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환경 정비를 통한 정국돌파 방안’이란 제목의 이 문건은 모두 A4 용지 7쪽 분량. 제목 우측 하단에는 ‘民情(00.11.30)’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문건이 민정수석실에서 2000년 11월30일자로 작성됐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복수의 인사들에게 대통령 보고문건의 양식을 문의한 결과, 제목 우측 하단에 보고서 작성 수석실명과 작성일자가 기록된 입수 ‘문건’의 양식은 청와대에서 통용되고 있는 보고서 양식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 문건이 민정수석실을 통해 김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일요신문>이 단독입수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작성 ‘언론환경 정비를 통한 정국돌파 방안’ 문건. | ||
문건은 ▲정국 정황 ▲대응 방안 ▲언론환경 개선방안 ▲결론 등 크게 네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언론환경 개선방안으로 ▲탈세와 탈루 수입 적발 ▲내부자거래 등 각종 불공정 행위 단속 ▲사주들의 각종 비리 내사 등 8가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개별 ‘언론환경 개선방안’에는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무 해당기관을 명시해 놓음으로써 향후 ‘언론환경 개선’에 유관기관을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 이 문건이 작성된 지 두 달여가 지난 2001년 2월,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앙 언론사를 대상으로 세무조사와 불공정행위 조사에 전격 돌입함으로써 문건에 제시된 ‘언론환경 개선방안’은 상당 부분 그대로 실행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건의 건의 내용에 따라 청와대가 언론사 기획사정에 나섰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향후 사회 전반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문건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국 정황’을 다룬 1항에서는 당시의 정국을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야당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수구언론의 비협조에서 찾고 있다.
2항 ‘대응방안’에서는 난마처럼 얽혀 있는 난국을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반정권적 보도 행태를 극복하기 위한 언론환경 개선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작은 실수나 지엽적인 문제를 과장, 왜곡해서 반복 보도함으로써 그것이 마치 국가의 기반을 뒤흔드는 중요한 정책적 실패인 것처럼 호도해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극도로 훼손하는 한편…사세 확장과 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자사이기주의로부터 비롯하는 반정권적 보도행태야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라 할 수 있음. 메이저 신문들의 이와 같은 보도태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어떤 과업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임. 문제의 관건은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현 정권이 과연 현재의 언론환경을 개선할 의지와 현실적인 힘이 있느냐에 있음.”
문건은 3항 ‘언론환경 개선 방안’에서 ‘언론환경을 개선하는 수단으로 다소의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당근보다는 채찍을 활용할 것’을 주문하며 8가지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각 방안의 하단에는 주요 표시(※)와 함께 업무를 추진할 해당기관의 이름을 적어 놓고 있다.
개선방안의 첫째는 탈세와 탈루 수입 적발.
각 언론사가 상습적이고 관행적으로 자행해온 탈세, 누세를 통한 부당이득을 추적하고 광고수주액과 세금계산서 발행금액의 차액확인을 통한 누락수입에 대한 과세 및 추징을 주문하고 있다.
‘개선방안’ 하단에는 해당기관으로 국세청을 제시, 국세청을 통한 ‘탈세와 탈루 수입’을 적발할 것을 적시하고 있다.
두 번째 방안으로는 금융감독원과 각급 금융기관을 통한 ‘금융특혜의 중단과 기존 여신의 회수’를 들고 있다. 금융상의 특혜를 중단시킴으로써 재무구조가 열악한 일간지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이유로 기존 여신을 회수함으로써 재정상태가 양호한 유력지까지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 방안은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내부자거래 등 각종 불공정 행위 단속. 특히, 유력지들의 계열사 간 내부거래 적발과 단속을 제시하는 한편, 부수 확장을 위한 무차별적인 무가지 살포와 사은품 증정, 광고 강요행위 등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주문하고 있다.
네 번째 방안으로는 문광부와 국회를 통한 ‘발행부수 검증 공개제’의 법제화를, 다섯 번째 방안으로는 출입처제도의 폐지를 주문하고 있다.
여섯 번째 방안은 언론사에 대한 각종 지원 및 혜택의 축소와 중단.
문건은 “프레스센터 등에서 언론의 사회적 공기능을 감안, 현재 언론사들에 제공되고 있는 각종 지원과 특혜를 대폭 축소하고, 선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언론사에 대해 음성적인 제어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기자들에게 제공되는 각종 지원의 선별적 적용으로 영향력을 제고하는 한편, 필력이 뛰어난 오피니언리더급 기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특별관리”를 언급하고 있다.
일곱 번째 개선 방안은 사주들의 각종 비리 내사. 검찰, 경찰, 국정원(문건에는 안기부로 표기), 여타 사정기관 등을 통해 사주들의 공금 횡령 및 유용 사례에 대한 내사와 채증으로 정권에 대한 대결의지를 약화시키고 이를 위해 특정 이권과의 연루, 유착 사실을 포착(○○일보 일가의 카지노 대부 ○○○에 대한 비호 등)해 활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마지막 개선방안으로 제시된 것은 ‘언론사 내부의 인사권에 대한 영향력 제고’. 사주에 대해 확보한 견인·제어력을 활용해 간부급의 인사에 개입,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정권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스스로 자제하도록 유도할 것을 권하고 있다.
또 문건은 끝으로 ‘결론’을 통해 위 여덟 가지 ‘언론환경 개선방안’ 실행을 위해 ▲해당 기관들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조(팀워크)가 필수적이며 ▲철저한 보안유지 속에 주도 면밀한 계획을 수립, 적절한 시기를 선택 ▲전방위적이며 동시다발적으로 신속 과감하게 각종 조치들을 집행해 기 집행사항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언론사의 반발과 정권의 부담을 최소화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구자홍 기자 jhk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