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논문은 미국화학회지(JACS) 표지로 선정됐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D₂가 중수소, 빨간색으로 표시된 H₂가 수소다. 두 종류의 수소 동위원소가 섞인 수소 혼합물이 문회리 교수팀의 다공성 물질(MOF-74-IM)를 통과하면서 효과적으로 분리되는 모습을 표현했다.
[울산=일요신문] 송희숙 기자 = ‘인공태양’이라고 불리는 핵융합에 필요한 핵심 청정 에너지원인 중수소를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신물질이 개발됐다.
UNIST(총장 정무영) 자연과학부의 문회리 교수팀은 구멍이 숭숭 뚫린 다공성 물질인 ‘금속-유기골격체(MOF)’에 간단한 처리를 해 중수소를 효률적으로 분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보고된 중수소 분리 효율중 세계최고 기록이다.
“쌀과 좁쌀을 체(sieve)로 쳐서 분리하듯 중수소와 수소를 양자체에 통과시켜 골라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쌀과 좁쌀은 크기 차이를, 중수소와 수소는 양자(quantum) 차이를 이용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은 중수소를 분리하는 원리인 ‘운동 양자체(KQS) 효과’와 ‘화학적 친화도 양자체(CAQS) 효과’를 동시에 구현한 최초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 내용은 미국화학회지(JACS) 온라인 속보(9월 23일자)로 공개됐으며,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중수소는 수소에 중성자가 하나 더 있는 동위원소다. 미래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핵심원료이자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 수소 중 0.016%로 극히 미미하며 분리가히도 어려워 매우 비싸다.
중소소를 얻으려면 수소 혼합물에서 중소소만 골라내야 한다. 하지만 동위원소는 물리‧화학적 성질이 비슷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분리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과학자들은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설계해 중수소를 효율적으로 골라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른바 ‘양자체 효과’를 이용하는 전략이다.
왼쪽부터 김진영 연구원과 문회리 교수가 금속-유기 골격체 설계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연구진은 먼저 화학적 친화도 양자체 효과를 얻기 위해 중수소와 화학적 친화도가 높은 다공성 물질인 ‘MOF-74’를 선택했다. 그 다음 이 물질의 기공 내부에 이미다졸(imidazole) 분자를 도입해 구멍 크기를 조절했다. 수소보다 미세하게나마 작은 중수소만 통과시키도록 설계해 운동 양자체 효과를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공성 물질 ‘MOF-74-IM’에서는 중수소가 조절된 구멍 내부로 빠르게 확산되는 동시에, 내부에 있는 흡착 자리에 화학적으로 강하게 달라붙을 수 있었다.
이때 중수소 분리 인자는 최대 26을 나타냈는데, 수소 1개당 중수소 26개를 골라낸다는 의미다. 참고로 기존 다공성 물질을 이용한 중수소 분리 연구에서 보고된 분리 인자는 동일 온도에서 최대 6이었다.
문회리 교수는 “기존에도 양자체 효과를 이용해 중수소를 분리하는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두 양자체 효과를 동시에 가진 분리 시스템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며 “지구상에서 귀한 자원인 중수소를 얻는 획기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로 중소수의 효율적 분리 뿐만 아니라 분리하기 어려운 동위원소나 가스 혼합물을 효율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시스템에 동일한 전략을 쓸 수다. 또한, 다공성 물질의 지능형 설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오현철 경남과기대 교수, 마이클 허셔(Michael Hirscher)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팀이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강성구 울산대 교수가 참여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우수과학연구센터(SRC), 핵융합기초연구사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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