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균 민주당 대표 | ||
정치권 관계자들은 두 사람 모두 정치적 기반이 전북 지역이고 야권의 유력한 차기주자라는 점에서 대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호남권 맹주와 차기 대권을 겨냥한 민주당 두 거물의 ‘완산벌’ 전쟁에 서막이 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굳히기’를 시도하고 있는 정 대표와 ‘재·보선 출마’ 카드로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DY의 피 말리는 진검승부 속으로 들어가 봤다.
대표와 DY의 전쟁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2월 4일 기자와 만난 민주당 K 의원이 던진 말이다. 호남권 재선 의원으로 손학규 전 대표와 가까운 K 의원은 “두 사람 모두 대권을 꿈꾸면서 텃밭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바이벌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DY 출마를 둘러싼 힘겨루기는 시작에 불과하고 유리한 대권고지와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양측의 갈등은 갈수록 전면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DY의 재·보선 출마 문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양측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친 DY계는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리로 출마의 명분과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친 DY계로 민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종걸 의원은 2월 3일 보도자료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DY만큼 당내에서 개혁적이고 희생적이었던 의원은 드물다”며 DY의 개혁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DY가 당에 들어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꺼려하는 것은 더 더욱 잘못됐다”며 반대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DY와 가까운 문학진 의원도 2월 5일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대선 참패에 대한 책임론은 끝났다”며 출마론에 한껏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 친 정세균계와 지도부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 대표의 최측근인 최재성 의원은 2월 3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우리가 굉장히 많은 표 차이로 지난번 선거에서 졌고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을 탄생케 하는데 우리들 잘못도 있다”며 “DY 출마 문제는 적어도 당원 대다수나 국민여론을 설득하는 데 여러 가지 무리한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2월 6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4월 재·보선은 국민들이 지금까지의 국정 전반을 평가하는 계기가 되고 야당에 대한 평가도 겸하는 것”이라며 “국민들 보기에 제대로 된 원칙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은 공천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DY가 지난 대선에서 참패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과 ‘현재 서울 동작을 지역위원장으로서 전주 덕진에 출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내부 비판에 따른 부정적 기류를 반영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미경 사무총장 또한 2월 5일 한 라디오 프로 인터뷰에서 DY 출마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공천 배제는 있을 수 없다”면서도 “어느 지역, 어느 시점이 당과 본인을 위해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 정해야 할 것”이라며 DY의 무혈입성을 견제했다.
DY의 재·보선 출마 논란이 신주류와 비주류 간의 파워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신주류를 이끌고 있는 정 대표는 일단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정 대표는 2월 4일 DY의 공천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천 심사에 착수하지도 않은 만큼 후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재·보선 지역의 민심을 파악해 당의 기본 방침을 결정한 뒤에 공천 후보의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DY의 최종 선택에 따라 정 대표도 승부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DY가 출마를 포기할 경우 양측의 진검승부는 자연스럽게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DY가 출마를 강행할 경우 4월 재·보선 정국에서 두 사람은 치열한 대권 전초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
정 대표가 겉으로는 신중론을 표방하면서도 내심 DY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DY의 선택에 따른 대응 방안에 골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정 대표가 ‘DY 배제’ 전략과 맞물려 ‘김대중 전 대통령(DJ) 끌어안기’를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전주 완산 갑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동교동계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1월 14일 민주당에 전격 복당한 것도 이러한 의혹을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정 대표와 DJ가 전주지역 재·보선 공천과 관련해 은밀히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른바 ‘DJ-정세균 밀월설’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두 사람이 비밀 회동을 통해 DY를 공천에서 배제하고 전주 덕진과 완산 갑에 각각 정 대표의 측근과 DJ 측근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게 밀월설의 골자다.
DY가 ‘호남주자 이미지’ ‘대권 입지 약화’ 등 비판적 시각을 감내하면서도 전주 덕진 출마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고 있는 배경에도 ‘밀월설’이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DY의 한 핵심 측근은 “DJ와 정 대표의 밀월 의혹이 사실일 경우 DY는 대망론은 말할 것도 없고 재기 자체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며 “내부에서도 DY의 출마를 놓고 찬반 논쟁이 심했지만 밀월설에 힘이 실리면서 ‘출마’ 쪽으로 중론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DY가 전주 덕진 출마를 강행하고 정 대표와 당 지도부가 ‘DY 공천 배제’ 카드를 꺼내들 경우 민주당이 신주류와 비주류 간의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심각한 ‘적전분열’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 지도부 일각에서 DY를 수도권에 전략공천해야 한다는 ‘중재론’이 논의되고 있는 것도 ‘적전분열’만은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DY를 재선거가 확정된 부평 을에 공천해 수도권에서부터 재·보선 돌풍을 일으켜 4월 재·보선을 싹쓸이해야 한다는 필승 전략도 투영돼 있다. 부평 을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출마할 경우 그 대항마로 DY가 나서야 승리할 수 있다는 현실론도 작용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 대표와 DY 입장에서는 ‘DY 수도권 전략공천론’이 ‘양날의 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DY가 수도권에 출마해 당선될 경우 DY는 화려한 재기를 알리면서 당내 주도권과 대권 입지를 구축하는 호기를 잡을 수 있는 반면 정 대표는 상대적으로 당내 위상이 위축되면서 대망론에도 적신호가 켜질 공산이 크다. 반대로 DY가 수도권에 출마해 낙선할 경우 DY는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반면 정 대표는 그 반대급부를 고스란히 손에 넣을 수 있는 더없는 기회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입장에선 대망론과 정치생명을 담보로 한 그야말로 위험한 승부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DY가 차기주자로서 흠집을 예상하면서도 무혈입성이 가능한 고향 출마 쪽으로 결심을 굳히고 있는 것이나 정 대표가 DY의 수도권 공천에 부담을 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호남권 맹주와 대권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는 두 거물의 4월 전쟁에서 과연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까. 전북 완산벌에 벌써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