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이들을 가리켜 ‘SNS에서 영향력 있는 개인’이라는 의미의 ‘인플루언서(Influencer)’라고 부른다.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무시하다. 이들이 입는 옷, 착용하는 액세서리, 찾는 맛집 등은 모두 순식간에 유행이 되고 만다.
그런데 처음에는 단순히 SNS 스타라고 일컬어지던 이들이 SNS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점차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이들을 ‘신종 직업군’으로 분류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들이 협찬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에도 엄연히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 세무국 직원들이 SNS 스타들을 팔로잉하기 시작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패션 블로거 카로 다우르가 파리의 호텔 창가에 앉아 ‘걸오브나우’ 향수를 소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10만 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다.
얼마 전 독일 함부르크의 유명 패션 블로거인 카로 다우르(22)의 인스타그램에 흰색 목욕가운을 걸친 채 파리 호텔방 창가에 앉아있는 그녀의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짙은 화장을 하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손에는 무심한 듯 향수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이 사진과 함께 다우르는 “오늘 밤에 열리는 @eliesaabworld의 애프터쇼 파티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새로 출시된 향수 #girlofnow를 뿌리고 갈 예정이다”는 글을 올렸다. 엘리 사브(@eliesaabworld)는 레바논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이며, 여기서 말한 향수(#girlofnow)는 사브가 새롭게 선보인 ‘걸 오브 나우’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110만 명에 달하고 있는 다우르는 남다른 패션 감각을 뽐내는 SNS 스타로, 특히 유럽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녀는 거의 매일 자신의 화려한 일상을 업로드하고, 팔로어들은 이런 그녀의 일상을 마치 연속극을 보듯이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다. 가령 그녀가 이탈리아에서 열린 ‘돌체 앤 가바나’ 패션쇼 무대에 올랐을 때, 어머니와 함께 바닷가 5성급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을 때, 팬티스타킹 광고 촬영을 갔을 때, 아침식사를 하면서 웃으면서 손목시계가 잘 보이도록 굳이 숟가락을 들고 앉아있을 때 등등이 그렇다. 이런 사진들에는 순식간에 수십만 번의 ‘좋아요’가 쌓이곤 한다.
다우르가 SNS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인플루언서’라는 말은 지금처럼 흔하게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말 그대로 인터넷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다. 현재 그녀가 매년 벌어들이고 있는 돈은 어림잡아 100만 유로(약 13억 원)가 넘는다. 이는 패션지 <보그> 편집장의 연봉보다도 더 많은 액수다.
그녀가 받는 100만 유로는 특정 업체의 제품을 홍보해주는 대가로, 혹은 협찬받는 제품의 비용을 포함한 일종의 수수료다. 그렇다면 다우르는 과연 팔로어들에게 자신이 이 제품을 광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알리고 있을까. 가령 위에서 언급한 향수의 경우, 업체 측으로부터 향수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은밀하게 숨겨왔어도 별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이런 광고성 글들 때문에 입장이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인플루언서들의 소득에 대한 세금 징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매니저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소득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받았던 다우르는 대답을 회피했다. 일종의 세무 조사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이와 관련, <포쿠스>는 다우르와 같은 유명 블로거들 머리 위에 점차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바로 공짜로 제공받는 제품들을 소개하고 돈을 받으면서도 소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과 비난이 점차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난이 일기 시작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가령 지금까지 유명 블로거들이 소개하는 아기옷, 주방도구, 운동화 등은 팔로어들로부터 대체로 신뢰를 받기 때문에 해당업체의 매출로 이어지곤 했었다. 이들이 늘 새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이유가 사실은 협찬을 받았거나, 혹은 돈을 받고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거의 대부분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한 이들이 얼마 후 이렇게 협찬받은 값비싼 물건들을 온라인 중고장터에 팔아치우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세무국 직원들의 눈에만 거슬릴 뿐 지금까지 이를 언짢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6월 초, 함부르크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미디어위원회는 “유튜브 스타인 플라잉 우베는 1만 500유로(약 140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유인즉슨, 우베가 여러 차례에 걸친 경고에도 불구하고 특정 제품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광고 목적의 동영상 세 편의 방송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으로 수천 유로를 벌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 인플루어서들에 대한 감시는 점차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베를린에 위치한 공정경쟁협회(VSW)는 법률가들 사이에서 ‘인플루언서 감시자’로 유명하다. 안젤리카 랑에 회장은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일련의 인플루언서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서른 명 정도다”라고 밝혔다.
만일 협회로부터 경고를 당할 경우에는 180유로(약 24만 원) 정도의 벌금이 부과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협회로부터 소송을 당하게 된다. 이미 몇몇 블로거들을 상대로 소송 절차에 들어간 경우도 있다.
유명 블로거 브레니 프로스트는 홍보성 글에 반드시 협찬 표시를 해 ‘투명성’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발빠르게 ‘투명성’을 강조하고 나선 인플루언서들도 있다. 베를린의 유명 블로거인 브레니 프로스트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민감한 이런 주제에 대해서 솔직한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프로스트는 현재 인스타그램에 6만 5000여 명의 팔로어를 두고 있다. 프로스트는 “나는 솔직한 소수의 인플루언서들 가운데 한 명이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프로스트는 현재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당 300~500유로(약 40만~67만 원)를 받고 있으며, 블로그에 올린 포스트의 경우에는 건당 약 1000유로(약 134만 원)씩 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홍보성 글에는 반드시 협찬 사실을 표시해놓는다. 이렇게 표시를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말하는 프로스트는 “무엇인가를 위해 돈을 받는 즉시 나는 협찬을 받았다는 사실을 표시한다. 예를 들어 내가 자동차 한 대를 협찬받을 때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런 점이 다우르와 같은 인플루언서들과 그녀가 차별화되는 이유다.
프로스트는 대기업으로부터 청탁을 받을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이른바 ‘광고 표시 의무 계약’을 맺는다. 광고글이라는 표시를 없애줄 것을 요청하는 청탁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블로거들은 왜 광고글이라고 표시하는 것을 꺼리는 걸까. 프로스트는 대부분의 경우에 세금 문제 외에도 ‘보기에 안 좋아서’ ‘신빙성이 떨어져 보여서’ ‘진실되지 않아 보여서’ 등을 이유로 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은 이런 광고성 글에 대한 표시 기준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블로거들이 인지는 하고 있지만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어떻게 표시를 해야하는지 잘 모르는 것이다. 프로스트의 경우에는 영어로 글을 올릴 때는 *ad 혹은 *advertorial이라는 표시를 사용하고, 독일어로 올릴 경우에는 ‘광고’라는 뜻의 ‘Werbung’이라는 표시를 적어 놓는다. 실제 독일연방미디어기관이 추천하는 방법은 눈에 띄는 곳에 ‘WERBUNG’ 혹은 ‘ANZEIGE’라는 표시를 적어두는 것이다.
2007년부터 패션 블로그인 ‘주르넬레’를 운영하고 있는 제시카 바이스의 경우에는 독일의 1세대 패션 블로거다. 오늘날 샤넬의 신제품 론칭 행사 때마다 초청을 받고 있을 정도로 유명 블로거가 된 바이스는 “내 블로그에서는 모든 협찬 내용이 표시되어 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바이스는 “안타깝게도 아직은 공식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 없다. 인플루언서는 최근에야 발생한 완전히 새로운 직업군이다. 그리고 이 직업은 최근 몇 년 전부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바이스는 블로그와 패션잡지를 비교하면서 “우리는 보다 양심적으로 광고 표시를 한다. 그리고 훨씬 더 투명하다”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 베니스의 고급 호텔에 묵었던 바이스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서 호텔명과 함께 태그를 걸어 놓았다. 그리고 룸업그레이드를 받았다고도 밝혔다. 이 호텔방의 가격은 1박에 9만 1000유로(약 1억 2000만 원)였다. 만일 바이스가 이에 대한 소득세를 내지 않을 경우, 이는 분명 문제가 된다.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선물 역시 소득 및 영업이익으로 신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함부르크의 패션 블로거인 수잔 펭글러 역시 모든 광고성 글마다 표시를 해놓는다. 2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펭글러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광고 태그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여전히 모호한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과연 어떤 글을 광고라고 표시해야 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그렇다. 가령 협력업체의 요청에 따라 올린 레스토랑의 사진을 추가로 돈을 받지 않고 다른 사이트에 올린 경우, 과연 광고 표시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렇다.
사정이 이러니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관련된 법률 강의를 하고 있는 마르틴 쉬름바허의 세미나는 근래 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올해부터 인플루언서의 홍보 게시글과 관련된 법적 분쟁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인플루언서가 스스로 어떤 물건을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협력업체의 링크를 걸고 언급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광고로 표시를 해야 한다.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포스트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불법적으로 수수료를 챙겨온 파워블로거들을 대상으로 과태료를 부과한 바 있으며, 앞으로 이런 감시는 점차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