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문재인 정서’ 극복·적통 인정·텃밭 재기 발판
-투표율 1위, 보수 결집 견제 ‘될 사람’에게 전략적 선택
-국민의당 참패 책임론 비등…지역정가 개편 불가피
광주 시내 전경 <광주시 제공>
[광주= 일요신문] 이경재 기자 = 호남은 ‘문재인’을 선택했다. 확실한 정권 교체와 적폐 청산,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열망이 ‘문재인 카드’에 몰표를 던졌다. 보수 대결집에 대한 강한 견제 심리가 작용해 대안론보다는 대세론, 즉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될 사람’에게 표를 몰아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지난해 총선에서 참패했던 더불어민주당은 1년 만에 반문(反文·반문재인) 정서와 호남홀대론을 극복하고 김대중(DJ),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통을 인정받게 됐으며, 텃밭 호남에서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호남 여당’ 국민의당의 참패로 지역정가 재편이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끝난 19대 대선의 결정적 승부처로는 단연 호남이 꼽힌다. 당초 문 후보는 호남을 기반으로 창당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야권 주자로서 호남 표를 양분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호남은 문 후보에게 60% 내외의 압도적 지지를 보내며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줬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 18석 중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1석 밖에 없는 곳에서 문 후보는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의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광주 61.14%, 전북 64.84%, 전남 59.87%였다. 전북의 경우 문 대통령의 17개 시도 지역별 득표율 중 최고치다.
문 후보에게 승기를 쥐어준 호남 표심은 역으로 안 후보에겐 패배를 안겨줬다. 호남을 기반으로 창당한 국민의당은 당초 호남에서 안 후보가 50% 내외의 득표율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지만 안 후보는 광주에서 32.46%, 전남에서 32.15%, 전북에서 24.67%를 얻는 데 그쳤다.
호남을 기반으로 둔 국민의당으로선 뼈아픈 결과다. 홍 후보는 광주에서 1.55%를 얻어 유 후보(2.18%), 심 후보(4.57%)에 밀리는 등 호남 득표율이 1~3%에 머물렀다. ‘원내 1당’ 대 ‘호남 여당’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로 뜨거운 관심을 끌면서 투표율도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광주는 82.0%로 전국 평균(77.2%)보다 4.8%포인트나 높았다. 전남도 악천후에도 78.8%의 투표율로 17개 시·도 중 5위를 기록했다.
이번 대선은 전통적 여야(野野) 대결이 아니고 여당없이 원내 다당구조인데다 호남 정가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양분돼 표 분산이 불가피하고 세대별 양극화로 표 갈림도 예상됐지만, 결론은 전략적 몰표로 귀결됐다. 원내 5당 후보 중 호남 출신이 없고 ‘안철수 샤이’층과 20% 안팎의 부동층 향배도 안개 속이어서 몰표를 예단하기 쉽지 않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묻지마 몰표’는 아니었지만 전략적 몰표는 또 다시 재연됐다.
막판 선거 판세가 ‘보수 대 진보’, ‘영남=보수, 호남=진보’로 진영 논리가 힘을 얻은 가운데 투표 초반 보수의 중심지인 TK(대구·경북) 투표율이 높아지자 위기감을 느낀 진보와 중도진보, 정의당 지지표 등이 대거 문 후보에게 쏠린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초 호남에서 70% 이상의 지지율을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못하지만 결국 확실한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될 사람을 찍자’는 전략적 선택, 보수 견제 심리가 표심 깊숙이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우중에도 전국 최고 투표율을 보인 것도 문 후보 지지층이 많은 20∼40대가 투표장을 많이 찾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국민의당 창당 후 4·13총선에서 반문 정서가 넓고 진하게 드리워지면서 의석수 ‘1대 16’으로 국민의당에 참패했던 민주당으로서는 대선을 전환점으로 반문 정서는 극복하고 DJ와 노무현 정신이 관통하는 호남에서 적통으로 인정받아 텃밭 호남에서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게 됐다.
반면 광주 지역 전체 8개 국회 의석을 비롯, 호남 28개 중 23개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은 안 후보의 참패로 설 자리를 잃게 됐고 ‘제2의 안풍(安風)’이 무산되면서 지방선거와 총선 등 향후 선거 정국에서도 영향력과 주도권이 상당 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후폭풍으로 당내 책임론이 대두되고 좌장격인 박지원 대표 등 당 지도부가 2선 퇴진했다. 자연스레 지역 정가 재편과 내년 지방선거 조기 과열이 예상되고 있다.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경우 지역 현안 해결이나 국회 예산 확보 등에서는 힘을 받는 대신 현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조기 선거전은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두 자릿수 득표율에 실패하며 보수 불모지 개척의 어려움을 다시금 실감한 반면 정의당은 진보 진영이 문 후보로 쏠린 가운데서도 ‘심상정 신드롬’등의 여파로 4% 안팎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총선 때 수도권 향우는 민주당, 호남 유권자는 국민의당으로 표심이 갈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비슷한 지지세를 보여 범호남 표심 양분 논란도 잠재웠다.
민주당의 호남 주도권 탈환에는 선거 전략도 한몫 했다. 시스템선거와 집중 유세, SNS 선거 전략, 전략적 타킷팅, 중앙캠프의 지원 등이 고루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광주 특보’를 자임한 김정숙 여사의 쉼없는 호남 구애도 반문 정서 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문 후보와 안 후보 간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으나, 선거 막판 보수 대 진보, 영호남 대결구도가 부활하고, 안 후보에 대한 불안감 등이 더해지면서 전략적 몰표가 나온 것 같다”며 “보수와 진보 간 적대적 대결 구도는 풀어야할 과제지만, 지역 정가는 대대적인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야권으로의 정권 교체가 현실화되면서 지난 10년 간 보수정부 아래서 인사 홀대에 시달렸던 호남 출신 인맥의 중용과 특히 ‘호남 총리’와 예비내각 진출도 늘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