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전용기 ‘참매 1호’의 모습. 원안은 전용기에 대기 중인 김정은. 연합뉴스
김정은의 전용기는 지난 2014년 5월 9일 열린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다. 2015년 7월 현지 보도로 알려진 전용기 이름은 ‘참매’다. 김정은은 현재 고려항공 소속 항공기 중 총 2기를 전용기로 사용 중이다.
이에 앞서 김일성과 김정일도 생존 당시 고려항공 소속 전용기를 각각 1기씩, 그리고 오진우를 비롯한 최고위급의 전용 항공기 1기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들이 항공기에 직접 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주로 ‘1호 물자’ 운반용이거나 해외에서 방북하는 ‘1호손님’ 접대용으로 쓰였다.
김정은의 전용기는 구 소련 ‘일루신’이 제작한 IL-62M 모델이다. 이 모델은 1974년 제작된 구형 항공기다. 이 기종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당시 참가한 북한대표단이 타고 온 바 있다. 인천공항에서도 내부 공개를 꺼려해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같은 해 최룡해가 이끌었던 러시아 특사단 방러 일정 중 기체 고장으로 망신을 당한 사건도 있다. 노후화된 기종이기에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고소공포증으로 비행기 탑승을 꺼렸던 것과 달리 김정은은 이 구형 전용기를 애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필자는 바로 이 전용기의 북한 내 도입을 둘러싼 내부 이야기들을 최근 접할 수 있었다. 북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0년 9월 공식 등장 직후부터 전용기를 밀수하려는 노력을 꾀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공식 등장 직후 중국 정부의 비공개 방문을 타진했고, 이때 자신의 전용기를 구입하려던 것이 발단이었다.
항공기는 엄연한 전략물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김정은의 이려한 노력과 시도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이 사업을 이끌었던 이는 다름 아닌 당시 실세 장성택이었다고 한다. 장성택은 처음 러시아에 선을 대고자 노력했지만, 러시아 중앙정부는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해 이를 꺼려했다. 특히 푸틴 주변 친 유럽 성향의 관료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했다는 후문이다.
장성택은 이후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시장에 나와 있는 중고 ‘보잉기’를 노렸지만, 이마저도 당시 대풍국제투자그룹이 국제적인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거래 성사가 어려웠다. 당시 자금 마련도 문제였다.
장성택이 숙청을 앞두고 활동에 제약을 받기 시작한 2013년 중반부터 이 과제는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이후 이 과제를 실제 진행한 이는 오극렬 부위원장의 아들이었던 오세훈 조선자원투자개발은행 베이징 대표였다. 조선자원투자개발은행은 국방위원회 대외경제 담당국 소속 조선자원투자개발총국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장성택이 총재로 있었던 대풍국제투자그룹은 장성택의 권한이 제한되기 시작한 이후 국방위원회 조선자원투자총국으로 이관된다. 이런 과정에서 오극렬의 아들 오세훈은 이 사업을 이관 받게 된다. 물론 오세훈은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과업을 이어오던 인사다. 중국과의 연줄이 제법 많은 인사로 알려졌다.
오세훈은 전용기 도입을 위해 마카오에서 활동하는 재미동포 A 씨를 활용한다. A 씨는 친북성향의 경제인으로 평소 대북공작활동에도 크게 기여해 온 인물이다. 오세훈은 A 씨를 통해 홍콩에서 W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또 다른 재미동포 B 씨에 접근한다. W 무역회사는 현지 시장에 나와 있는 보잉기 입수 계약을 물밑에서 진행했다. 이 계약은 실제로 성사 단계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보가 결국 홍콩 현지에 나와 있는 미국의 정보라인에 의해 발각됐다.
결국 오세훈이 주도하는 ‘보잉기’ 밀수 과업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항공기 도입 시도를 완벽하게 간파했다는 것이 뼈아픈 실책으로 남았다. 앞서 W 무역회사 대표 B 씨는 미국 세무당국에 의해 탈세 혐의로 체포됐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전용기 도입을 위한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로 이 과업을 이어 받은 이는 고려항공총국 소속의 강기섭 총국장이었다. 강기섭 총국장은 중국의 한 고위간부 N 씨에게 선을 댔다는 후문이다. 이 고위간부의 부친은 강기섭의 부친과 항일연합군으로 함께 싸웠던 대를 이은 친구 사이었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최근 사망한 강기섭 민용항공총국 총국장의 빈소를 직접 방문해 애도를 표했다고 북한 조선중앙TV가 1월 2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강기섭 총국장은 중국 내 이러한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N 씨의 오랜 지인이었던 홍콩 소재의 또 다른 무역회사에 항공기 거래를 제안했다. 북한은 이 회사를 통해 2013년 말 현재 김정은의 전용기인 구소련 산 일루션 항공기 2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앞서의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은 항공기 도입을 대가로 앞서 무역회사 대표에 북한 내 희토류 광물 채굴권을 제안했으며, 결국 거래가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강기섭은 이러한 성과로 인해 2014년 김정은으로부터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는 2017년 1월 고령으로 인한 지병으로 사망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병이 악화돼 몸저 누웠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어찌 보면 북한 민항기 총책임자인 강기섭은 죽기 전 김정은을 위한 대업을 이룬 셈이었다. 김정은은 이러한 강기섭의 노력을 기렸는지, 이례적으로 그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해 조의를 표했다.
다만 여기서 의문이 남는 부분이 있다. 과연 국가안전부를 비롯한 중국의 정보기관들이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이 움직임을 몰랐을까. 항공기는 다른 민수품과 섞어서 거래할 부류의 전략물자가 아니다. 어느 정도 중국 정부의 방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제재가 나온 현 시점에서 분명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 앞서 혈맹으로 맺어진 강기섭 총국장의 가문과 중국 고위간부 N 씨의 관계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 내에는 여전히 북한에 협조할 인사들이 꽤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