과는 계속 대립각을 세우며 견제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공천에서 이재오 계보가 수도권에서 선전했다면, 그는 이방호 총장을 앞세워 영남권에서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의 권력 구도는 범 이재오 계보(수도권)와 범 이상득 계보(영남권)의 양대 세력이 쟁투하는 구도를 보인다. 그리고 이상득 부의장의 거취 문제가 양측의 ‘1차 대전’의 향배를 가르는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이 부의장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 부의장이 차기 당 대표로 이재오 의원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동시에 이 의원도 자신이 당권으로 가는 데 최대의 걸림돌이 이 부의장이기 때문에 양측의 갈등은 7월 전당대회, 나아가 2012년 대권 전쟁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상득 부의장으로서는 한나라당이 이재오 의원 그룹에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그대로 용인할 수 없다. 이는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이재오 의원 그룹이 잠재적 도전 세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관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래서 이 부의장은 당 안팎의 끊임없는 용퇴 요구에도 현역에 남아 당 권력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의장의 이런 역할론에 부응하는 세력으로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이 있다.
먼저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공천에서 당내 소수파(245개 지역 가운데 친이 대 친박이 150 대 45의 분포를 보임)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단독으로 당을 장악해 대권을 넘보기는 사실상 힘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현 상태로는 2011년 총선의 공천도 이재오 의원 그룹이 장악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예전의 힘을 되찾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는 이상득 부의장 세력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정몽준 최고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박 전 대표에 비해 더욱 열악한 처지에 있다. 총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꺾는다면 힘을 받을 수 있지만 당내 기반은 전무한 편이다. 그 또한 이상득 부의장의 힘을 빌려야 할 처지다. 이재오 의원 그룹에 대항할 주자인 박 전 대표와 정 최고위원 모두 이상득 부의장의 지원을 기대해야 할 입장인 것이다.
문제는 이 부의장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다. 당장은 이 부의장과 정 최고위원의 연대설이 흘러나온다. 정 최고위원이 지역구를 서울 동작을로 옮긴 과정에서 이상득 부의장이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 부의장이 전당대회에서 손잡을 1순위는 당내 기반이 미약한 정 최고위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이상득 부의장이 정 최고위원을 당권 경쟁에서 올인해 지원해줄 경우 친이그룹의 분화와 함께 정 최고위원에게 힘이 쏠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입장은 더욱 위축된다. 최근 이상득 부의장 용퇴 논란 과정에서 양측이 전략적으로 연대감을 나누었지만 그것이 당권 경쟁으로까지 이어질지 미지수다. 아무래도 이상득 부의장도 범 친이그룹으로서 친박그룹의 수장을 지원할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총선 후 전격 탈당 시나리오다. 여의도의 한 전략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로서는 이번 공천을 통해 당내의 소수계파 수장으로 전락해버렸다. 박 전 대표가 당장은 당을 떠날 명분이 없지만 어차피 친이그룹이 주도하는 당에 머물러봤자 희망이 없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친박그룹이 대거 생환해 돌아온다면 7월 전당대회 전에 대거 탈당, 신당을 창당해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그럴 경우 한나라당이 오히려 제2, 3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박근혜 신당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 차례 탈당을 한 전력이 있는 박 전 대표가 또 다시 탈당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신 어떻게든 여당에서 싸워 당권을 획득하는 정공법이 오히려 박 전 대표의 원칙주의 스타일에 맞다는 평가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