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선을 만들고 있는 한국범선모형동호회 회장 송주현 씨. 범선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모든 세상 시름이 사라진다고. | ||
‘그들’은 자신이 만든 배를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넘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항해중이다. 하지만 그 배는 사실 진수식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만든 배를 마음속에서 띄울 뿐이다. ‘모형 범선에 미친 사람들’. 한국범선모형동호회 회원들은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
어떤 면에서 마니아는 경주마와 다름없다.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범선동호회 회원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불모지와도 같았던 우리나라의 모형 범선 세계를 열어젖혔다.
유럽에는 유명 항구에 가면 대부분 범선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모형 범선에 대한 대중의 접근이 쉽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범선을 아이들이나 만드는 장난감 조립품 정도로 취급하는 실정. 무슨 어른들이 그런 걸 만드느냐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진짜 공들여 만든 모형 범선을 혹시 본 적이 있는지? 만약 눈으로 직접 잘 만든 범선을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된다.
범선은 하나의 예술품이다. 실제 배보다 작을 뿐 다른 점이 거의 없다. 배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섬세한 작업을 거쳐 실제 배처럼 완벽히 재현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 모형 범선이 얼마나 세밀한 공예품인가를 보여주는 부분들. 선체 밑바닥은 동판까지 하나하나 이어 붙였다. | ||
“머리에 쥐가 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군요.” 그러나 그는 끝내 범선을 완성했다. 물론 서툰 결과물이었지만 그에게는 무엇보다 위대한 작품이었다.
송 씨는 누구나 범선을 만들 수 있지만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끈기’. 진짜 배라고 가정할 때 날림공사를 한 배를 자기 자신이 탈 수 있을까.
범선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초보자용이 8만 원 선. 최고급자용은 1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범선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작품의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 쉬운 소품 수준의 작품은 3개월 정도, 대작은 2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초보자들은 거의 모든 부품들이 정확한 규격으로 준비된 키트를 사용하지만 숙련자의 경우엔 자신이 직접 재료를 깎아서 만든다.
이들은 왜 그렇게 범선에 열광하는 것일까. 송주현 씨는 “혼을 실은 시공 후에 오는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또 “소장가치가 있을 뿐더러 또한 다 만든 작품을 보면 마치 그 범선을 타고 모험을 하고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동호회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백화점 이벤트나 해양박물관 등에서 개최하는 행사 자리를 빌어 전시회를 열거나 자신들끼리 장소를 마련해 전시하기도 한다.
작품을 간혹 파는 경우도 있다. 돈으로 매길 수는 없다고 다들 말하지만 기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작품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재료비와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금전으로 환산하면 결코 비싸다고만은 할 수 없는 가격이란 게 동호회원들의 생각이다. 흔히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말하는데 그 마라톤과 딱 어울리는 취미가 바로 범선 만들기가 아닐까 싶다.
★문의: · 한국범선모형동호회(www.modelship. or.kr) · 돛단배(http://www.sailingship.co.kr)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