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 리더 허태열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범 친이 세력 내부 대결 구도서 ‘친이 대 친박’ 대결로 바뀌는 양상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나라당 전당대회(7월 3일)를 앞두고 당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정몽준 최고위원 간 2파전으로 진행되는 듯했던 전당대회에 ‘뜻밖의 인사’인 허 의원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허 의원은 당 사무총장을 지낸 3선의 중진의원이다. 현재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거나 준비 중인 인사들 중 허 의원보다 선수에서 앞서는 현역 의원은 정몽준 의원(6선)뿐이다. 김성조 의원 정도가 허 의원과 같은 3선이고 나머지 공성진 박순자 진영 의원 등은 모두 재선이다. 이 때문에 허 의원이 가진 자체적인 정치력만으로도 최고위원 투표에서 상위 순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허 의원의 출마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허 의원이 현재 당내 친박 의원 중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범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세력 내부의 대결로 진행되리라던 전당대회 구조가 갑작스레 ‘친이 대 친박’의 대결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원 내외를 합쳐 전체 당협위원장 중 친박 측 당협위원장은 대략 60명 선. 전체의 25% 안팎이다. 지난해 경선까지만 해도 짧은 의원직 경력과 이후 서울시장으로 입지를 굳힌 이명박 후보가 당 대표까지 지낸 박근혜 후보에 비해 당내 기반에서 뒤처지는 양상이었다. 즉 대의원 분포상 친박이 친이 측을 능가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4·9 총선 공천과정에서 상당수 친박 당협위원장이 공천을 못 받고 탈당의 길로 들어서면서 어느덧 당내 대의원 분포는 친이 측이 친박 측을 앞서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허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1등을 차지, 당 대표에까지 오를 가능성은 일단 적지 않느냐는 게 여의도 정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친박 측 대의원들이 똘똘 뭉쳐 표를 던진다면 최대 2위권은 가능해 보인다는 전망도 많다. 허 의원이 2위를 차지 한다는 것은 결국 기존 ‘2강’이었던 박희태 전 부의장과 정몽준 최고위원 중 한 명은 1위는커녕 3위권 밖으로 밀린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맥락에서 허 의원의 출마가 던지는 파장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정몽준 최고위원과 박희태 전 부의장 중 누가 허 의원의 출마로 인해 ‘날벼락’을 맞게 될까.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정답은 ‘친이 주류세력이 정몽준 최고위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존 전당대회 출마 후보인 진영 의원과 김성조 의원도 성향상 ‘친박’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진영 의원은 수도권 출신이고 지난해 경선에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박 전 대표를 돕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 의원은 친박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친 강재섭 계열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친이 측에서 크게 긴장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 박희태(왼쪽), 정몽준. | ||
혹자들은 친이 측에서 아예 새로운 후보, 예컨대 안상수 의원 같은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그러나 안 의원 본인은 최근 기자들에게 “국회의장에서 떨어진 뒤 다시 당 대표 선거에 나가면 자리에 연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번 전당대회에는 나가지 않는다”며 선을 긋고 있다. 결과적으로 원래부터 친이였던 박희태 고문에 비해 당내 기반이 약한 정몽준 최고위원을 친이 측 대의원들이 얼마만큼이나 ‘우리 식구’로 받아들이느냐가 당권 구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일단 친이그룹 내부에서는 박희태 전 부의장을 대표로 미는 기류가 형성돼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만일 친이 측 표를 박희태 전 부의장과 정몽준 최고위원이 반반씩 나눠 갖는다면 당권은 정 최고위원이 가져갈 확률이 높다. 득표의 30%를 차지하는 여론조사에서 정몽준 최고위원이 박희태 전 부의장을 상당 부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정몽준 최고위원을 ‘친이 측 차기 주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정 최고위원은 당권 장악은 고사하고 허태열, 공성진 의원에게도 밀릴 가능성이 있다. 공성진 의원의 경우,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그동안 ‘공들여온’ 호남 지역 표심에 본인이 서울시당위원장을 하면서 만들어 놓은 서울지역 인맥을 합칠 경우 무시 못할 표심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1인 2표제’를 택하고 있는 선거 방식도 숨은 변수로 꼽힌다. 당규에 따라 최대 1만 명으로 규정된 대의원 선거인단은 한 투표용지에 2번의 도장을 찍는다. 언뜻 보면 2만 표가 유효투표(1만 명×2표)가 될 것 같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의원 본인의 의사에 따라 후보 1명에게만 표를 줘도 해당표가 유효표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즉 대의원이 1만 명으로 확정될 경우, 유효투표수는 1만 표(모든 대의원들이 1표만 행사할 경우)에서 최대 2만 표(모든 대의원들이 정상적으로 2표를 행사할 경우)까지 나올 수 있다.
이런 투표 방식이 가지는 변수는 후보들 간 ‘합종연횡’이 얼마만큼 표로 연결될지 쉽게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친박 의원들인 허태열-진영 의원이 연대를 한다 해도 두 후보가 공평하게 한 표씩 나눠가질지, 누구 한 명만 표를 얻을지 미지수라는 의미다. 거꾸로 친이 대의원들이 2표를 행사하면서 박희태, 정몽준 후보에게 한 표씩 줄 수도 있지만, 둘 중 한 명만 찍고 나머지 한 표는 아예 기권을 하거나 다른 후보를 찍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 때문에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과연 어떤 후보와 짝을 지어야 상대 후보나 본인 모두 한 표씩 얻을 수 있을까. ‘믿을 만한 한 표’를 놓고 연대를 도모하는 후보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