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일요신문] 김재원 임병섭 기자 = 우리 몸속에도 적게 존재하는 사일로이노시톨(scyllo-inositol)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환자의 뇌에 모여 뇌세포를 죽게 하는 베타아밀로이드(β-amyloid) 단백질의 응집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기대를 모으던 물질이었다. 하지만, 임상실험에서 높은 농도로 투여할 경우 심각한 신장독성을 일으킨다는 결과를 얻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포항공과대학교(총장 김도연) 연구진이 한 번 실패했던 이 물질을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트로이목마’와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열었다.
포항공대 화학과 정성기 명예교수, 융합생명공학부 김경태 교수팀은 뇌조직과 뇌모세혈관 사이에서 뇌를 지키는 혈뇌장벽(blood-brain-barrier)을 손쉽게 투과할 수 있는 약물전달체 기술을 이용, 독성으로 임상실험에서 실패한 ‘사일로이노시톨’을 개량한 새로운 약물 AAD-66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를 통해 발표했다.
흔히 치매로도 알려진, 퇴행성 뇌질환 알츠하이머병은 고령화 시대가 열림에 따라 치료약물 개발에 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효과적인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뇌조직에 약물이 전달되어야 하고, 장기간 섭취가 필요해 독성이나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약물의 흡수를 철통같이 막고 있는 혈뇌장벽 때문에 대부분의 치료약물은 뇌세포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후보물질에 그치고 있다.
연구팀은 임상실험 과정에서 실패해 모두가 후보물질에서 제외했던 사일로이노시톨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 이미 이 연구팀이 개발한 혈뇌장벽 투과 약물전달체를 이용하면 굳이 농도를 높이지 않더라도 좋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농도 투여에 따른 부작용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혈뇌장벽 투과 약물전달체를 사일로이노시톨과 연결한 형태의 AAD-66는 혈뇌장벽을 쉽게 투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투여 농도를 사일로이노시톨의 1/10로 낮췄음에도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동물의 학습과 기억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병 여부를 알 수 있는 베타아밀로이드, 신경아교증(gliosis) 분석에서도 더욱 좋은 효능으로 나타낸 것으로 확인됐다.
정성기 명예교수는 “사일로이노시톨이 실패한 것은 약물의 농도를 높일수록 생겨나는 독성 때문이었지만, 혈뇌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약물 전달체가 이를 해결했고 그 결과 치료효과도 더욱 향상시킬 수 있었다”며 “이번 결과는 지금까지 혈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해 후보물질로만 그쳤던 다양한 약물들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글로벌프론티어사업,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BK21플러스사업, 농촌진흥청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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