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기상’을 살피며 남북관계를 진척시켜온 역대 한국 정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 대에 이르러 모반(?)을 꾀했다. 미국이 경계하는 베이징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
이후 한반도에는 워싱턴발 냉기류가 흘렀고 2001년 9·11테러 뒤 2차 남북정상회담은 미국의 달갑잖은 표적이 되고 있다.
▲ 2000년 6월13일 평양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순안공항에서 김정 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북측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다. | ||
이를 위해 러시아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고 러시아도 이에 응답, 지난해 7월 이바노프 외무상이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하였다. 뒤이어 극동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동, 2차 정상회담에 청신호를 울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북한과 러시아 간에 요구사항이 다른 점도 있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애당초 정상회담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DJ정부로부터 더 얻어낼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 또한 당시의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도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의 등장은 북한의 대남 전략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평양 사정에 정통한 중국의 한 동포에 의하면 한국의 대선을 주시하던 김정일 위원장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DJ정부의 대북정책을 승계한다고 밝힌 데다 일관되게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라는 것. 김 위원장은 “(답방 때 환영인파가) 1천만 명도 필요없다. 3백만, 아니 없어도 된다”며 상당히 들뜬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이 정상회담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데 대해 북한과의 무역을 통해 고위층과도 통한다는 한 대북사업가는 “한국의 상황 변화도 영향을 주었지만 무엇보다 미국의 강도 높은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대미 ‘방패막이’ 카드로 활용하는 데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이 금강산 육로관광을 허용하고 남북장관급회의, 이산가족상봉 등을 신속히 진행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
미국은 이라크 다음 타깃이 북한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부시 행정부 일각에선 ‘김정일 제거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북한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다.
이러한 국내외 환경은 북한으로 하여금 정상회담에 적극 나서게 하고 있다. 국내외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은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의 회담이 성사된다면 그 시기는 8·15 광복절이 유력하다고 말한다. 경호를 비롯한 준비에만 최소 3개월 이상이 걸리는 데다 명분에서 광복절만큼 상징성을 띤 날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압박에 비례해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한반도의 서글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