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SNS에 유포되는 ‘가짜 뉴스’가 크게 증가했다. 기존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사건사고와 관련해서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SNS를 통해 유포된 사례는 많았다. 그러나 이처럼 언론사나 기사의 이름을 달고, 마치 정식으로 출고된 기사인 것처럼 조작된 뉴스들이 대거 유포된 적은 없었다. 가짜 뉴스에 언급된 관계자들이 직접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반박해야 관심이 조금이나마 사그라지는 정도다.
그럼에도 SNS에서는 이들의 반박과 해명을 믿지 않고 가짜 뉴스만을 맹신하는 이용자들로 인해 여전히 수백, 수천 건의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논의 이후부터 현재까지 SNS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결국 뉴스 관계자들이 직접 해명을 하게 만들었던 가짜뉴스들을 추렸다. 이 뉴스들은 모두 팩트 체크를 통해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진 상태다.
# 가짜뉴스1 “JTBC 미주 한인단체에 3000억 원 소송 당했다“
지난 2월 16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한 남성이 태극기를 둘러메고 삭발을 감행했다. 재미교포 사업가 지미 리(Jimmy Lee)로 알려진 이 남성은 JTBC를 상대로 3000억 원의 소송을 건 당사자였다. 지미 리는 이에 앞서 지난 1월 미주 한인 보수단체의 대표로 미국 버지니아 연방법원에 ‘JTBC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재미교포들에게 피해 배상을 하라‘며 3000억 원의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혀왔다.
자신을 재미교포 사업가로 밝힌 지미 리가 극우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등에 올린 소송 관련 홍보물
그러나 소송 당사자인 JTBC가 직접 지미 리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미국 버지니아 연방법원에는 아예 소장이 접수조차 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더욱이 지미 리는 수년 동안 국내에 머물렀으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4차례에 걸쳐 사기죄로 처벌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 같은 지미 리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JTBC 3000억 원 소송 건은 결국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한편, 천문학적인 소송 액수에도 불구하고 이 가짜뉴스는 초반부터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는데 유독 한 1인 언론 매체에 의해서만 연속 보도됐다. 지미 리가 직접 이 매체와 연락을 취하면서 보도된 것으로 일부 국내 극우 커뮤니티에서는 이 뉴스 기사를 보고 ‘진짜 뉴스’로 판단해 유포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매체는 지미 리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자 “기자도 지미 리의 소송 사기에 속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 가짜뉴스2 “특검 사무실에서 애국동지가 투신해 숨졌다”
지난 1일, 트위터 등 SNS와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인터넷 카페에는 “우리 애국동지님이 투신해서 숨졌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이 직접 투신 현장을 촬영했다고 밝힌 글쓴이는 “박영수 특검 사무실 15층에서 애국동지님이 투신했다. 시신은 실려 갔고 현장만 사진(영상)으로 찍었다”라고 밝혔다.
글쓴이가 올린 영상은 태극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의 충돌 장면만 담겨 있을 뿐 어디에도 투신사고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거짓 정보는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경찰에게 “진실을 밝혀달라”며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대한민국 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에 올라온 영상. 사건 현장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한편 박사모는 이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위해서 “광장에 피를 흘려야 한다”는 등 과격한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탄핵 반대를 위한 할복단을 모집하는가 하면 탄핵이 인용될 경우 유혈 시위 가능성까지 내비쳤던 바 있다. 이 때문에 거짓 정보를 이용해 탄핵반대집회의 사기를 높이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가짜뉴스3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아들 삼성 취업 약속 받았다”
지난 1월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에 관한 가짜뉴스다. 당시 “불합리한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처럼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기각 결정을 내린 데에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붙여지면서 이 같은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졌다.
다만 급속도로 퍼진 것에 비해 그 영향력은 비교적 일찍 막을 내렸다. 이는 법원의 이례적인 공식 발표의 영향도 있었지만 일단 조 부장판사에게는 아들이 없다는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있지도 않은 아들을 위한 취업 알선 약속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
조 부장판사의 영장기각에 대해서 SNS에 비판글을 올렸던 서울대 조국 교수도 이 가짜 뉴스와 관련해서는 “(조 부장판사가) 삼성 장학생이었다거나 아이가 삼성 취업 예정이라거나 하는 말, 모두 허위입니다”라고 밝혔다.
# 가짜뉴스4 “영국과 일본의 정치학자들, 한국의 비정상적인 탄핵운동과 시위현장을 지적하다”
아마 올해 가장 유명한 가짜뉴스이자 ‘낚시글’일 것이다. 일본 서브 컬처에 심취해 있는 마니아, 이른바 ‘오타쿠’들이 공중파 전파를 타게 된 계기가 된 가짜 뉴스이기도 하다. 이 가짜 뉴스는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의 정치게시판에서 처음 게시됐는데, 가짜뉴스임을 알지 못한 극우단체 회원들이 이를 박사모 등 비슷한 성향의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유포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떨쳤다.
페이스북 등 SNS에 게시된 ‘영국와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 글.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그러나 이 영국과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가짜 뉴스라는 사실이 들통났다. 애초에 일베 애니메이션 게시판에서 활동하던 이용자가 정치게시판의 극우 이용자들을 속이기 위해 만든 가짜 뉴스였던 것. 사실 확인 없이 ‘저명한 외국 학자들이 내놓은 탄핵의 부당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신력이 있는 뉴스다”라며 SNS, 메신저 등을 통해 널리 퍼졌기 때문에 이 가짜 뉴스는 당당히 지상파와 종편 뉴스를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시청자들은 뉴스 화면에 등장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며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 가짜뉴스5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김정일에게 편지를 썼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혼란하던 지난해 12월 인터넷 커뮤니티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대한민국 박사모)’에서 퍼진 가짜 뉴스다. 당시 게시글의 제목은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김정일에게 간 편지’였고, 글에는 그림 파일로 된 편지 내용과 “이런 짓을 하다니 빨갱이”라는 글쓴이의 감상평이 전부였다.
편지글에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건강을 염려하고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내용이 가감 없이 적혀있었다. 보낸 이의 이름은 없었지만 제목에 적힌 ‘문재인’과 ‘김정일’만을 확인한 박사모 커뮤니티는 당연히 문 전 대표에게 “빨갱이 새X”라며 원색적인 욕설을 쏟아냈다. 일부 또 다른 극우 단체에서는 이 내용이 ‘긴급! 문재인 북한 내통!’이라는 문서로 바뀌어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마치 뉴스 속보인 것처럼 공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글은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필 편지를 이용한 ‘낚시’였다. 지난해 12월 17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한 이용자가 박사모 회원들을 속이기 위해 올린 글로 드러났다. 이후 이 편지글이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쓴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사모는 아예 게시물을 지우기에 이른다. 결국 “빨갱이” “민족반역자” “간첩”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편지를 쓴 박 전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향한 꼴이 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혼란한 시국에 큰 웃음 준 박사모에게 감사드린다”라며 짓궂은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