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터널은 무지갯빛 터널 같다. | ||
청도역에서 대구·경산 방면 25번 국도를 타고 15분쯤 가면 용암온천이 나오고, 바로 그 위에 청도와인터널이 자리하고 있다. 국도에서 벗어난 조붓한 마을길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터널이 하나 덩그러니 뚫려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와인터널이다.
와인터널은 대한제국 말기인 1904년에 완공된 남성현터널을 이용한 와인저장고다. 붉은 벽돌로 마감된 천정과, 자연암반 그대로를 활용한 벽면 등이 인상적인 이 터널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터널에 꼽힌다. 그러나 터널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과거 일제는 조선의 자원수탈을 위해 경부선을 개통했는데 당시 이 터널은 1.2㎞로 경부선에서 가장 길었던 터널로 기록됐다. 터널 공사에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인부로 동원돼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마을 주민은 물론 마을로 찾아온 손님들도 강제로 노역을 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다수 발생했다. 그러나 남성현터널의 운명은 짧았다. 높은 고개에 위치한 지리적인 약점 때문에 1936년 경부선 복선 개통 후 폐선이 된 것이다.
이 터널이 다시 태어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콘크리트로 막아 놓고 방치돼 있던 터널을 와인저장고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 연중 온도가 13~15℃로 일정하고 습도가 70~80% 수준으로 유지돼 와인숙성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점에 착안했다. 건설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터널은 보존 상태도 양호해서 보수공사도 필요 없었다.
남성현터널에 저장된 것은 포도와인이 아니라 감와인이다. 청도 지역은 소싸움만큼이나 반시로 유명한 곳. 이곳에서 생산되는 감은 전국 생산량의 20%를 차지한다. 반시라는 이름은 생산되는 감의 모양이 마치 소반처럼 둥글납작하다고 해서 붙었다. 반시는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다른 지역 감에 비해 당도도 높다.
청도에서는 반시를 사용해 ‘감그린’이라는 와인을 생산한다. 감와인은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개발된 것이다. 별도의 주정을 첨가하지 않고 100% 감을 특수 발효시켜 만든다. 감와인은 단맛과 떫은맛이 오묘하게 조화돼 특별한 맛을 낸다. 감와인은 2005년 부산 에이펙(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만찬주로 선정돼 그 품질을 인정받기도 했다. 청와대에도 납품되고 있다.
와인터널에는 시음장이 따로 마련돼 있어 관람을 마친 후 그 맛을 음미해 볼 수 있다. 터널에는 벽면 양옆으로 와인병들과 그림 등이 단조롭지 않게 배치돼 있다. 400m쯤 터널 안을 계속 걸어가면 저장고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수만 병의 감와인들이 익어간다.
▲ 이곳에 저장된 와인을 보며 신기해하는 모자(위). 봉정사 삼층석탑과 극락전. | ||
한편 와인터널 뒤편에는 대적사라는 작은 절이 하나 있다. 터널 왼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이곳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극락전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다. 18세기 초에 중건된 건물로 규모는 작지만 보물 제836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 기단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극락전 가운데 문을 향해 계단이 나 있고, 그 양옆으로 이중의 기단을 쌓았는데 이곳에 각종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인근 운문사도 들러볼 만한 절이다. 운문사는 경주 방면 쪽 운문산 아래 자리한 비구니절이다.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 소나무와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한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는 절로 신라 진흥왕 18년(557년)에 창건됐다. 삼국유사를 지은 승려 일연이 오래 머물기도 했고,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전수하기도 했다.
운문사는 절 차체로도 좋지만 가는 길이 더 호젓하고 운치 있다. 매표소를 지나치자마자 오른쪽으로 오래된 적송 군락이 펼쳐진다. 숲 한가운데는 쉴 수 있는 의자도 놓여 있어서 사색을 하기에 좋다. 운문사까지 이르는 약 500m 거리에 적송들이 길 양옆으로 도열하듯 늘어서 있다.
운문사 뒤쪽에는 사리암이 있다. 이곳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소나무의 자태가 좋다. 올라가는 데 30분쯤 걸리는데 힘들다기보다 상쾌한 마음이 앞선다. 산 중턱에 있는 북대암에서는 운문사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청도는 옛 고향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드는 포근한 고장이다. 이곳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옥마을이 있다. 운문사 방향으로 20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신지리가 나오는데 이곳에 운강고택 등 여러 채의 한옥이 모여 있다. 소요당 박하담(1479~1560)이 벼슬을 사양하고 내려와 살던 곳으로 만화정 등의 정자와 운강, 운남, 섬암 등 일가족이 살았던 고택들이 있다. 특히 운강고택의 만화정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내려와 숙식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과거로 흘러들어간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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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