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등을 합쳐 2008년 2월 신설된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국민신문고’ 제도를 운영하면서 국민들의 민원을 받고 있다. 인터넷이나 방문, 우편, 전화, 팩스 등을 모두 포함한 방법으로 고충이나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국민 누구나 이 창구를 통해 ‘호소’할 수 있는 것. 이 가운데 상당수의 민원은 국민권익위원회와 관련 부처의 심사를 거쳐 해결되거나 관련 내용이 개선되기도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국민들이 제기한 민원은 총 2만 7372건. 이는 2007년의 2만 3681건에 비해 15.6%가 늘어난 수치여서 지난해 국민들의 마음고생은 좀 더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3만여 건에 이르는 국민 개개인들의 민원 내용은 과연 어떤 것들이었을까.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민원 내용을 부문별로 분석한 자료를 입수해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국민들이 어떤 이유로 시름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그 흐름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지난 한 해 국민들이 제기한 민원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낸 민원이 9481건으로 37.1%를 차지했고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낸 민원이 9084건(35.6%), 공공기관·단체 및 기타 민원이 6982건(27.3%)에 달했다.
이 가운데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한 민원에서는 경찰 분야가 2446건(26.9%)으로 가장 많았고 국방·병무·보훈 분야가 2202건(24.2%), 세무 분야가 1239건(13.6%)이었다. 도시와 교통 분야는 각각 87건(1.0%), 83건(0.9%)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경찰 분야에서는 교통사고 및 단속과 수사 과정에 대한 민원이 많았고 국방·병무·보훈 분야에서는 국가유공자 심사 관련 내용이 대다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특히 뺑소니 등의 교통사고를 재조사해달라는 민원과 피해자의 억울한 사연을 올리는 내용,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민원 등이 많았다고. 국방·병무·보훈 분야에서는 ‘월남전 참전자를 국가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문의가 적지 않았다. 현재 월남전 참전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기 위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 하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미지수다.
개중에는 다소 ‘당황스러운’ 내용이 담긴 민원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청으로 제기됐던 한 민원은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주행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민원인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왜 겁이 많으냐. 오토바이가 고속도로에 통행하면 외국인들이 찾아와 관광 수입도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이러한 민원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와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통행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 등 구체적 통계를 들어 답변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또 ‘정체시의 우회도로를 알려 달라’거나 ‘현충원 내의 주차장을 근처 대학교 재학생이 이용할 수 없느냐’고 묻는 등 단순하지만 개별 국민에게는 꼭 필요한 내용의 민원도 있었다. 민원조사기획과 이영민 씨는 “매우 비상식적인 내용이 아니면 모든 민원에 대해 답변을 올리고 있으며 관련부처의 심사 과정을 거쳐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경찰청과 관련한 민원이 26.9%로 가장 많았고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한 민원이 그 다음이었다. 국가보훈처 대상 민원은 국가유공자 자격심사와 관련된 것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의 기대감이 상승한 것이 관련 민원 증가와 함께 전체 민원수가 늘어난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공공기관·단체 및 기타 민원에서는 한국토지공사를 상대로 한 민원이 전체 6982건 중 1069건(15.3%)을 차지했고 대한법률구조공단(807건·11.6%), 대한주택공사(602건·8.6%)가 뒤를 이었다.
이 ‘국민신문고’의 민원 범위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으므로 민원 내용 중엔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해결절차가 복잡한 민원까지 다양하게 포함돼 있다. 다음 주에 입대할 예정이라며 민원을 올렸던 한 국민은 ‘306보충대에 스킨, 로션, 폼클렌징, 바디클렌징, 바디로션 등을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한 답은 ‘귀하가 문의한 화장용품은 입대시 사용가능하지만 담배, 라이터, 취식물, 전자제품은 사용이 불가하다’는 것. 또 ‘79년 2월 말이나 3월 초에 육군 제365부대 공병대대 1중대 1소대에서 병영생활을 같이 한 ○○○ 전우를 찾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국민신문고를 통해 억울한 사연이 해결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전남지방경찰청 농성지구대 소속 경찰이 피의자를 추격하다가 넘어져서 다친 부상에 대해 담당 의사의 실수로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건이 대표적 예. 피해자 이 아무개 씨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민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담당 의사는 이 씨가 범인을 쫓다가 넘어졌다는 내용을 듣고 1차 진료기록지에 ‘러닝’이라고 표기했다가 2차 기록에서는 이를 다시 ‘스포츠’로 적어 넣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고 한다. 범인을 추격하기 위해 ‘달렸던’ 것이 황당하게도 ‘운동’을 하다가 넘어진 것으로 바뀌었던 것.
이 민원을 조사했던 국민권익위원회 행정문화교육민원과 김영일 씨는 “담당 의사를 만나 당시 실수로 잘못 표기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진료기록지의 부상원인을 적는 칸이 적어 단순하게 표기하느라 ‘러닝’이라고 썼다는 것이다. 다행히 결국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이 씨에 대해 재심의 절차를 밟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