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최성 고양시장이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에서 진행한 100분 토론 녹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3월 22일 전국 250개 투표소에서 실시된 민주당 대선 경선 현장 투표에는 5만여 명이 참여했다. 규칙에 따라 개표 후 결과는 밀봉했고, 3월 25일부터 시작되는 지역 순회 경선 때 합산해 발표할 계획이었다.
유출 문건엔 ‘수원갑’ ‘수원을’ ‘시흥시’ 등 52개 지역별로 민주당 경선 후보자들의 득표율이 적시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는 합계 7738표로 득표율 65.6%를 기록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재명 후보가 2672표로(득표율 22.5%) 뒤를 이었다. 안희정 후보는 1371표(득표율 11.6%), 최성 고양시장은 39표로 0.3%를 기록했다.
민주당에선 이 문건이 몇몇 지역위원장의 SNS 단체 대화방에서 공유된 뒤, 유출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해선 양승조 민주당 중앙당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은 “떠도는 개표 결과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근거 없는 자료라고 보면 된다”고 일축했다.
대선 정국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 또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문 전 대표는 3월 23일 “지나고 보면 룰은 언제나 아쉬움이 있다. 개표가 되면 참관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조금씩은 유출된다”면서 “민주당 경선이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축제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후보 캠프에선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유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모습이다. 먼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안희정 캠프의 강훈식 대변인은 3월 24일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만시지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건을 처음 SNS를 통해 유포한 지역위원장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문건을 작성·유포한 경위를 명백하게 밝혀 불법적 행위가 확인되면, 엄정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다만, 안 지사 측은 문건 유출의 유·불리를 떠나 경선 파행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강 대변인은 “안희정 후보는 국민 축제의 장으로 펼쳐지는 이번 경선이 문건 유출 사태로 파행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는 민주당과 정치인생을 함께 해 온 안 후보의 당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덧붙였다.
안희정 캠프 의원 멘토단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문 전 대표 측이 “정확한 수치도 아니고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고 밝힌 것에 대해 “문 전 대표 측에서는 이것이 가짜뉴스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라면서 “이 부분에 대해 당의 분명한 입장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 측의 관련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도 즉각 반발에 나섰다. 이재명 캠프 김병욱 대변인은 3월 23일 “이번 현장 투표 결과 유출에 대한 당 선관위의 안이한 대응은 무원칙하고 무책임하다. 공당으로서 공정 선거가 훼손된 데 분명한 책임과 조치가 없는 점을 납득할 수가 없다”면서 “경선 과정에서 원칙과 공정성 객관성이 무너진 것에 대해 선관위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김 대변인은 “추후 진상조사의 신뢰성 확보와 공정한 진행을 위해 선관위원장은 사퇴해야 한다. 당 대표 사과와 함께 지도부의 사고 방지를 위한 철저한 대책과 노력도 촉구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야당의 한 보좌진은 “문 전 대표 측이 뿌린 것 아니겠는가. 대세론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보좌진은 “문 전 대표 측에서 뭣 하러 그런 일을 하겠느냐. 이미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긁어 부스럼 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 경선의 불공정성에 대해 우려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경선 불공정성 시비가 일어난 것만 해도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경선 흥행이 되지 않으면 문 전 대표에 유리하다. 문건에 실망한 사람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게 되고 문 전 대표의 조직 동원력이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특정 캠프에서 의도적으로 문건을 흘렸다고 보이진 않는다. 문건 유출로 문 전 대표가 득 볼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전 평론가는 이번 논란에 대응하는 문 전 대표의 스탠스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문 전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다. 검찰에 고발하고 문건을 유출한 사람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일련의 상황에 대해 오히려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불법을 방조하거나 수혜를 보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얼마나 불공정하게 경선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