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기 전 드라마 업계에서 잠시 일했다. 내로라하는 배우를 바로 옆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밤샘 촬영을 함께 졸았다. 맞담배를 피우며 가까워졌다.
하루 종일을 같이 있기를 몇 달 반복하다 보면 사람의 바닥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히 배우 A 씨는 정말 앞뒤가 다른 사람이었다. 훤칠한 외모에 신사다운 이미지를 가진 그는 늘 촬영장에서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밝게 인사했다. 그런 그의 본 모습을 보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몇몇 촬영 스태프 사이에서 “A는 인사를 너무 안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봐온 그는 늘 밝은 인사가 트레이드 마크인 사람이었다. 그 배우를 “인사 참 안 한다”고 비판하던 한 사람에게 내막을 물었다. 그가 말했다. “A 씨는 자기에게 도움될 감독, 프로듀서, 카메라 감독 등에게만 인사한다. 막내 등 낮은 사람은 거들떠도 안 본다.“
평소 인사성 밝기로 소문난 그의 이런 모습을 보니 씁쓸했다. 게다가 작품에서 그는 항상 바르고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 배려하는 역만 맡아왔다. 대중에게 그는 ‘참 친절한 사람’이었다. 실망이 컸다. 대중에게 비춰지는 이미지, 본질과 궤를 달리할 수 있단 생각을 했다.
최근에도 그런 일을 느꼈다. 지난 2월 서종대 옛 한국감정원장의 성희롱 기사를 한참 쏟아낼 때였다. 처음 성희롱 의혹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성명을 발표한 건 이정미 의원실과 금융노조였다. 새로운 제보도 있어서 기사는 쭉쭉 나왔다.
털고 털어도 더 이상 털 큰 소재가 없어질 때면 기자는 답이 없다. 특히 서종대 옛 원장처럼 거물에 ‘정치권 기름칠’을 잘 하는 사람을 상대할 땐 더욱 그렇다. 이슈가 묻히는 게 눈에 보였다. 거대한 누군가 한 번 질러주는 게 가장 큰 힘이 된다. 유명세가 높은 정치인의 한마디가 필요했다.
이름 좀 있는 의원들에게 ”여직원 상대로 지속적인 성희롱을 해 온 공공기관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당연히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에게 가장 먼저 연락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문재인 캠프로 들어간 B 의원, 세련된 영상을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리며 젊은이에게 사랑을 독차지했던 C 의원 등 여가위 소속 의원이 대상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다들 한 목소리를 냈다. “회의 중이다. 이따가 전화 드리겠다.” 전화는 없었다.
문득 1월쯤 취재했던 성남시청 기사가 생각났다. 성남시립국악단 성희롱 사건을 취재하다 궁금해진 사항을 몇 개 물으려 ‘큰 목소리’로 유명했던 그 분에게 전화를 한 적 있었다. 그 분은 전화는 받지 않았다. 바로 ”뉘신지요?“라는 문자를 보내 왔다. 전화 이유를 대며 통화를 요청했다. 문자만 계속 이어졌다.
현대 사회에서 포장은 능력이다. 하지만 포장에만 심혈을 기울이다 다들 망각한 사실이 하나 있다. 포장지는 결국 분리수거함으로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포장은 벗겨졌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평가 받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