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박살난 4년 된 방파제와 멀쩡한 30년 지난 방파제의 모습.
[부산=일요신문] 하용성 기자 = 준공된 지 불과 4년이 지난 방파제가 파손된 게 자연재해로 규정되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특히 같은 위치에 있는 30년 전 만들어진 방파제는 멀쩡한데도 불구, 이처럼 자연재해로 결론이 나면서 수백억 원의 국민혈세만 낭비될 처지에 놓였다.
발주처인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이하 부산해수청)과 해당 방파제 시공사인 A건설을 향한 비판여론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부산시 감천항에 위치한 해당 방파제는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로 인해 부서졌다.
부산해수청은 오는 12월까지 감천·다대항 방파제를 재설계한 뒤 내년 6월중에 복구공사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위치에서 방파제가 건립된 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산시는 감천항 외항 양쪽에 동방파제와 서방파제를 각각 조성했다.
이후 부산해수청은 지난 2011년 1,052억 원을 투입해 남방파제와 도류제를 신설하고, 기존 동·서 방파제에는 케이슨식 방파제를 추가로 증설하는 등 보강 작업을 실시했다.
260억 원이 투입된 동·서 방파제 추가증설은 A건설이 시공을 맡아 2013년 공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불과 7개월 후 2014년 태풍 ‘너구리’가 스쳐 지나가자 너울로 인해 감천항 서방파제 곳곳에서 균열과 침하가 일어났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로 인해 감천항 방파제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685m에 이르는 서방파제의 450m 가량이 완전히 파손됐다.
나머지 동방파제와 남방파제 다대포방파제 등 인근 방파제가 모두 파손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자연재해로 결론나면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않게 된 점이다.
국민혈세 수천억 원이 이미 수장됐고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또다시 수백억 원의 복구비를 국민혈세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달 26일 ‘감천·다대항 방파제 피해’ 의뢰를 받는 대한토목학회는 태풍 ‘차바’로 인한 ‘자연재해’라고 결론을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서 위원장을 맡은 가톨릭관동대 김규한 교수는 “케이슨식 방파제가 수위에 약하다는 사실은 전 세계학회에서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자연현상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수리모형실험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부산해수청 관계자는 “감천항 방파제는 설계 당시 50년 빈도 태풍을 기준으로 했고, 과거 자료에는 파도가 남남동쪽(SSE)에서 밀려오는 것을 전제로 설계했다”며 “하지만 차바 때는 전혀 다른 남남서쪽(SSW)에서 파도가 들이닥쳐 피해가 컸다.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차후 파고와 바닷물 수위를 재산정하고 수리모형실험 등을 적용해 기후변화에 대응해 튼튼한 방파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토목학회의 ‘자연재해’라는 결과만으로 방파제 건립 때의 의사결정에 있었던 관계공무원, 시공사인 A건설 등 관련자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감천항 서방파제 공사 현장에서 일했던 익명의 제보자는 “공사 중에 이미 A건설이 시공하는 방파제는 태풍이 오면 무너진다는 얘기가 현장에서 파다했다”며, “결국 이런 수순(부실공사-파손-천재지변-재공사)을 예측하고 공사를 강행한 것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같은 장소에 있던 30년 전에 만들어진 방파제는 멀쩡했다. 부실공사 말고는 달리 설명할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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