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이 출연하고 있는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의 시청률이 20%를 돌파했다. 그가 이 프로그램에 새로 합류한 4월 16일 방송은 전주와 비교해 무려 8.9%포인트 급상승했다. 심지어 5월 7일 방송은 자체 최고 시청률인 21.3%(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최근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지상파 TV 예능프로그램의 상황을 고려하면 시청률 20% 돌파는 이례적인 수치다.
방송가에서는 <미운 우리 새끼>의 시청률 급등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이상민을 꼽는다. 빚더미에 앉고도 좌절하지 않고 재기를 꿈꾸는, 처절하면서도 치열한 모습으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는 반응이다. 그와 함께 출연하는 어머니는 한편으로 시청자의 ‘심정’까지 자극하고 있다. 어렵게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눈물짓는 어머니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시청자는 없다.
# ‘재기불능’에서 브랜드평판 1위까지
이상민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희망을 잃지 않고 12년간 차근차근 빚을 갚아낸 저력이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얻고 있다. 채권자의 집에 얹혀사는 모습에서부터 수입이 적을 땐 없는 대로 몇 십만 원씩 착실하게 갚아왔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호감을 높이고 있다.
이상민은 ‘10년 지기’ 채권자와 방송에 동반 출연까지 했다. 이상민에 10억 원을 빌려줬다가 지금도 돌려받지 못한 한 채권자는 <미운 우리 새끼>에 기꺼이 출연했다. 서로 반목하기는커녕 다정하게 설렁탕을 나눠먹으면서 이상민의 재기를 응원하기도 한다. 10억 원이라는 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마치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처럼 서로를 애틋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는 시청자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들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다.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이런 과정에서 이상민이 새로 얻은 별명은 ‘궁상민’이다. 7000원짜리 운동화를 신고, 채권자가 보내준 녹용이 들어있던 선물가방을 들고 외출하는 모습이 ‘짠내’를 풍기기 때문. 어떻게든 돈을 아끼려 안간힘을 쓰는 일상생활이 ‘궁상맞다’는 반응을 얻으면서 붙은 별명이다.
시청자가 이상민에 보내는 전폭적인 지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최근 한국기업평가연구소가 발표한 ‘예능 방송인 브랜드 평판 5월 조사’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상민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1위에 올랐다. 그동안 브랜드 평판에서 장기집권해온 부동의 1위는 개그맨 유재석이다. 안티팬 없는 ‘국민MC’의 아성을 공격할 만한 위치에 서서히 다가서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중으로부터 고르게 인정받는 방송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는 평가 역시 받고 있다.
# 69억 빚 진 이유…사업 실패와 불법 도박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이상민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따라붙는 연관검색어는 ‘이상민 빚 진 이유’다. 그만큼 사람들은 이상민이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된 과정에 상당한 궁금증을 내비치고 있다.
이상민은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이끈 가수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다. 이후 음반 제작에 뛰어든 제작자이기도 하다. 1994년 4인조 혼성그룹 룰라의 리더로 데뷔한 이상민은 당대 음반시장 호황을 이끌면서 전성기 인기를 누렸다. 그룹 해체 이후에는 디바, 샤크라 등 여성그룹을 제작하면서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갔다. 지금은 채권자의 집 한쪽을 얻어 생활하고 있지만 제작자로 성공가도를 달릴 때는 서울 청담동에 108평짜리 빌라를 소유할 정도의 자산가였다.
하지만 성공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음반 제작에 주력하던 무렵 온라인 음원시장이 본격화되면서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고, 소속 가수들도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2005년 무렵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빚더미에 앉게 됐다. 이후 재기를 노리면서 외식사업에 손을 댔지만 연이은 실패를 맛봤다. 그렇게 얻은 빚이 69억 8000여만 원에 이른다.
위기는 계속됐다. 2010년에는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지상파 3사 출연이 정지됐다. 재기 불능의 처지로 치닫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생명력은 쉽게 끊이지 않았다.
이상민은 2013년께부터 케이블위성채널을 통해 방송 출연을 타진하기 시작했고 2014년 <음악의 신> 등 프로그램을 통해 특유의 예능 감각을 발휘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중의 신뢰를 서서히 회복된 것도 이 시점이다.
이상민은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해 “회사가 부도를 맞았을 때는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연예인으로 실망을 끼쳤고 과거의 모습이 용서받은 상태가 아니라고 여긴다”는 그는 “꼬리표처럼 영원히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나를 지켜본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도 했다.
시청자가 이상민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가 최악의 상황을 견디면서도 채무의 책임을 다했다는 사실에 있다. 70억 원에 가까웠던 빚의 상당 부분을 변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한 방송에 출연해서는 “올해 안에 빚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도 밝혔다.
이상민은 파산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 10년 넘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채권자들이 여러 명인 배경은 그가 꾸준히 보여주는 책임감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민이 “열심히 살라고 홍삼 같은 건강보조식품을 열정적으로 보내주는 사람들은 전부 채권자들”이라고 말한 날, <미운 우리 새끼>의 시청률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