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30분. 이 전 대통령의 논현동 자택 앞에는 5개 중대에서 나온 400여 명의 경찰과 100여 명의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자택 주변에는 취재진과 경찰 병력을 제외한 주민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3월 14일 오전 이명박 전 대통령 논현동 자택 주변. 사진공동취재단
주변 경비는 삼엄했다. 자택 근처로 다가가려고 하자 기자임을 밝혔음에도 길을 막고 있던 경찰은 신분증을 요구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겨우 자택 앞 골목길로 들어갔다. 하지만 골목길에도 철제 펜스와 경찰통제선이 설치되어 있어 만약 이 전 대통령이 걸어 나온다 하더라도 취재진이 질문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많은 취재진이 펜스에 매달려 밖으로 손을 뻗으며 최대한 가까이 자택의 모습을 담으려 애썼다. 집 앞 골목 양 끝뿐 아니라 자택의 담장을 따라서도 5명 정도의 경찰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이날의 주목되는 부분은 헬기의 등장 여부.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2009년 4월 30일, 당시 언론은 헬기를 동원해 뇌물수수 혐의로 소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불미스러운 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전 대통령의 모습을 헬기까지 동원해 생중계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지나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정권과 처지가 바뀌어 이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이날도 오전 9시경부터 방송사 헬기가 굉음을 내며 자택을 상공에 모습을 나타냈다. 노 전 대통령 때와는 달리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까지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모습을 나타냈다.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등장한 드론. 사진공동취재단단
열띤 취재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 전 대통령 자택 주변 분위기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움직임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부 단체에서 ‘구속되기 딱 좋은 날’, ‘이명박 구속, 4자방비리재산 환수’ 등의 피켓을 든 채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당시 지지자들이 삼성동 자택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함치고 심지어 도로에 드러눕기까지 했던 분위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오전 9시 5분경이 되자 자택 문이 열리고 접견을 마친 이 전 대통령이 측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재오 전 의원,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김효재 전 정무수석, 최병국 전 의원 등은 고개를 숙이거나 착잡한 표정으로 자택에서 나왔다.
오전 9시 14분 드디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탑승한 검정 제네시스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를 3대의 차량이 따랐다. 차가 등장하자 자택 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민중민주당 여성 단원은 “이명박을 구속하고 비리 재산 환수하자” “이명박이 가져간 국민혈세 23조 원을 돌려받자” 등의 구호를 크게 소리쳤다. 목소리를 높이던 여성 단원이 이 전 대통령이 탄 차를 몇 발자국 따라가자 여성 경호인력 몇 명이 이를 급히 제지했다. 검은 빛이 강한 차량 유리때문에 이 전 대통령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차량이 모두 떠난 뒤 곧바로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 이동관 전 홍보수석 등 남아있던 측근들도 자택을 떠났다. 자택에 들어올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거나 무표정으로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논현동 자택을 떠난 차량은 경호처 차량, 경찰차, 경찰청 오토바이의 호송을 받으며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했다. 이미 교통통제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은 출발 후 채 10분이 걸리지 않은 9시 22분경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서문 쪽으로 들어갔다. 동문 쪽에 미리 모여있던 진보단체 회원 100여 명은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취재 경쟁으로 딱지를 떼인 언론사 차량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게 되는 중앙지검은 취재 경쟁이 무척 뜨거웠다. 수많은 취재진이 모이다 보니 불법 주정차를 했다가 과태료 딱지를 떼인 언론사 차량도 눈에 띄었다. 이러한 취재 열기를 반영하듯 드론 역시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지검 주변 역시 8개 중대 640여 명의 경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자택과 달리 중앙지검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도 눈에 띄었다. 서문 쪽에 모여있던 이들은 ‘표적수사 STOP’ ‘정치검찰 각성하라’ 등의 피켓을 들며 이 전 대통령 소환이 부당하다며 구호를 제창했다. 지지자 4명에게 소속을 물으니 이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발적으로 왔다” “지지자일 뿐”이라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6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은 지지세력을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뛰어들었으나 경찰의 제지로 큰 몸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에 모인 이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
이 전 대통령이 중앙지검 내부로 들어간 이후에도 권성동 의원, 김효재 전 정무수석, 최병국 전 의원 등 측근들은 한참을 중앙지검 부근을 배회했다. 수고했다며 서로 어께를 두드려주는 모습도 보였다.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취재진의 질문에 말을 아꼈고 장다사로 비서관은 “지금은 인터뷰할 때가 아니”라며 오히려 화를 내기도 했다. 다들 착잡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지지세력들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멀찍이 떨어져 지켜봤다.
중앙지검에 들어간 이 전 대통령은 9시 30분 출석 후 10층 특수1부장실에서 녹차 한 잔을 마시며 송경호 특수2부장검사와 신봉수 첨단범죄수사1부장검사와 10분 정도 면담했다. 곧바로 진행된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주 의혹 관련 조사를 받았다.
오후 1시 5분, 오전 조사를 마친 이 전 대통령은 점심식사를 위해 바로 옆 1002호에 마련된 휴게실로 이동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외부 식당에서 마련한 설렁탕을 점심으로 먹었다. 식사를 마친 이 전 대통령은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오후 2시경부터 다시 조사를 받았다. 이어지는 조사는 삼성의 다스의 미국 소송비 대납, 국정원 불법자금, 민간인 불법자금 등에 대한 것들이었다.
오후 조사를 마친 오후 7시 10분경 이 전 대통령은 다시 휴게실로 이동해 저녁식사로 곰탕을 먹었다. 이 역시 점심과 마찬가지로 이 전 대통령이 정한 메뉴다.
이후 밤샘 조사를 받은 이 전 대통령은 “다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뒤 오전 6시 25분 중앙지검을 떠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은 앞서 타고 온 검정 제네시스 차를 타고 오전 6시 32분께 자택에 도착했다.
도착 한 자택 앞에는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 병력을 제외한 지지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전날 자택을 찾은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측근 인사들이 이 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 이날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검은 점퍼에 야구모자를 쓴 다소 편한 차림새로 자리를 함께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