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검색창에 ‘#아낙수나문’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다. 아낙수나문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부인을 뜻한다. 아낙수나문의 사진이 나와야 하지만 검색 목록엔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의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아낙수나문은 “아빠가 낙선하고 수십 번 나와도 문재인”이란 뜻이다. 열성 지지자들이 문 전 대표를 부르는 별명이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민주당 경선 투표 참여 인증샷이나 문 전 대표의 사진을 게시물로 올린 뒤 ‘#아낙수나문’이라고 해시태그를 붙이고 있다.
해시태그(hashtag)는 게시물에 꼬리표를 다는 기능이다. 특정 단어 또는 문구 앞에 해시(‘#’)를 붙이면 연관된 정보들이 한데 묶인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서 ‘#문재인’을 검색하면 문 전 대표 관련 사진 또는 영상이 한꺼번에 보여주는 방식이다.
문 전 대표의 별명은 ‘아낙수나문’뿐만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의 한 회원은 3월 28일 문 전 대표의 호남 경선 압승 소식을 담은 게시물에 ‘#어대문’ ‘#대깨문’ ‘#나팔문’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그는 “지난 대선만 생각하면 괜히 울컥한다. 이번엔 제발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함께 올렸다.
어대문의 뜻은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다. 대깨문은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대세는 깨어있는 문재인”이란 뜻이다. 나팔문의 뜻은 “나라를 팔아먹어도 문재인”으로 18대 대선 당시 “나라를 팔아먹어도 박근혜”라고 인터뷰를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의 발언을 빗댄 별명이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문’을 활용해 인스타그램은 물론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아나문(아빠가 나와도 문재인), 길싸문(길거리에서 싸대기를 맞아도 문재인), 원대문(원래 대통령은 문재인), 사대문(사실상 대통령은 문재인) 등이 그 예다.
문 전 대표의 별명 관련 해시태그는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하고 있다. #어대문(약 2100개), #대깨문(약 800개), #나팔문(약 700개) 등을 보면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문 전 대표 관련 게시물을 올리면서 별명 짓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황상민 연세대 전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층들이 문 전 대표를 구세주로 보는 심리가 별명에서 엿보인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지지하자는 마음이 반영됐다. 젊은이들만의 시각으로 별명짓기로 지지를 표현하는 방식이지만 간과한 사실이 있다. 그만큼 문 전 대표의 정체성이 애매하고 별명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해서 지지자들도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별명은 충남엑소다. 엑소는 유명 아이돌그룹의 이름이다. 안 지사의 출중한(?) 외모 덕에 “충남에서 웬만한 아이돌 그룹만큼 인기가 많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1월 12일 인스타그램의 한 회원은 “능력자 친구 덕에 충남엑소 사인을 받았다. 충남엑소라고 적어달라고 했는데 ‘충남XO’라고 써서 기절할 뻔했지만 귀여우셨다”는 후일담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충남엑소’를 검색하면 약 650개의 게시물이 등장한다. 인스타그램의 다른 회원은 안 지사의 저서 <콜라보레이션> 구매 인증샷과 함께 “대학 시절부터 안 지사를 지지했다. 안 지사는 길게 내다보는 사람이고 소신과 신념이 확실하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충남빅시도 마찬가지다. 2014년 지방선거 개표방송 당시 안 지사는 유명 속옷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 간판 모델들이 하는 특유의 손키스 포즈를 취했다. 안 지사가 충남빅시로 불리게 된 계기다. 주로 여성 회원들이 ’#충남빅시’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한 여성 회원은 최근 “회관에 충남빅시가 등장했다. 사인을 받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적는 모습을 보며 반하고 있다. 심장이 뛴다”고 밝히며 #충남빅시, #충남아이돌, #충남엑소, #남자의완성은얼굴 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야권의 2등 주자답게 충남빅시(약 250만), 충남아이돌(약 260개) 안깨비(약 179개) 등 안 지사의 별명들이 담긴 해시태그는 문 전 대표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작살 이재명 선생’으로 통한다. 이 시장은 그동안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작살내겠다” “열정페이를 작살내겠다” 등의 주장을 펼칠 때마다 ‘작살’이란 키워드를 써왔다. 이재명 지지자들이 이 시장 특유의 사이다 화법을 빗대 ‘작살 이재명 선생’으로 별명을 지은 것이다.
동영상 전문 유튜브 사이트에 올라온 ‘작살 이재명 선생의 각오’, ‘이재명의 작살론’ 등 이 시장의 연설 영상은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시장 지지 성향의 인스타그램 회원들의 해시태그는 주로 #친일매국노처단 #작살이재명선생 #친일파척결 등이다. 이재명 지지자들이 별명에 친일기득권과 재벌체제 해체 등 적폐를 청산해달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별명은 국민장인이다. 유 의원의 딸 유담 씨는 지난해 3월 유 의원의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공개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누리꾼들은 유 씨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유 의원을 ‘국민장인’이라고 부르며 사위를 자처하고 나섰다. 20대 총선 개표 방송 당시 유 씨의 모습이 등장한 순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채팅방에는 ‘장인어른’ ‘국민장인’이라는 글로 도배가 됐다.
유지진 역시 유 의원의 별명이다. 유지진은 “유 의원이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12일 유 의원은 JTBC와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경주 지진으로 1주일이 미뤄졌다. 1주일 뒤 경주에서 지진이 또 발생해 유 의원은 뜻하지 않게 재난 관련 질문에 답해야 했다. 하지만 유 의원 별명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는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다. 인스타그램 검색창에 ‘유지진’과 ‘국민장인’을 검색하면 단 한 건의 게시물도 나오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대권 잠룡들이 지닌 고유의 콘텐츠를 빗댄 별명이 전무한 점이 아쉽다”고 평했다. 황상민 전 교수는 “별명에는 가장 뚜렷한 부각된 특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유 의원을 ‘국민장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유 의원의 자기 콘텐츠가 없다는 반증이다. 안 지사의 정체성도 아이돌그룹 엑소가 아니다. 안 지사의 정체성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충남엑소로 별명을 지은 것이다. 잠룡들의 별명에 정체성과 정당성에 대한 색깔이 드러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꼬집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