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여성단체 ‘특위 구성’ 제보창구 통해 공동대응 예고
- 수성구의회·수성경찰서···성평등 걸림돌 선정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제25차 대구여성대회’가 열린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
[대구=일요신문] 남경원 기자 = “지금도 그때의 촉감과 풍경이 생생하다. 죽이고 싶을 만큼 저를 분노케 했던 가해자였지만 그 못지않게 공포스러웠던 건 모른 척, 못 본 척 지나간 사람들의 눈이었다.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았냐? 네가 조심했어야지? 가해자에게 향해야 할 화살이 왜 나를 향하고 있는가? 가해 행위가 문제시되어야지 왜 피해자에게 문제를 묻는가? 일상이 무너질 각오를 하고 감당하며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재단하기 전에 한 번만 더 그 심정을 느껴주길 바란다.”
올해 3·8 세계 여성의 날은 여느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검찰에서 시작돼 문화계를 강타한 뒤 연예계로 본격 상륙했던 미투(#Me Too) 운동 열풍이 이번에는 정치권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문제는 대구와 경북이다. 서울·경기 지역에 비해 미투 운동이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대학교 개강이 맞물리면서 SNS 등을 통해 선배 또는 교수들로부터 성추행 등을 당했다는 내용이 속출하고 있다.
페이스북 경북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선배들에게 성폭행 또는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 여대생은 “딱 한 번만 가슴 만져보면 안 될까? 그 멍청하고 더러운 말에 간단히 ‘싫어요 미쳤어요’라고 거절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과 이유를 다른 사람들이 알까”라고 했다. 이어 “왜 좀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느냐라는 말이 너무 화가 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까. 마음 같았으면 그 xx를 두 번도 더 죽였어”라고 적었다.
페이스북 ‘경북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미투’ 게시글.
또 다른 여대생은 “선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소맥을 말았고 우리는 빠른 속도로 잔을 비웠다. 물론 내 머릿속도 함께 비워졌지만 내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생각해보니 이 선배를 다른 술집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미 만취한 여자에게 후배와 함께 술을 먹였다. 그렇게 그 여자도 오늘의 나와 같은 아침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영남대학교 대나무숲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올라오고 있다. 당시 22살의 여대생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예전에 만났던 쓰레기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오래간다”며 사귄 지 얼마 안된 상황에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상황을 자세히 털어놨다. 심지어 성관계에 응하지 않으면 폭언을 당했고 헤어지자고 하면 집을 엎어버린다는 등의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갓 스무 살의 여대생이 대학교 첫 엠티에서 남자 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한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글도 눈에 띈다. 학교 선배 또는 남자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대학교수들도 언급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가 특위 구성을 소개하며 미투운동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대경여연)은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25차 대구여성대회’를 통해 지역 내 미투 열풍에 불을 지폈다. 이들의 핵심의제는 ▲여성대표성 확대 ▲성평등 임금격차 해소 ▲낙태죄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젠더폭력 근절 ▲생리대 무상제공 ▲성평등 개헌 등이다.
대경여연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한 정애향 수성구의회 의원과 직장 내 성폭력과 갑질 폭력에 끝까지 투쟁한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성서농협지회에 성평등 디딤돌을 수상했다.
눈에 띄는 것은 ‘성평등 걸림돌’이다. 걸림돌 수상은 수성구의회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에 대해 가해 의원의 제명을 반대한 의원 8인에게 돌아갔다. 동료의 성추행을 방관하고 윤리위원회에서의 제명을 반대하는 등 성평등 의회를 만드는 데 심각한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수성경찰서도 걸림돌을 받았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상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2차 피해를 낳게 하고 심지어 피해자들의 입을 막았다는 주장이다.
“변화는 시작됐고, 달라진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시민들이 3·8 여성 선언을 하고 있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미투 열풍이 대구·경북에서도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된다고 평가했다. 강 대표는 “현재 경북 전 도의원과 수성구 현직 의원 등이 미투운동에 동참했고 여기에 대한 상담소도 증가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폭력 피해 경험을 이야기할 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면서 “이번 #미투 #위드유 열풍을 통해 더 많은 피해자를 만나기 위한 개별상담소의 운영은 물론 온·오프라인 상담도 활발히 진행할 예정이다. 또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처벌에 대한 제도적 장치 및 법 개정에도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강 대표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성차별적인 이 사회가 잘못이고 가해자가 잘못 한 것”이라며 “당신의 억울함은 반드시 해소될 수 있다. 함께 손잡고 함께 상담하고 같이 해결해 나가자”고 전했다.
한편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등 14개 여성단체로 구성됐다. 성폭력 피해를 알릴 수 있는 창구구성을 물론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과 법률지원 더 나아가 가해자 처벌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또 대구시와 시 교육청,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등 사회전반에 성평등교육과 함께 미투 운동과 위드유(#With you, 피해자와 함께 합니다) 등을 벌일 예정이다.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