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줄다리기 역사상 최초 세계 무대 진출.
- 2018년 세계실내줄다리기 선수권대회서 여자 500kg 부문 공동 3위 수상.
지난달 중국에서 개최된 ‘2018 세계 실내줄다리기 선수권 대회’에서 청풍달구벌 여자팀이 경기에 임하고 있다.
[대구=일요신문] 남경원 기자 = “세계 무대는 달랐다. 이번 경험을 통해 더욱 겸손한 자세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훈련에 임하겠다. 그리고 ‘Must Win(반드시 이긴다)’이라는 정신과 ‘We are one(우리는 하나)’이라는 마음으로 무장해 모든 선수가 일제히 곧게 세계를 끌어당기겠다.”
대구가 낳은 ‘청풍달구벌’ 줄다리기팀이 국내 줄다리기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여지껏 청풍달구벌에게 국내 무대는 좁았다. 전국줄다리기대회가 태동한 지 14년만에 최초로 남·여·혼성 3개 전 부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놀라운 저력을 과시했던 ‘청풍줄다리기’팀은 세계에서도 통했다. ‘일요신문’이 세계를 끌어당길 ‘대구시 줄다리기협회 청풍달구벌’을 만났다.
“세계 무대의 벽은 높았다. 국내 대회에선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힘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을 토대로 더욱 할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청풍달구벌 고영미(여·37) 코치는 이번 대회에 대한 놀라움과 아쉬움, 그리고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영광의 상처.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청풍달구벌 선수들은 손바닥에 부상을 입었다.
중국 쑤저우시 쑤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지난달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국제줄다리기연맹(TWIF) 주최로 열렸다. 앞서 한국은 대표팀 선발을 위해 지난 3년간의 경기성적 등을 종합 심사해 ‘대구 청풍달구벌’을 한국대표로 파견했다. 청풍달구벌은 대회조건에 맞춰 남자 600㎏, 여자 500㎏ 팀당 12명씩 엔트리를 구성했다.
“사실 외부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 그나마 대구시체육회에서 국제교류사업 일환으로 500만원을 지원해줬다. 협동과 단합을 중시하는 스포츠로 알려지면서 조금씩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줄다리기는 비인기 종목이라 국가적 지원은 따로 없다.”
한국대표로 출전한 청풍달구벌은 대회 참가에 따른 비용 일체를 자비로 부담했다. 항공료는 물론 숙식비, 현지교통비, 참가비까지 개인이 부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청풍달구벌을 어렵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세계 선수들이 사용하는 LP밴드. 허리를 보호하고 줄을 밴드에 끼울 수 있어 줄을 잡고 당기기에 최적화돼 있다. 청풍달구벌은 보호장비없이 맨몸으로 공동 3위라는 괴력을 발휘했다.
세계대회는 매트부터가 달랐다. 국내대회에서 사용되는 다소 매끈한 매트가 아닌 표면이 거친 재질의 매트였다. 마찰력이 극대화된 매트에 맞춰 신발도 달라야 했다. 일부 선수들은 현장에서 특수 신발을 자비로 구매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선수들은 기존의 신발로 경기에 임해야 했다. 덕분에 경기 도중 선수들의 신발 밑창은 매트와의 마찰력으로 찢겨졌다.
선수들의 손바닥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상대 국가대표팀은 보호대와 벨트를 사용했지만 청풍달구벌은 맨몸으로 상대해야만 했다. 허리를 둘러 보호하는 LP밴드는 부상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줄을 허리에 끼고 당길 수 있어 더 큰 힘을 내게 된다.
여지껏 보호장비 사용이 불가능했던 국내 대회와 달리 세계 대회에서는 장비사용이 가능하다. 아시아연맹의 대회 기준과 세계대회의 기준은 달랐던 것이다.
스포츠 줄다리기는 총 8명으로 구성돼 경기에 임한다. 1~7번 선수가 풀러(puller), 마지막 8번째 선수가 앵커(anker)로 불린다.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주자의 앵커의 등과 허리에 줄이 감겨져 있다.
“이러한 세계대회 규정조차 몰랐다는 것은 솔직히 아쉬웠다. 한 국가의 대표로써 세계 무대를 뛰는데 지원금 한푼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같은 세계대회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마치 축구화와 보호장비 없이 세계 축구대회에 참가한 격인 것이다. 그러나 청풍달구벌은 반드시 이긴다는 정신으로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지금껏 우리를 도와준 환경은 없었다. 학교 운동장이나 강당 빌려 매트없이 맨 바닥에서 연습한 우리가 아닌가? 이러한 환경들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선수들은 최악의 조건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한마음, 한 뜻, 한 정신’으로 줄을 당겼다. 손과 발의 부상은 경기를 끝내놓고 생각할 일이었다. 덕분에 청풍달구벌은 세계 첫 진출에 여성 500㎏ 부문에서 공동 3위로 트로피를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완성을 응원합니다.’ 대구 청풍줄다리기팀이 경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얼마나 간절하게 경기에 임했는지 모른다. 세계 대회는 선수등록이 안 되면 경기장 출입도 안 된다. 그러나 출전을 못한 선수들도 자비로 비행기값 내고 중국까지 와서 대회장이 아닌 관중석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이들도 함께 줄을 당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중석에서 촬영한 귀한 영상들은 차후 우리가 세계를 당길 전략을 마련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앞으로 청풍달구벌은 국내가 아닌 세계를 목표로 훈련에 임한다고 한다. 이날 촬영한 영상들을 토대로 국가별로 비교·분석하고 장비사용이 가능한 세계무대에 맞춰 훈련자세도 교정할 예정이다.
황병익(61) 대구줄다리기협회장이자 감독은 “올해 국내에서만 5회 정도 대회가 예정돼 있다. 우선 목표는 국내 대회 석권이다. 7~8월에 말레이시아 초청 경기도 있는데 상황에 따라 참석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이번 세계 줄다리기는 사실 첫 경험이고 협회에서도 전무한 일이니 규정조차 몰랐지만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이제는 세계를 끌어보이겠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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