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수석이 청와대에 들어갔을 당시 인사보좌관실에서 인재풀을 구축하기 위해 현황을 파악해보았더니 낡은 이력서 모음 수준이었다고 한다. 정 전 수석은 “국민의 정부에 와서야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인재풀 명단을 관리하기 시작했으니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50년 동안의 인사가 밀실인사, 측근인사, 깜짝 인사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인재풀 명단에 들어있던 정 전 수석의 이력도 7년 이상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고. 또한 독재정권시절엔 민주화운동 참여자들의 인사파일은 부정적 내용 일색이고 객관성과 공정성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정보기관의 자료는 도를 넘어섰는데 일례는 다음과 같은 내용.
‘노동문제와 관련해 반정부적인 과격한 언동으로 노동자를 선동하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동향 관찰 요망. 결정적인 범죄증거 수집에 노력하겠음. 3당 합당과 관련해 각종 집회에서 ‘김영삼은 부산시민의 자존심을 팔았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정부는 근로자의 정치참여를 좌경용공으로 매도한다’고 말하는 등 사상이 극히 불순한 인물.’ 이는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인 보안사령부의 ‘사찰보고서’ 중 일부 내용으로 3당 합당을 반대한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의 것이었다.
과거의 인재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고했더니 노무현 대통령은 즉시 인재DB를 만들 것을 지시했고, 인사보좌관실은 꾸준히 자료를 축적해 10만 명이 넘는 인재풀이 담긴 ‘전자인사관리시스템’(PPSS)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이 원하는 인물도 인사추천회의를 통해 걸러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만 되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밖에서는 언론이 사사건건 막고, 안에서는 인사수석이 다 해버리고…”라며 푸념을 하기도 했다는 것.
정 전 수석은 ‘인사 청탁’을 해오는 사람에게 거절의사를 밝히기 위해 때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방으로 찾아와 돈봉투를 건네는 이들에게 “내 방엔 요 위에 감시카메라가 있고, 찍히면 우리 둘 다 죽습니다”라는 거짓말로 막기도 했다. 한번은 초등학교 동창들과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양복 안주머니에 봉투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이 봉투와 직접 쓴 편지를 같이 돌려보내면서 그 편지는 미리 ‘복사’를 해두기도 했다고.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지켜낼 도리가 없어서였다는 것.
정 전 수석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때로 ‘칠고초려’까지 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인물은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라고 한다. 진 전 장관은 삼성전자 사장으로 엄청난 연봉을 받고 있던 시절이었기에 더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정 전 수석은 “진 장관이 1주일만 늦게 장관 임명장을 받았더라면 스톡옵션으로 7만 주나 되는 삼성전자 주식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헌재 전 장관 역시 여러 차례 고사하다가 폭탄주가 돈 술내기 끝에 결국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정 전 수석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술도 못 마실 만큼 정부와 국회, 시장을 설득하며 끌고 나갔고 덕택에 시장은 크게 안정되었다”고 회고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