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의회 AI·구제역 중인데…지방의원 잦은 외유 논란
-여수시의원들, 해외 연수비용 편법사용 ‘논란’
-전북도의원, 동료 의원 해외연수 경비 수백만원 대납 물의
-“연수 목적·성과 검증하는 제도 필요…의원들부터 인식을 바꿔야”
전남도의회 전경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일요신문] 정성환 기자 =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다,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사태 등으로 전국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지방의원들이 해외 연수를 떠나고 있어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정책 반영이나 입법 등 본래의 취지와 달리 해외 연수 상당수 일정이 관광과 놀이, 휴식 같은 외유성 일정으로 짜여 여론의 뭇매를 맞기 일쑤다. 심지어 수사 도중 연수를 떠나거나 비용 대납 등의 편법행위도 끊이지 않아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전체 의원이 17명인 전북 정읍시의원들은 유럽 4개국의 도시 경관을 벤치마킹한다는 이유로 2월 23일부터 8박10일간의 일정으로 연수를 시행했다.
그러나 대부분 관광지로 채워졌다. 연수 인원은 시의원 11명과 이들을 수행할 공무원 6명. 비용은 1인당 250만 원씩, 4,000만 원이 넘는다. 정읍은 AI와 구제역이 잇따라 발생해 농민들의 시름이 컸던 지역이다. 방역에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상황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러자 정읍지역 시민단체들이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난 정읍시의회 의원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정읍시지회 등 정읍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달 28일 정읍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해외연수는 구제역과 AI로 비상상태인 정읍의 현실을 외면하고 진행된 것이다”며 “유럽연수에 참여한 시의원들은 시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읍시의회는 해외연수를 취소하면 1인당 150만 원씩 위약금도 물어야 해서 강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읍시의회는 이번 해외연수를 위해 AI가 한창이던 지난달 서둘러 업체를 선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도의회의 잦은 해외연수도 도마위 올랐다. 도의회 기획행정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2월 1일 5박8일 일정으로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성공적인 통합과정 등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정책 벤치마킹’ 명분이다.
의원 10명과 공무원 2명 등 12명에게 들어간 예산은 3800여만원이다.
케이프타운 시청과 만델라재단 방문, 지역상공인 간담회 등 공식 일정이 있긴 하지만, 테이블마운틴 시내와 국립식물원, 케이프반도, 시내 다문화체험, 전통시장 방문 등 상당수 관광성 프로그램이다. 연수 일정 마지막 2일은 짐바브웨와 잠비아로 넘어가 사파리체험과 빅토리아폭포 관광 등을 했다.
경제관광문화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2월 4일부터 9일까지 4박6일 일정으로 인도네시아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인도네시아의 섬관광, 토속민속문화 연계한 관광 등을 파악해 전남도의 관광산업에 접목 가능한 관광 정책개발을 위한다’는 명목이다.
의원 11명, 공무원 4명 등 15명이 사용하는 예산은 2700여만원이다. ‘관광 정책개발’ 명분이라 울루와뚜 절벽사원과 우붓재래시장, 문화체험 등 대부분이 관광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다.
두 상임위 모두 인권정책과 관광산업 등에 대한 정책방향 도출을 위한 해외연수라고 하지만, 사상 초유의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정국에다, 사상 최악의 AI사태가 겹친 상황에서 시기를 놓고 비판의 소리가 작지 않다.
더욱이 해외연수 코스가 상당수 여행지 방문과 견학 일정으로 짜여 있어 사실상 ‘외유성 연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위원회도 그달 25일부터 미국 하와이 연수에 들어갔다.
전북도의회 의원 10명도 지난해 4월에 중국 장쑤성을 다녀왔다. 자매결연 20주년 자축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였지만 실제는 교류업무를 본 시간은 나흘 동안 단 3시간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견학과 시찰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해외연수 비용 조달을 둘러싼 편법도 판치고 있다. 전북도의원이 동료 의원의 해외연수 경비 일부를 대납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상임위원장이 자진사퇴하고 해당 의원들은 도선관위로부터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로 조사받았다.
여수시의회 의원들은 해외연수를 가지 못한 일부 의원들의 연수비용을 편법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여수시의원들 7명은 지난해 8월 30일부터 9월 7일까지 9일간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3개국 연수를 다녀왔다.
이들 의원들은 2명의 동료 의원이 연수에 참가하지 못하자 이들 의원들의 국외연수비용 1인당 250만원, 총 500만원을 자신들의 연수비용에 포함시켰다. 여수시의회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성추행 및 의장단 선거 금품 수수 의혹에 따른 경찰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동남아 해외 연수를 떠나 물의를 빚었다.
외유성 해외 연수가 해마다 되풀이되는 것은 사전 심의 소홀과 사후 관리의 부실, 쌈짓돈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연수에 필요한 다양한 공부보다는 여행사가 여행정보를 알려주는 수준에 그치는 사전교육도 문제다. 해외연수 보고서도 해당 국가의 일반 현황을 소개하거나 관광명소를 설명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지적됐다.
지역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의원들이 해외연수를 목적성 연수가 아닌 1년에 한번 가는 ‘해외여행’쯤으로 인식하는 것이 큰 문제”라며 “의원들의 의식 개선을 위한 제도 보완과 해외연수 뒤 성과를 점검할 수 있는 검증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연수심의위원회를 운영하지만, 계획서를 동의해주는 ‘거수기 수준’이라며 ”심의위원회가 명실상부한 역할을 해야 해외연수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북대 행정학과 신환철 교수는 ”20여 년이 넘도록 외유성 외국 시찰 논란이 이어지는 것은 큰 문제“라며 ”아예 해외연수를 폐지해 예산을 편성하지 않거나, 의원 개인 비용이나 별도 프로젝트 비용을 마련해 꼭 필요한 견학만 가야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해외연수 목적과 연수보고서의 충실한 검증이 이뤄지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남규 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정책위의장도 ”외국 연수는 분명한 목적을 지녀야 하고, 연수 보고서는 향후 의정 및 입법자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무엇보다 의원들의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